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 받아라~ 25년 전 입대 후 자대 배치를 받고 인사담당관을 따라 떨리는 마음으로 2년간 근무할 내무실로 들어가던 그때는 두려움이 가득했었다.
하지만 남극에 아라온호를 타고 기지 앞바다에 도착한 후 헬기로 기지에 도착해 현관 입구에서 박수를 받으며 들어서던 1년 전, 그때는 두려움보다 앞으로 나에게 벌어질 일들에 대한 기대와 흥분으로 가득했다. 패러글라이딩하기 위해 도약할 때의 기분과 흡사했다.
남극을 떠날 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어느 날. 11월 초부터 사나흘에 한 번씩 남극에 들어오는 이탈리아 수송기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날따라 비행기는 착륙 예정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도착하지 않았다. 날이 추우니 평소라면 불평부터 했을 텐데 그날은 이탈리아기지 대원들과 수다를 떨며 분위기를 즐겼다.
얼마 후 수송기가 해빙 위에 착륙했다. 수송기를 기다리던 수많은 차량 행렬 끝에서 하나둘 수송기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그토록 기다린 11차 월동선발대가 도착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잠시 후 이탈리아 관제탑으로부터 항공기 부근으로의 접근 허가 무전이 날아왔다. 우린 남극의 블리자드보다 더 빠른 속도로 준비된 트럭과 설상차로 항공기 근처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11차 월동대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우리가 그러했듯이 남극의 설원이 신기한 듯 휴대전화를 들어 주변 경치와 타고 온 수송기의 모습을 담기 위해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그런 그들의 짐을 화물차에 옮겨 싣고 설상차에 탑승 안내를 하면서 11차 월동대원들을 관찰했다.
그중 이미 메신저로 간단한 소개와 업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던 11차 안전대원을 쉽사리 찾을 수 있었다. 그에게 정보요원이 조심스럽게 접선하는 것처럼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혹시 11차 안전대원이신가요?” “반갑습니다!”
그는 밝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인사는 마치 첫 자대 배치에서 씩씩하게 내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서면서 하는 “신병 받아라”의 느낌이었다.
우리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기지에 찾아온 불청객 감기 일 년 내내 추운 남극에서 생활하는 내게 종종 지인들은 “감기 조심하라”는 당부를 전했다. 하지만 사실 남극에서 생활하면 감기 걸릴 일이 거의 없다. 감기는 보통 바이러스에 의한 상기도 감염으로 발생하는데 극야기간 월동대원 18명 이외에는 감기바이러스를 전파할 생명체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극의 하늘길과 뱃길이 열리면서 하계연구대원들을 비롯한 외부 사람들이 기지에 방문하니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청정지역에서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이 약해져 있는 10차 월동대 모 대원이 감기에 걸려 버렸다.
평소 매우 건강했던 모 대원은 꽤 오랜 시간 고생하다가 결국 기지 내 병원에서 입원 치료까지 받고 나서야 회복했다. 의료대원은 외부 방문객이 데려온 바이러스에 감염됐을 거로 짐작했다. 그 이후부터 귀국하는 사이에 일부 대원이 발열을 동반한 몸살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일이 계속됐다.
나 역시 귀국 후 일주일 정도 감기로 앓아누웠다. 너무 장시간 바이러스가 없는 청정한 지역에서 지낸 호사가 각종 바이러스가 공존하는 인간 세상에서는 역효과를 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남극에선 감기에 걸리지 않을까? ‘남극은 생물량이 아주 적기 때문에 바이러스가 퍼지기 어려운 환경이고 외부 요인만 없다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가 현재까지의 정설이다.
장보고 난민 동계기간 기지에서 18명만 생활하다가 하계시즌이 시작되면서 많은 연구원과 방문자가 함께 생활하게 되자 기지는 활기가 넘쳤다. 그 덕분에 분위기도 많이 밝아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사람이 많아지면서 일상생활이 조금 불편해지는 일도 발생했다.
헬스장과 스크린골프 연습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운동을 마음껏 하지 못하는 작은 불편함부터 설거지, 청소에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래도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었는데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기지 내에서 체류할 수 있는 인원은 80명인데 정원을 넘은 인원이 체류하게 되면서 숙소가 모자랐다. 결국 10차 월동대 중 추첨을 통해 일부 대원이 비상대피동으로 이사해 출남극할 때까지 지내기로 했다.
비상대피동은 말 그대로 화재나 긴급상황으로 본관동을 사용하지 못할 때를 대비해 비상시 사용할 수 있는 별관이다. 그렇다 보니 편의시설이 모여있는 본관보다 불편하고 식사나 아침 회의 때마다 본관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출남극이 2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기존 방에서 짐을 다 빼고 임시 숙소에서 지내려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일부 대원은 짐을 다목적실에 두고 본관동에 창고로 쓰는 공간이나 당직 근무자의 침대에서 자는 등 난민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며 지낼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대장님의 반대로 그 계획은 무산됐고 비상대피동으로 이사 가야 했다. 막상 이사하니 꼭 펜션에 놀러 온 것 같은 분위기였다. 소수 인원만 지내니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오히려 다른 대원들이 놀러 오거나 자고 가기도 했다. 그렇게 난민이 돼 불평이 많았던 대원들은 비상대피동에서 남극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만들며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했다.
인수인계 그리고 이탈리아 빵 11차 월동연구대가 입남극한 다음날 대면식을 시작으로 업무 인수인계가 진행됐다. 11월은 하계연구원들이 입남극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바쁜 나날이 이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따로 인수인계하는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아 업무 중 틈틈이 진행했다.
남극에 오는 소방관은 안전대원이라는 직책으로 오지만 사실상 남극이라는 곳을 처음 접하기 때문에 모든 게 새롭고 어렵게 느껴진다. 나 역시 그러했고 내 앞의 선배 안전대원들 역시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업무 인수인계는 최대한 자세히 오랜 시간을 할애해 꼼꼼히 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각종 교육자료 등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아낌없이 공유했다.
하루에도 수차례 이착륙하는 헬기 유도와 안전관리 업무부터 11월에 진행되는 각종 연구지원 활동 등에 대한 인수인계가 이뤄졌다.
사실 나는 남극에 도착하기 며칠 전 해빙이 깨져 해빙에 대한 업무 인수인계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11차 안전대원이 선발대로 일찍 입남극했고 해빙이 녹거나 깨지지 않아 해빙 활동에 대한 업무 인수인계를 많이 할 수 있었다.
기지에서부터 이탈리아기지까지 가는 해빙 루트와 해빙 활주로 설치 지원을 위한 각종 업무를 인수인계했다. 하루는 이탈리아기지에서 항공화물을 수령하는 방법과 창고 위치 등을 인수인계하기 위해 이탈리아기지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마주친 이탈리아 대원의 초대로 기지 내 휴게실에서 이탈리아의 자존심이기도 한 커피와 젤라토, 이탈리아기지 셰프가 직접 만든 빵을 맛볼 수 있었다.
오전 11시쯤이었는데 간헐적 단식을 하던 때라 내 다이어트 원칙으로는 12시까지 음식을 먹어선 안 됐다. 하지만 빵 냄새가 너무 좋았고 언제 또 이탈리아 셰프가 직접 만든 수제 빵을 먹어볼 수 있을까 싶어 갈등이 시작됐다.
‘한 조각만 먹을까? 말까? 지금 탄수화물을 더 먹는 건 다이어트에 최악일 거야!’
마침 옆에 있던 중장비 대원이 빵을 하나 남겼다. ‘싸가서 기지에 돌아가면 먹어야겠다’ 싶어 키친타월에 싸서 주머니에 넣는 찰나 이탈리아 대원이 불렀다. 마치 도둑질을 하다 걸린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뜻밖에 이야기가 들렸다.
“저기 테이블에 더 있으니 가져가세요” “This is enough for my friend”
얼굴을 붉히며 짧은 영어로 답했다. 그땐 창피했지만 지금 와 생각하니 그 또한 추억으로 남게 됐다. 하루하루 인수인계가 진행될수록 이제 남극을 떠난다는 사실이 실감 나면서 모든 시간이 조금씩 아쉬워졌다.
우린 시즌 첫 아라온호가 입남극한 후 11차 월동연구대가 1년간 사용할 각종 화물 컨테이너 하역업무를 무사히 마쳤다. 하역업무의 하이라이트인 남극에서 1년간 발전용으로 사용할 유류 하역작업을 마지막으로 장보고 10차 월동대의 업무이자 인수인계가 막을 내렸다.
10차 월동대의 마지막 업무 하계시즌이 시작되면서 여러 분야의 각종 연구를 위한 많은 업무가 진행돼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바쁜 일상을 보냈다.
그중 가장 큰 업무는 10차 월동대에서 사용한 폐기물과 연구 장비, 샘플 등을 담은 컨테이너 반출과 11차 월동대원들이 1년 동안 먹고 마실 식음료부터 각종 필요 장비까지 담긴 컨테이너 하역작업이다.
그리고 1년간 사용할 유류를 유류 탱크에 보급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이런 하역작업을 앞두면 안전대원은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아진다. 아라온호가 기지 앞바다에 입항하기 전 반출 컨테이너를 부두 인근에 위치시키는 일부터 안전대원이 동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하역작업 전 하역작업에 대한 위험성을 평가하고 평가 결과에 따라 위험성 제거와 재평가를 거쳐 공유하는 위험성 평가 회의를 진행해야 했다. 하역 전 안전교육은 이론과 실습이 병행됐다.
아라온호에서 컨테이너를 크레인으로 이동할 땐 해빙에 내리거나 벌크 형태로 내리게 되는데 이 모든 게 중량물이므로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실습교육이 중요하다.
또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크레인에 연결하는 콘을 설치하거나 제거하는 작업 등은 추락 위험이 있고 연결을 잘못하면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어 꼭 사전 연습을 해봐야 했다.
당연하겠지만 월동대원 대부분은 평생 살면서 컨테이너 위에 올라가 이런 작업을 해본 경험이 전무했기에 안전사고를 예방하려면 연습이 꼭 필요했다.
특히 11차 월동대원들에 대한 인수인계가 함께 진행되다 보니 평소보다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비됐다. 그래도 이것만 끝나면 남극에서의 모든 업무가 종료된다고 생각하니 힘들지 않았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를 육지로 데려갈 아라온호가 입항했다. 이번 하역은 해빙 상태가 두껍고 밀도도 좋아 아라온호에서 해빙으로 컨테이너를 옮기는 해빙 하역을 하기로 했다. 바다에 바지선을 띄우고 보트로 움직이는 해상하역보다는 훨씬 순조롭게 진행됐다.
그렇게 1박 2일간 일반 물품에 대한 하역작업을 마치고 바로 이어 유류 하역작업이 진행됐다. 이 작업은 남극에서 사용할 1년 치의 남극특성에 적합한 항공유(JP-5)를 최대 11만ℓ가 들어가는 9개의 저장 탱크에 채우는 일이다.
안전대원의 임무 중에는 유류 오염방제와 관련 물품에 대한 관리가 있었다. 유류를 주로 사용하는 발전대원이 주축이 돼 유류 하역작업을 한다. 이때 안전대원은 아라온호에서 유류 탱크까지 7~800m가 되는 유류 호스를 연결해 항공유를 옮긴다.
기름이 새지 않도록 잘 연결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연결 부위에 유류 회수 장치를 설치ㆍ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15시간이 넘는 유류 이송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가장 힘든 일이자 큰일이 남았다. 바로 유류 호스 분해 전 호스에 남은 잔유 제거와 기름이 유출될 가능성이 큰 유류 호스 회수 작업이다.
보통 유류 호스에서 잔유를 제거할 땐 대원들이 한 줄로 서서 목봉 체조하듯 들고 있어야 한다. 이번엔 뭐든 뚝딱 만들어내는 기계설비대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1t 트럭 위에 철봉을 설치해 사람들이 들지 말고 차량이 움직여 잔유를 제거하자”
그 공법은 기계설비대원의 이름을 따서 일명 CDS(최동수) 공법으로 명명됐다.
CDS 공법은 엄청난 효과를 냈다. 덕분에 반나절 이상 걸리던 유류 호스 잔류작업이 단 몇 시간 만에 끝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디어를 낸 기계설비대원은 우리의 또 다른 영웅이 됐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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