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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 “화재 위험 막을 방화포가 없다”… 강제 범법자 내몰리는 건설 현장

인증 방화포 사용 의무화됐지만 시장엔 '품귀', 시공 현장 '발 동동'
"샀다는 증거라도 남겨야지"… 고육지책 구매 이력 남기는 촌극까지
물량도 부족한데… 방화포 KFI 검사 과정서 10개 중 4개가 ‘불합격’
기준 완화하려는 소방청, 시점은 가늠 불가… 고용부 “일시적 병목”
건설소방협의체 “현장 특성 따라 방화포 사용 불가피, 탁상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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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 기자 | 기사입력 2026/04/03 [23:08]

[집중취재] “화재 위험 막을 방화포가 없다”… 강제 범법자 내몰리는 건설 현장

인증 방화포 사용 의무화됐지만 시장엔 '품귀', 시공 현장 '발 동동'
"샀다는 증거라도 남겨야지"… 고육지책 구매 이력 남기는 촌극까지
물량도 부족한데… 방화포 KFI 검사 과정서 10개 중 4개가 ‘불합격’
기준 완화하려는 소방청, 시점은 가늠 불가… 고용부 “일시적 병목”
건설소방협의체 “현장 특성 따라 방화포 사용 불가피, 탁상 행정”

최영 기자 | 입력 : 2026/04/03 [23:08]

▲ 공사현장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화포  © FPN


[FPN 최영 기자] = 정부가 건설 현장의 대형 화재 방지를 위해 안전 기준을 강화했지만 법정 기준을 충족하는 제품이 시장에 보급되지 않아 건설사들이 '강제 범법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현장에서는 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는 황당한 상황이 이어지면서 정부 차원의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9월 1일 개정 이후 올해 3월 2일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건설 현장에서 화재위험작업을 할 땐 소방법(성능인증 기준)에서 정한 성능인증 방화포를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과거에는 ‘KOSHA GUIDE(안전보건공단 기술지침)’에 따라 제조된 방화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2023년 7월 1일 소방청이 건설 현장의 화재안전기준에 방화포 규정을 정립하면서 성능인증 제품을 쓰도록 법규를 강화했다. 결국 방화포는 소방법은 물론 산업안전보건법 등 양 법에 따라 건설 현장의 필수품이 됐다.

 

이후 방화포 규격을 놓고 ‘산업안전보건법’과 ‘소방법’ 둘 중 어떤 기준을 따라야 하는지 논란이 일자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서도 ‘소방법’에 따른 성능인증품을 사용하도록 기준을 고쳤다. 이에 따라 현재는 모든 건설현장이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하 KFI)을 통해 성능인증을 받은 방화포를 무조건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다.

 

"돈 준대도 못 사요"... 법규와 시장의 위험한 '미스매치'

문제는 법규가 본격 적용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기준을 완벽히 통과해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업체가 극소수라는 점이다. 

 

<FPN/소방방재신문> 취재결과 소방법에 따라 방화포의 성능인증을 받은 기업은 7개사로 파악된다. 하지만 법 시행 시점인 3월 1일부터 현재(4월 3일)까지 KFI의 법정 검사를 통과한 수량은 2만478개 검사 신청 수량 중 1만2804개뿐이다. 나머지 7674개에 달하는 제품이 검사 자체를 통과하지 못했다. 시중 공급 방화포 수량이 모자란 데 더해 생산 제품 10개 중 4개(37.4%)가 검사 과정에서 탈락하고 있는 셈이다.

 


소방용품으로 분류된 용품들은 최초 인증을 받은 이후 양산 제품마다 사전 샘플링 검사(제품검사)를 통과해야만 시중 보급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불합격 받는 사례가 많다는 건 양산 제품의 품질 유지가 안 되고 있다는 증거다.

 

KFI에 따르면 이 같은 검사 수량 통계는 방화포 길이 3m마다 붙게 되는 제품검사 표식(스티커)의 수량이다. 실제 합격 수량을 길이로 환산하면 3만8412m의 방화포가 시중에 보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로 구성된 건설소방기술협의체에 따르면 보통 건설 현장에서 사용되는 방화포 필요 수량은 건물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A 아파트 현장의 경우 1000m가 필요하지만 380m밖에 구매하지 못했다. 공사현장 규모가 크면 클수록 수량은 더욱 많아진다. B 하이테크 공사현장은 2만3000m 이상이 필요하지만 방화포 자체를 사지 못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2월 두 달 새 착공신고된 건축 현장의 건물 동수는 1만938개 동(1월 5387동, 2월 5551동)에 달한다. 건축 현장의 정확한 필요량을 파악하긴 어렵지만 개별 현장에서 적게는 100m~수만m가 필요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시중에 보급된 수량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건설소방협의체 관계자는 “법이 시행됐으니 감독기관에서 기준대로 공사를 진행하는지 확인하러 나오는데 정작 시장에는 사용할 수 있는 인증 방화포 자체가 없어 범법자가 될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고육지책… 건설 현장 “불가항력적, 조치 시급”

턱없이 부족한 방화포 공급 물량 탓에 건설 현장에서는 웃지 못할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다. 제품을 구할 수 없게 된 건설사들이 향후 법적 책임이나 행정 처분을 피하기 위해 ‘구매 요청 이력’을 필사적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일부 현장에서는 제품 공급업체에 구매 주문서를 발송하고 업체로부터 ‘재고 없음’ 또는 ‘생산 중’이라는 회신을 받아 보관 중이다.

 

법 위반으로 적발될 경우 ‘우리는 제품을 구매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시장에 물건이 없어 어쩔 수 없었다’는 근거라도 남겨 고의성이 없음을 증명하려는 고육지책이다.

 

건설소방협의체 측은 “공사는 진행해야 하는데 법은 어길 수 없으니 나중에 벌금을 물거나 처벌받을 때 참작이라도 받기 위해 이런 서류라도 챙겨두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시장에 물품이 없다 보니 제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점도 문제다. 건설업계에 따르면 과거 18~30만원 선이었던 제품 가격은 지금 60~80만원을 호가한다. 물건이 없는 데다 경쟁업체까지 적어 소위 ‘부르는 게 값’이다.

 

▲ 성능인증 제품 사용이 의무화되기 이전 사용되던 방화포  © FPN

 

건설소방협의체 관계자는 “제품을 살 수 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턱없이 비싸진 방화포 가격이 과연 합리적인지는 의문이 든다”고 했다.

 

건설업계에선 ‘공급망 붕괴’에 따른 불가항력적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한 정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건설소방협의체 관계자는 “방화포 업계에서는 상반기 내 신제품들이 출시될 예정이라고 주장하지만 지금의 공백기를 메울 방법이 마땅치 않다”며 “정부가 현장 실태를 파악해 제품 수급이 안정화될 때까지 단속을 유예하거나 임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량은 없고 검사 탈락… 앞날도 캄캄

공급 물량이 부족한 방화포 문제의 발생 배경에는 소수 제조사의 생산 능력 한계라는 현실도 있지만 방화포의 법정 성능인증 기준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된다. 

 

고용노동부가 ‘소방법’에 따른 방화포의 성능인증품 사용을 법규에 명시하면서 기존 ‘KOSHA GUIDE’를 준용했던 제품들은 성능 차이로 사실상 인증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KFI에 검사를 신청한 전체 물량 2만478개 중 1만2804개밖에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이유 역시 검사 시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는 게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 한국소방산업기술원에서 실시하는 불티관통시험  © FPN


KFI 관계자는 “지금 불합격하는 제품은 불티관통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제조사의 양산 제품에서 성능이 미달하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방화포 업계에서는 정부의 이번 조치가 그간의 저급 방화포 성능을 대폭 높였다는 시각과 함께 너무 과한 기준이 적용됐다는 평가가 교차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방화포 업계에서는 현행 성능기준이 너무 엄격하다는 이유로 소방청에 기준 완화를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소방청은 업계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기준 개선을 추진 중이다. 이 개정안에는 방화포의 사용 환경과 관리 실태를 고려해 굴곡 내구성 시험방법을 두 가지로 나누는 내용이 담겼다. 현행 기준에 따른 방화포는 ‘굴곡 강화형’, 새로 도입하는 방화포는 ‘기본형’으로 구분해 굴곡 각도 기준을 완화하는 게 핵심이다. 

 

소방청은 이처럼 기준이 조정되면 제품의 ‘불티관통 시험’도 수월해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소방청 관계자는 “제조업체 의견조회 시 업계에서는 굴곡시험이 완화되면 쓸 수 있는 자재 종류가 많아진다는 의견이 많았고 이를 전문기관에 의뢰해 합리적으로 기준에 반영했다”며 “현재 시도 소방본부와 관계기관의 의견조회를 4월 6일까지 진행 중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기준 개정이 언제 될지, 기준 개정 후에는 제품의 원활한 공급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소방청 관계자는 “개정이 완료되는 발령 시점은 내부 행정 절차와 사전규제심사 준비를 하고 있어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고 밝혔다.

 

정부 “일시적 병목”… 건설 현장 “탁상행정

공사현장 안전 법규를 담당하는 고용노동부는 현재의 수급 대란 사태를 일시적 현상으로 보면서도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9월 법 개정 이후 6개월이라는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했지만 시행 직전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일시적인 병목 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다만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에 대비해 수급 상황을 계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티 비산방지 조치로 방화포만이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면서 “(또 다시 유예를 하는 것은) 역으로 법 시행을 성실히 준비해온 업체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에서는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라고 비판한다. 건설소방협의체는 “현장에서는 불티비산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품과 설비를 제작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런 제품들은 특정 치수와 특정 위치, 조건에서만 사용 가능한 경우가 많다”며 “다른 유형의 제품을 일률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게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특히 공사장 특성상 용접 위치가 매번 바뀌고 용접 대상물의 위치 형태들이 다양한 상황에서는 형태를 용이하게 변경해 설치할 수 있는 방화포를 쓸 수밖에 없다”며 “건설 현장의 환경성과 작업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불티비산방지 조치는 사실상 한계가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영 기자 young@fpn119.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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