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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한국의 위험물 규제,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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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종 (주)켐앤디지 국제위험물운송 강사 | 기사입력 2026/04/10 [12:16]

[발언대] 한국의 위험물 규제, 이대로 괜찮은가

권오종 (주)켐앤디지 국제위험물운송 강사 | 입력 : 2026/04/10 [12:16]

▲ 권오종 (주)켐앤디지 국제위험물운송 강사


지난 3월 20일 대전시 소재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안전공업 공장에서 불이 났다. 사망자 14명을 포함해 총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로 기록됐다. 나트륨을 취급하는 위험물 허가 대상이었던 이 공장에서 점심시간에 화재가 발생해 초기 대응을 어렵게 했고 저장된 나트륨으로 인해 진화마저 지연됐다.

 

불길이 빠르게 번진 원인으로 소방 당국은 집진 설비와 배관에 쌓인 절삭유 슬러지를 지목했다. 기름때를 타고 순식간에 연소가 확대됐다는 거다.

 

화재를 키운 또 다른 원인으로는 조립식 샌드위치 패널 구조와 불법 증축 의혹이 제기됐다. 사망자 14명 중 9명이 발견된 공장 내 헬스장은 건물 도면에도 없는 무허가 복층 공간이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내부 직원의 증언에 따르면 입사 후 크고 작은 화재만 30번이 넘었고 화재 경보가 한 달에 최소 1~2번은 울렸지만 전문 인력이 아닌 사무직 직원들이 확인하는 주먹구구식 대응이 반복됐다.

 

이 참사는 단순히 한 기업의 안전 관리 부실로만 치부할 수 없다. 그 이면에는 우리나라의 위험물 규제 체계가 갖는 구조적 문제가 짙게 깔려 있다.

 

위험물 판정과 시험 체계는 일본 소방법의 시험 규격과 임계치 기준을 사실상 그대로 이식한 것이다. 작은 불꽃 착화 시험과 자연발화성 시험 등 그 형식은 일본과 판박이다. 하지만 제도의 외형을 빌려오는 것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행정 역량을 함께 갖추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일본의 위험물 행정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 건 단순히 제도 설계가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다. 소방청 산하의 위험물 전담 조직이 전국 단위로 정비돼 있고 고도로 훈련된 위험물 취급 감독관이 개별 시설을 정기적으로 점검하며 방대한 시험 데이터와 판례의 축적을 통해 기준의 해석과 운용에 높은 일관성을 유지한다.

 

법령의 조문 하나하나가 실제 시험 절차와 판정 기준으로 촘촘히 뒷받침되고 그 절차를 수행할 인력과 장비가 제도적으로 확보돼 있다. 과하다 싶을 만큼의 행정 역량이 있기에 일본의 사전 예방 체계는 현장에서 공허한 선언으로 머물지 않고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거다.

 

더욱이 일본의 이 규제 철학은 관동 대지진과 니가타 지진 등 반복되는 대형 지진으로 인해 화재가 2차 재난으로 번지던 참혹한 경험에서 비롯됐다. 1차 재난을 막을 수 없다면 발화 자체를 원천 차단하겠다는 극도로 보수적인 사전 예방 철학은 그 물리적ㆍ역사적 배경 위에서 이론적 정당성을 갖는다.

 

우리나라는 철학적 배경도, 그것을 집행할 행정 역량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채 제도의 껍데기만을 수십 년째 유지해왔다. 위험물 전담 인력의 부족과 시험 인프라의 불균형한 분포, 판정 기준 해석의 일관성 결여가 그 실상이다.

 

아무리 정교한 규범을 법으로 규정해도 현장에서 실효적 집행이 따르지 않으면 그것은 행정 공백을 정교하게 포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안전공업 화재는 그 공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고다. 해당 공장은 위험물 허가 대상 사업장이었다. 나트륨이라는 고위험 물질을 취급하고 있었는데도 그 위험성에 걸맞은 시설 관리와 소방 대응 체계는 갖추지 않았다.

 

15년 넘은 노후 집진 설비는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됐고 법령상의 기준은 존재했지만 그 기준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현장의 집행 고리는 끊어져 있었다. 엄격한 사전 예방규범이 선언돼 있어도 그것이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화재는 '예고된 참사'로 반복될 뿐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일본식의 극도로 보수적인 '사고 차단' 중심 체계를 계속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실정에 맞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할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유엔(UN) 모델규칙과 GHS 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 유엔 체계는 초기 발화를 법률로 선언해 틀어막는 방식 대신 화재 발생 이후 피해가 어떻게 확산되는지를 연소속도 등 실증적 데이터로 측정하고 통제하는 '리스크 및 시나리오 기반'의 관리 체계다.

 

이 접근은 대전 참사가 드러낸 문제 즉 '발화 이후의 급격한 연소 확대'라는 현실에 더 직접 대응한다. 절삭유 슬러지를 타고 순식간에 번진 불길과 샌드위치 패널이 연소를 가속화한 구조, 대피로가 차단된 공간 등 발화 이후의 피해 확산 시나리오를 미리 상정하고 관리하는 체계가 있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던 요소들이다.

 

유엔 체계로의 전환은 국제적 정합성 확보라는 측면에서도 시급하다. 화학물질의 국가 간 유통이 활발한 상황에서 국제 기준과 괴리된 규제는 무역의 걸림돌이 될 뿐 아니라 관련 산업의 경쟁력을 잠식한다. 우리의 제조업이 글로벌 공급망 안에 깊이 편입돼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국제 표준과 동떨어진 위험물 분류ㆍ관리 체계를 고집하는 건 산업적으로도 정당화되기 어렵다.

 

물론 제도 전환은 단순히 법령을 바꾸는 것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대전 참사는 그 사실을 다시 한번 엄중하게 상기시킨다. 새로운 체계는 그것을 실질적으로 집행할 행정 인프라(전문 인력, 시험 장비, 현장점검 체계, 일관된 판정 기준의 운용)와 함께 구축돼야 한다. 제도와 집행 역량이 함께 성장하지 않는 한 어떤 체계도 다시 공허한 선언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74명의 사상자. 대전 참사가 단순한 개별 기업의 안전 불감증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그친다면 우리는 같은 참사를 또다시 맞이하게 될 거다. 이번 비극을 위험물 규제 패러다임을 근본부터 재검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죽음을 딛고 만들어지는 제도 개혁이어야 하기에 더욱 철저하고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

 

권오종 (주)켐앤디지 국제위험물운송 강사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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