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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칼럼] 은마아파트 화재, 다음은 어디인가?-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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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호 한국소방기술사회 재무이사 | 기사입력 2026/04/10 [12:17]

[엔지니어 칼럼] 은마아파트 화재, 다음은 어디인가?- Ⅱ

이승호 한국소방기술사회 재무이사 | 입력 : 2026/04/10 [12:17]

▲ 이승호 한국소방기술사회 재무이사

 

“노후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니 모든 아파트에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하라”는 식의 접근은 또 다른 일괄 규제에 불과하다.

 

지금처럼 소급적용 범위를 용도와 시설 종류로 정해두는 방식에서 벗어나 화재위험평가를 통해 설치 필요 여부를 판단하는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

 

건물의 구조적 특성은 어떠한지, 연소 확대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재난 약자 비율은 높은지, 실제 피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얼마인지, 건축자재의 가연성은 어떤 수준인지, 전기ㆍ가스 설비의 위험도는 어떠한지, 관할 소방서와의 거리와 출동 여건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요소를 바탕으로 객관적인 위험도를 도출한 뒤 ▲반드시 소방시설을 신설해야 하는 건물 ▲부분적 보강으로 충분한 건물 ▲기존 설비 유지로도 안전 수준이 확보되는 건물을 구분해야 한다.

 

지금처럼 대상과 설비를 일괄 지정하는 방식은 행정적으로는 간편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재 안전의 사각지대가 반드시 발생한다. 위험이 낮은 곳에는 과도한 부담이 지워지고 정작 위험이 큰 곳은 제도 밖으로 남는다.

 

건물의 ‘용도’가 아니라 ‘위험도’에 따라 화재 피해 규모가 달라진다. 제도 역시 그 원리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 100% 적용이 답은 아니다. 소급적용 제도에는 또 하나의 구조적 문제가 있다. 바로 ‘전면 적용’이라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스프링클러 설비를 모두 소급설치하도록 결정됐다고 생각해보자. 선택지는 두 가지다. 법 기준을 100% 충족해 설치하거나 아니면 아예 설치하지 않거나.

 

기존 건축물은 신축 건물과 다르다. 수직ㆍ수평으로 배관을 관통시키기 어려운 구조일 수 있고 층고가 부족할 수 있으며 별도의 펌프실이나 밸브실을 확보할 공간이 제한적일 수 있다. 노후화로 인해 구조 보강 자체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행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면 제도와 현실이 충돌한다. 전면 적용은 안전성 측면에서 이상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설치가 불가하거나 과도한 비용과 구조 변경을 요구한다면 결과적으로 ‘적용 불가’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 사이에서 놓치는 질문이 있다.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비만이라도 설치된다면 화재 위험은 상당 부분 줄지 않는가.

 

완전한 기준 충족이 어렵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위험 저감 기회까지 포기하는 건 합리적 접근이라 보기 어렵다. 우리의 목적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목표는 완벽한 법 적용이 아니라 그 건물에서 가능한 최선의 안전 확보다.

 

따라서 먼저 살펴봐야 할 건 “법을 모두 적용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건물에서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범위는 어디까지인가”다. 실현 불가능한 기준을 선언적으로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

 

안전은 형식이 아니라 작동 가능한 대안에서 시작된다. 전문가가 제도 중심에 서야 한다. 소급적용 대상의 판단, 소방시설의 적용 범위 설정, 보강 수준의 결정. 이 모든 건 획일적인 용도 구분이 아니라 전문가의 화재위험평가를 통해 도출돼야 한다.

 

화재위험평가는 단순한 체크리스트가 아니다. 건물의 구조와 사용 형태, 수용 인원, 연소 확산 가능성, 피난 조건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실제 위험 수준을 수치화하고 그에 맞는 대응 방안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이를 통해 전문가는 단순히 설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아니라 어떤 설비가 꼭 필요한지, 어디까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어떤 조합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목표는 해당 건축물의 현실 속에서 달성 가능한 최대한의 안전도를 확보하는 것이다. 전면 설치가 또는 부분 보강이 합리적일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선 사용 제한 판단까지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건 법조문 나열이 아니라 위험을 읽어내는 전문가의 판단이다.

 

다음은 어디인가. 은마아파트 화재는 예상하지 못했던 불의의 사고가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 사례이며 이미 많은 소방 전문가들이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있던 문제의 현실화다.

 

건물의 실제 위험이 아니라 ‘종류’로 화재 위험을 일괄 판단하는 체계, 100% 전면 적용 아니면 아예 미적용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이 틀을 바꾸지 않는다면 같은 유형의 사고는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아니, 반복될 것이다. 은마아파트 화재. 그 다음은 어디인가.

 

이승호 한국소방기술사회 재무이사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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