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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기라 읽고, 안전이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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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유재호 교수 | 기사입력 2026/02/12 [11:30]

[기고] 공기라 읽고, 안전이라 쓴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유재호 교수 | 입력 : 2026/02/12 [11:30]

▲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유재호 교수

작년 한 해 동안 요리로 대박난 ‘어남선생’ 배우 류수영의 영향은 실로 컸다. 조선시대 유교문화의 흔적이 여전한 남성들을 식탁 앞으로 이끌었으니 말이다. 필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당신은 뭐 하냐”는 아내의 말에 그날만큼은 필자가 새우튀김을 맡았다.

 

냄비에 식용유를 붓고 불을 켰다. 온도계가 없어 유튜브의 조언에 따라 나무젓가락을 넣어 기포가 올라오는지를 살폈다. 기포가 약해 “아직 덜 달궈졌네”라고 생각하며 불을 세게 높인 채 재료를 손질하던 중 기름이 이미 임계점을 넘어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놀라서 가스 밸브를 잠그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불꽃이 치솟았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찰나, 생각보다 먼저 손이 움직였다. 후라이팬 뚜껑을 불 위로 덮자 불꽃은 숨을 잃듯 잦아들었다. 산소를 끊는 단 한 번의 행동이 화염을 잠재운 것이다.

 

이렇게 보면 공기 중 산소를 조금만 줄여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카지노나 독서실에서는 오히려 산소를 불어넣는다. 산소가 많을수록 정신이 맑아지고 집중력이 오래 유지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기체가 인간의 의식을 깨우기도 하고 재난을 불러오기도 하니 아이러니하다. 

 

우리는 공기를 너무도 당연하게 마시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 조성비를 들여다보면 놀라운 균형이 숨어 있다. 질소가 약 78%, 산소가 약 21%, 아르곤ㆍ이산화탄소ㆍ수증기 등이 1%다. 반응성이 낮은 질소와 이산화탄소가 산소의 활성을 조절하고, 식물의 광합성으로 재공급되는 산소가 생명을 가능케 하며, 오랜 세월 절묘한 균형을 이뤄왔다. 이 비율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소가 조금만 많아도 지구는 잦은 연소와 폭발로 불안정해지고, 반대로 적어지면 생명체는 호흡조차 할 수 없다.

 

소방안전관리 체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체계는 물적, 관리적, 감독적, 그리고 인적 요소로 구성된다. 물적 요소는 화재를 감지하고 진압하며 대피를 돕는 설비이고, 관리적 요소는 제도와 절차, 점검 체계다. 감독적 요소는 이를 통제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소방관서가 담당한다. 이 네 요소는 마치 공기의 구성성분처럼 서로의 균형을 통해 전체의 안정성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요소에 생명을 불어넣는 ‘산소’는 무엇일까? 바로 사람, 즉 소방안전관리자와 근무자, 그리고 거주자들이다. 아무리 첨단 설비가 있어도 그것을 이해하고 점검하며 훈련으로 익히지 않으면 안전은 현실이 되지 않는다. 설비는 프로그램대로만 움직이고 법령은 조문 속에 머문다. 그러나 사람은 그 틀 안에서 판단하고 해석하며 행동한다. 산소가 질소의 바다 속에서도 존재의 의미를 잃지 않듯 사람은 복잡한 설비와 제도 속에서도 안전관리의 중심축으로 기능해야 한다.

 

물적 요소가 많다고 해서 안전이 강화되는 것은 아니다. 설비가 늘수록 관리의 사각이 생기고 제도가 복잡할수록 책임의 흐름이 흐려진다. 결국 안전의 본질은 적절한 구성과 조화에 있다. 공기가 질소로 채워져야 안정하듯 설비와 제도는 기반이 된다. 그러나 산소가 없으면 공기가 숨을 잃듯, 사람이 빠진 안전관리는 작동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인적 요소는 단순한 구성요소가 아니라 다른 모든 요소의 효율을 결정짓는 ‘활성 인자’다. 공기의 대부분이 질소이지만 산소가 있어야 숨 쉴 수 있듯, 소방안전관리도 설비가 아무리 완벽해도 사람의 의식과 전문성이 작용하지 않으면 그 체계는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

 

공기의 균형이 무너지면 숨쉬기 어려워지듯, 사람이 빠진 안전관리도 결국 스스로의 숨을 잃는다. 제도 속에 다시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어야 한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소방안전관리자를 둬야 하는 40만여 건축물의 약 절반이 업무대행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곧 건물의 절반이 ‘대리호흡’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뜻한다. 무자격자 선임, 안전관리자 부재, 책임의 외주화가 늘어나면서 자율소방안전관리의 정신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공기가 탁하면 숨쉬기 어렵듯 제도가 탁하면 현장의 안전도 사라진다. 탁한 공기를 청정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결국 ‘사람의 호흡’이다. 사람 중심의 안전관리로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업무대행이 불가피한 경우라도 자격 있는 소방안전관리자가 현장에 상시 배치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이는 소방안전관리자 자격 제도의 근본 취지를 되살리고 소방안전관리의 ‘산소 순환’을 회복하는 최소한의 처방이다.

 

사람이 떠난 안전은 공기 없는 방과 같다. 그래서 우리는 공기라 읽고, 안전이라 쓴다.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 유재호 교수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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