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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인가, 설치상 하자인가, 사용상 부주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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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기사입력 2022/04/20 [10:00]

[화재조사관 이야기] 기계적 요인인가, 설치상 하자인가, 사용상 부주의인가?

경기 김포소방서 이종인 | 입력 : 2022/04/20 [10:00]

대부분 화재 현장에서 피해자는 내 잘못이 아니고 남의 잘못으로 화재가 발생한 듯 말한다. 자기방어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쩌면 인지상정일 거다.

 

화재로 피해 본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보통의 생각은 내가 소유하고 점유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한 게 아니라 남의 소유, 남이 점유한 공간에서 화재가 발생해 내가 피해 본 거란 생각으로 배상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고 한다.

 

화재보험에 가입돼 있다면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쉬고 보험 가입이 없다면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인다. 화재 원인이 제조물이라면 한편으로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제조물을 구매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체념하는 사람도 있다.

 

화재보험에 가입했다면 조금 도움이 되지만 화재로 인한 피해를 완전히 복구하거나 돌이킬 수 없다. 예방이 최고다.

 

우린 평소 지켜야 하는 안전수칙을 쉽게 망각하거나 간과하고 지나간다.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하곤 한다. ‘설마 어떻게 되겠어?’, ‘설마 이 정도쯤이야…’ 화재나 안전사고는 큰 잘못으로 발생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소소한 부분을 망각했을 때 발생한다. 기본적인 안전수칙과 예방정책을 지켜야 안전사고나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안전은 절약하면 안 된다. 안전은 늘 지켜야 하고 안전에 필요한 재화나 움직임 등은 반드시 넉넉하게 활용해야 한다. 

 

봄날 아파트 상가에 있는 세탁소에서 ‘펑’ 소리와 함께 화재가 발생한 사고다. 세탁소 화재는 10여 년 전만 해도 잦았으나 세탁에 사용하는 세제가 개발되고 세탁기 구조가 개선되면서 현저하게 줄었다.

 

대부분 세탁기나 건조기 화재는 일부 부주의 때문에 발생하는데 이번에 소개할 세탁소 화재는 드라이 세제를 절약하는 기계에서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신고자와 목격자 진술을 청취하라!

신고자 한 씨는 인근 아파트에서 휴식 중 ‘펑’ 소리가 들려 발코니 밖을 내다보니 세탁소에서 불길이 나와 신고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세탁소에 있던 관계자 배 씨는 회수기에서 ‘펑’ 소리와 함께 불이 나왔고 불길이 세탁해 놓은 옷에 옮겨붙어 밖으로 대피했다고 했다.

 

배 씨는 불길이 자신의 옷에도 옮겨붙어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었고 구급차를 이용해 화상 전문병원으로 바로 이송됐다. 화재 당시 세탁소에는 세탁기 2, 건조기 1, 회수기 1대가 설치돼 있었다.

 

▲ [사진 1] 화재 발생 세탁소


세탁소 내부에서 외부로 화염 전파가 있었던 흔적이 식별됐다. 당시 폭발이 얼마나 강했는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점포 앞에 흩뿌려진 듯한 탄화잔류물로 볼 때 압력파가 상당했을 거로 추정된다.

 

▲ [사진 2] 세탁소 내부


세탁소 내부는 전소한 형태로 세탁해 걸어 놨던 옷들이 모두 소실됐다. 화재 하중이 강하게 걸리고 상단 철재 구조물이 만곡해 소락된 형태다.

 

연소하고 잔류한 흔적에서 일부 방향성이 식별되기는 하나 연소 패턴의 진위를 논하긴 어렵다. 점포 양쪽이 개방돼 있었고 내부 가연물이 완전히 건조한 의류로 가득 차 있었기에 연소 방향성을 쉽게 논단하기 어렵다.

 

가연물을 확인하라!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에 사용하던 유기용제로 인한 화재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현재는 세제가 개발되고 불연성으로 점차 바뀌면서 현저하게 줄었다. 다만 드라이클리닝에 사용하는 유기용제는 고가다. 따라서 경제적 이유로 재사용을 권장하며 증발하는 유증을 회수해 재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화재가 발생한 세탁소에서 사용하던 세제나 드라이클리닝 세제는 점화온도가 200℃로 확인된다. 인화점은 40℃ 이상이라 잘 안 타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하지만 세탁기가 세탁을 위해 회전하다 보면 세제에 기포가 발생하고 증발해 유증이 생긴다. 세제 유증은 공기보다 무겁기에 바닥에 체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겨울엔 출입문이나 환기구를 닫아 놓는 경우가 많아 유증 체류가 가증된다. 쉽게 밖으로 환기되지 않고 내부에 잔류하는 경우가 많다. 세탁소 방문 시 특유의 세탁소 냄새를 한 번쯤 경험했을 거다.

 

세탁과 건조 과정을 이해하라!

드라이클리닝은 가정에서 하는 세탁과 방법이 같다. 다만 가정에서는 가정용 세탁기에 일반 산소계 세제와 물로 세탁하는 반면 세탁소에서는 공업용 세탁기에 유기용제를 사용한다.

 

세탁소는 유증 배출을 위해 연통을 별도로 설치해 사용하기도 한다. 출입문을 닫고 사용하는 겨울철이나 이른 봄에 세탁소 화재가 많은 건 드라이클리닝 시 발생하는 유증에 착화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탁소에서 드라이클리닝을 할 때 유기용제가 회전하며 증발하는 유증을 회수하기 위해 회수기를 설치하곤 하는데 회수기에서 종종 화재가 발생한다.

 

현재는 회수기를 사용하지 않는 추세다. 세탁기가 개발되면서 가정용과 같이 일체형으로 건조하고 건조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은 연통을 통해 밖으로 배출하는 구조로 설치한다.

 

세탁소에서 세탁기는 세탁 전용으로 사용하고 건조기는 유증 회수기와 연결해 유기용제를 회수하면서 회전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반드시 연통을 설치해 유증이 세탁소 내에 체류하지 않게 하고 드라이클리닝 후엔 내부를 환기해 비중이 높은 유증이 체류하는 걸 방지해야 안전하다.

 

세탁기 형태를 확인하라!

신고자는 ‘펑’ 소리를 듣고 공동주택 창문 너머로 보니 세탁소에서 불이 나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세탁소에서는 왜 ‘펑’ 소리가 난 걸까? ‘펑’ 소리의 근원을 확인해 봐야 한다.

 

▲ [사진 3] 건조기 확인


건조기 문틀은 하얗게 변색해 본체에서 이탈된 형태였다. ‘펑’ 소리는 건조기가 폭발하는 소리였던 거다. 탄화형태는 고루 연소해 연소 잔류물로는 방향성을 확인할 수 없으나 철재에 잔류한 수열 형태로 방향을 추론할 수 있다.

 

▲ [사진 4] 건조기 문


소락 형태를 살펴라!

건조기 문짝이 바닥 하단부에 있었던 건 처음에 폭발하면서 소락한 형태로 확인된다. 즉 문짝이 맨 아래 있었다는 건 화재보다 폭발이 선행돼 건조기 문짝이 바닥에 떨어지고 그 위로 의류 등 가연물이 연소하며 소락했다고 판단했다. 이런 형태는 주택화재에서 심심찮게 확인된다.

 

냉장고와 같이 아래위로 두 개 문짝이 있는 가전제품 중 문짝 소락 형태로 화염의 진행 방향을 살펴 추정할 수 있다. 즉 냉장고 냉동실 문이 바닥 맨 아래 있었다면 상단에 화염이 있었다는 방증이다.

 

일반적으로 냉동실이 위에 있어 화염이 위에 있을 때 냉동실 문을 지지하고 있는 힌지1)가 먼저 소실되고 지지력이 저하되면서 문짝이 탈락한다.

 

이런 형태로 건조기 문짝이 바닥 맨 아래 있었던 건 처음 펑 소리와 함께 소락했단 거다. 어쩌면 이러한 단순한 논리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력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 [사진 5] 회수기


[사진 5]는 건조기 상단에 설치된 회수기다. 전면 필터 부분의 문이 이탈되고 배기관은 파열돼 이탈된 상태로 잔류했다. 회수기의 전체적인 모습은 약간 부푼 듯한 형상이었다. 출화 형태나 국부적인 탄화형태는 관찰되지 않았다.

 

탄화형태와 잔류물을 확인하라!

▲ [사진 6] 세탁기 내부

 

세탁기 문이 개방된 상태로 잔류했으나 내부 세탁물에 화염 전파가 없는 것으로 볼 때 세탁 중이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반면 건조기 내부에 있던 세탁물은 탄화하고 그을린 형태로 잔류해 있었다.

 

세탁기 내부와 비교했을 때 건조기 내부 의류 탄화형태와 그을린 형태 모두 심하게 잔류했다. 탄화형태로 볼 때 세탁기보단 건조기에서 화재가 발생했거나 인근에 발화지점이 있다는 방증이다.

 

가능하다면 같은 기종과 비교하라!

주변에 같은 기종의 세탁기나 건조기 그리고 회수기를 사용하는 곳을 찾아 비교해 보면 확연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원인 조사에도 큰 도움이 된다.

 

▲ [사진 7] 같은 기종의 건조기


인근 세탁소를 섭외해 같은 기종의 건조기를 비교ㆍ확인했다. 이런 경우 실물을 보고 문제점이나 화재 시 연소 확대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고 객관적 증거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인근 세탁소 건조기는 연통을 설치해 밖으로 배연하는 구조로 설치돼 있었다.

 

▲ [사진 8] 회수기


인근 세탁소에서는 회수기와 건조기를 일체식으로 설치해 사용했다. 회수기 오른쪽 하단에 건조기와 연결된 알루미늄 자바라 형태의 관이 연결돼 있다.

 

이 제품 업체에서는 회수기를 사용하도록 권장했으나 세탁소에서 화재가 빈번하고 폭발이 발생하는 점포도 있어 회수기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외부로 배관을 연결해 환기하며 사용한다고 했다.

 

신고자와 관계자 진술을 확인하라!

세탁소 관계자와 신고자의 진술이 일치했다. ‘펑’ 소리와 함께 회수기에서 불길이 나와 순식간에 건조해 둔 옷에 옮겨붙었고 자신이 입고 있던 옷에도 붙었다고 했다.

 

세탁소는 남북으로 출입문이 있었다. 폭발로 인해 출입문이 개방되고 유리창이 모두 파괴됐다. 공기의 유동이 활발해 화재가 순식간에 연소 확대했던 거다.

 

화재 원인을 검토하라!

우선 인위적인 착화가 가능하나 내부에 인명이 있었다. 게다가 화재로 인한 경제적 이득보단 손실이 크고 영업이 안정적이었다는 진술과 주변인의 얘기를 수집한 결과 방화 가능성은 작은 것으로 판단했다.

 

회수기는 건조기에서 세탁물 건조 시 증발하는 유증을 필터를 통해 회수ㆍ냉각해 액체와 기체로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기체는 외부로 증발시키고 액체는 회수해 재사용하는 공정이다.

 

신고자가 ‘펑’ 소리를 들었다고 한 점과 내부에 있던 관계자 또한 ‘펑’ 소리를 듣고 화재를 인지했다는 점을 미뤄볼 때 전기적 요인에 의해 화재가 발생한 거로 짐작했다.

 

건조에서 발생하는 유증이 회수기에 전량 회수되지 않으면 건조기와 회수기에 유증이 체류한다. 이때 건조기 열과 회수기에서 사용하는 냉각기가 작동하면 스파크가 발생해 점화원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건조기는 기계로 건조기와 회수기가 세트 구성이다. 건조기 문짝은 폭발 충격으로 탈락해 바닥 맨 아래에 있었다. 소락물이 발견된 형태와 관계자 진술이 일치했다. 

 

건조기에서 발생한 유증을 회수기에서 회수해 액체와 기체를 분리하는 과정에서 냉각기가 작동할 때 발생하는 스파크에 의해 불이 날 수 있다. 건조기와 회수기는 별도 회사에서 각각 제작됐으나 유증을 회수하도록 일체형으로 설치해 하나의 기계로 보면 기계적 구조에 의해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

 

결론

회수기 필터를 자주 청소해 유증 회수 시 공기 유동이 원활하도록 필터 청소를 성실히 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소홀히 하면서 화재가 발생했다. 회수기 작동과정에서 체류한 유증은 냉각기를 통해 기체가 배출돼야 하지만 배출되지 않고 회수기 내부나 건조기 내부에 체류했을 가능성이 크다.

 

회수기를 청소하지 않았거나 냉각기 유증이 적정량 이상 체류하고 있었다면 회수기 작동을 멈추도록 안전장치를 설계함이 타당할 거로 판단된다. 

 

이번 화재 사고는 건조기에서 발생한 거라기보다 회수기 이상 작동 때문에 기체가 원활하게 배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냉각기 작동 시 발생한 스파크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다.

 

 


1) 힌지: 구조물 지지점으로 수평 수직은 고정 지점.

 

경기 김포소방서_ 이종인 : allway@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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