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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프리카 지평선에 서서 역학조사로 한창 바쁠 때였다. “FM님 저희랑 같이 여행 가시죠!” 같은 건물 옆집과 아래층에 세 들어 사는 이웃인 굿네이버스와 농촌진흥청의 젊은 자원봉사자 김미르, 김도윤, 강교준 선생이 뜻밖의 제안을 해왔다.
유엔(UN) 소속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변지영 선생을 포함한 5명의 젊은이가 오래전 나미비아와 짐바브웨 여행계획을 세웠는데 출발 2주를 남기고 우리 부부의 합류를 타진한 것이다. 노트북까지 가져와 자세한 여행 일정을 설명해 준다.
이동 경로, 숙박, 차량과 텐트 대여 등 하루하루 일정이 꼼꼼하게 계획에 담겨있다. 사실 세렝게티 같은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은 카메룬에 오기로 하면서 마음속에 살포시 끼워뒀었다.
마침 출발도 역학조사가 마무리되는 직후였다. 다만 출장 준비부터 역학조사로 근 한 달을 쉬지 못했고 역학조사 후속 작업이 맘에 걸렸다.
몇 박은 텐트에서 자는 여행 설명을 들으면서 “이 빡빡한 일정을 따라가다 젊은 친구들에게 폐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마음이 껄끄러웠다. 하지만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아프리카 사파리 여행을 못 할 것 같아. 아내가 가고 싶어 한 빅토리아 폭포 일정도 포함돼 있고. 언제 20, 30대 젊은 친구들과 이런 여행을 하겠어?’
라는 생각에 환불 불가(Non-Refundable) 비행기 표를 끊었다.
카메룬에서 아프리카 다른 나라로의 여행은 쉽지 않다. 땅에 낸 길은 험한데 비행기 직항이 드물고 비싸기 때문이다. 아프리카는 러시아와 중국 땅을 모두 품고도 남는 넓은 대륙이면서 나라끼리는 막힌 대륙이다.
이번 여행도 아프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에티오피아를 찍고 다시 남쪽으로 가야 했다. 아디스아바바 볼레(Bole) 국제공항에서 나미비아행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대기시간이 길어 갈 때와 올 때 에티오피아 항공사에서 제공한 숙소에 이틀 머물 기회가 생겼다.
카메룬에 처음 올 때도 볼레 국제공항에서 환승했는데 여유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굿네이버스 조대성 대표 뒷모습만 쫓기 바빴었다. 이번엔 다른 게 눈에 들어왔다. 무엇보다 볼레는 아프리카 허브 국제공항다웠다.
퇴락한 도시의 직행버스 정류장 같은 카메룬 야운데 은시말렌 공항에 익숙해진 내 눈에 볼레는 모든 게 선진적으로 보였다. 공항에 세워진 수많은 에티오피아 항공사 비행기를 보면서 ‘에티오피아는 카메룬보다 1인당 소득이 적은 나라인데 에티오피아 항공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나미비아로 향하는 비행기 좌석 앞자리에 꽂힌 잡지를 보니 에티오피아 항공은 169대 항공기를 보유한 정부가 지분 전부를 가진 국영 항공사로 소개돼 있다. 덩치가 대한항공 급이다.
에티오피아 항공은 볼레를 허브로 아프리카 여러 나라와 세계를 잇는 132개 항공 노선을 운영하며 아프리카 대륙의 항공 노선을 장악하고 있었다.
부패가 ‘상수’인 아프리카에서 정부가 지분 전부를 소유하고도 이런 성공을 거둔 비결에 대한 궁금증이 구름처럼 솟아올랐다. 에티오피아 ET 835 비행기의 작은 창을 뚫고 하늘 위 두터운 솜들이 뜯겨나간 빈틈으로 빛이 눈처럼 흩날리는 아프리카 대지의 속살이 손에 닿을 듯 스쳐 지나갔다.
나미비아. 평원의 바다에 산들이 섬처럼 떠 있다. 저 멀리 산맥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곳, 끝없는 지평선이 땅 위에 걸쳐있는 이곳에서 오랜만에 숨통이 트이는 해방감을 느꼈다.
빈투후크(Windhoek) 공항에서 에토샤(Etosha) 국립공원으로 가는 쭉 뻗은 일직선 도로와 창밖 풍경이 저 멀리 한 점 끝을 향해 달리는 차 안에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만두고 아프리카에 오길 잘했어”라는 말이 잠꼬대처럼 흘러나왔다.
![]() ▲ 나미브 사막 세스림(Sesriem) 가는 길
나미비아는 대한민국보다 땅은 여덟 배 넓고 인구는 16분의 1이다. 몽골 다음으로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 광활한 땅이 온전히 우리로 채워진 착각마저 들었다.
좁은 도로와 시야가 꽉 막힌 야운데 생활에 염증이 나서였을까? 그 넓은 땅을 가로질러 대한민국 영토의 5분의 1 크기인 에토샤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도로를 젊은 친구들이 거침없이 달린다.
오늘은 에토샤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야영이다. 그렇게 달렸어도 캠핑장 마감 시간인 오후 7시 반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예약해 둔 캠핑장 근처 다른 캠핑장을 찾아 잘 수밖에 없었다.
지정받은 캠핑 장소로 가는 차 불빛에 가젤 같은 야생 동물이 움찔하며 뛰어오른다.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보는 야생 동물이다. 아프리카라면 매일 볼 것 같은 원숭이조차 한 마리 보지 못한 내 몸에 흥분이 전류처럼 흘렀다.
이날은 비가 내렸다. 불을 피울 도구도 나무도 없어 빵으로 늦은 저녁을 때웠다. 젊은 동행들은 텐트에서 자고 나와 아내는 차 좌석을 젖혀 매트를 깔고 누웠다. 몸은 불편했지만 숲속 생명이 내는 소리와 낮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야생 동물을 찾아 종일 에토샤 국립공원을 차로 누볐다. 가젤이나 임팔라, 스프링복 같은 영양이 흔하게 보였다. 타조와 얼룩말 무리를 봤고 가끔 긴 뿔이 인상적인 오릭스도 스쳐 지나갔다.
다섯 마리 기린 가족이 우릴 내려다본다. 기린 가족의 뿔에 에토샤 하늘의 구름이 걸려있었고 무지개가 후광처럼 하늘에 떠 있었다. 길가 나무 아래에서 밀회 중이던 암수 사자 커플은 연애를 방해받아서인지 짜증 섞인 저음의 포효 소리를 남기고 숲으로 자취를 감췄다.
![]() ▲ 나미브 사막 듄(Dune) 45
야영지 사막의 적막을 감싼 하늘의 어둠과 별빛을 바라보면서 은퇴 후 버킷 리스트 안에 담아둔 끝이 없을 것 같은 평원을 운전하는 동안 “그만두고 아프리카에 오기 잘했어”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튀어나왔다.
나미비아에서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긴장감도 덜했다. 에토샤로 출발하기에 앞서 슈퍼에서 장을 봤다. 주차장에서 차를 빼던 우릴 상점 직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물건을 두고 갔다며 전해줬다.
검문소 나미비아 경찰은 우릴 잡지 않고 통과시켰다.
후진하다 뒤에 세워 둔 사파리 차량을 보지 못해 빌린 차의 뒷유리가 심하게 부서지고 차체가 찌그러지는 사고가 있었을 때 출동한 경찰은 사파리 차량 운전자 역시 차를 주차장 뒤쪽에 세워 둔 것도 잘못이라면서 쌍방 과실로 처리했다. 뒷돈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여기선 외출하면서 여권을 챙기지 않아 좋았다. 카메룬 야운데 일상을 벗어나 나미비아 사람들의 일상에 들어온 나에게 자연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 땅의 원주인인 흑인들의 삶은 녹록지 않아 보였다.
도시 외곽의 슬럼가와 사막 도시 슈퍼 앞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아이, 사막 길가에서 물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 뒤로 사바나의 끝없는 대지와 사막의 거친 도로를 달릴 때마다 나타나는 백인 소유 농장들의 허술한 경계가 그 크기를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미비아는 평원과 사막처럼 백인과 흑인의 빈부격차가 뚜렷한 경계로 갈라져 있었다. 에토샤와 사막 도시 스와코프문트(Swakopmund)를 거쳐 짐바브웨로 가기 위해 다시 빈트후크로 가던 다른 일행이 시 외곽에서 정지선을 조금 넘었다.
뒷좌석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고 경찰에게 미국 돈 백 달러를 뜯겼다. 카메룬처럼 나미비아에서도 정도만 다를 뿐 부패는 일상에 뿌리 박혀 있는 것 같았다. 한국인들이라고 왜 검은 뒷거래가 없겠는가.
나미비아 수도 빈트후크에서 당한 뒷맛이 씁쓸한 몇 차례 경험을 뒤로한 채 평원을 박차고 옆 나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짐바브웨로 가려면 요하네스버그 탐보 국제공항에서 갈아타야 했다. 공항에 존경하는 넬슨 만델라 사진이 있어 반가웠다.
짐바브웨는 단연코 ‘모시 오아 툰야(Mosi-oa-Tunya)’의 나라다. 모시 오아 툰야는 서양 사람이 빅토리아라고 이름 붙인 폭포를 말한다. 도착 첫날 잠베지강 유람선을 타기 위해 가는 길에 소방서가 보였다.
다음날 택시 기사에게 부탁해 빅토리아시 화재ㆍ구조ㆍ구급 서비스 센터에 들렀다. 직원들은 한국에서 온 전직 소방관이라고 하자 흔쾌히 안내해 줬다. 이들은 3교대 근무를 하고 있었다. 따로 상황실 없이 신고를 센터에서 직접 받고 있었다.
소방차 상태나 장비는 카메룬 소방처럼 생각보다 괜찮았다. 구급차 안에는 낡은 산소통과 지저분한 산소 줄, 오래된 분리형 들것과 앰브 백, 기초 소생용 가방이 전부였다.
어떤 점이 가장 어렵냐고 물으니 “무엇보다 장비가 부족합니다. 훈련도 충분치 않고요. 그런데도 정부 지원이 너무 없네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짐바브웨 의료서비스는 공공과 민간으로 나뉘어 제공된다.
‘카메룬과 짐바브웨 모두 환경은 다르지만 병원 전 응급의료 시스템 수준이 비슷하고 동일한 문제를 겪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바브웨 국경 넘어 잠비아까지 잠베지강 협곡을 따라 반나절을 모시 오아 툰야 폭포를 보며 다녔다. 2001년 미국 연수 때 잠깐 들른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느낀 감동이 돼 살아났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한눈에 담을 수 있지만 긴 계곡을 따라 펼쳐진 모시 오아 툰야 폭포는 카메라 한 프레임에 담아 가둘 수 없어 감탄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었다.
모시 오아 툰야는 현지 부족 말로 ‘천둥 치는 연기(The Smoke That Thunders)’를 뜻한다. 다른 부족들은 ‘무지개의 장소’ 또는 ‘끓은 물’이라고도 부른다. 이 이름들이 빅토리아보다 잠비아와 짐바브웨를 흐르는 숭고한 잠베지강 폭포에 훨씬 더 걸맞다고 생각한다.
잠베지강 폭포에서 무지개를 보고 천둥소리와 함께 물이 끓는 걸 봤다. 아프리카 대륙의 거대한 생명력과 자연의 숭고함, 그리고 폭포 밑의 거센 소용돌이가 카메룬 야운데에 머물던 내 안의 아프리카를 비우고 채워줬다. 그리고 나는 내 안에 바람이 불어오고 있음을 느꼈다.
유기운 서울에서 생계형 소방관으로 30년 근무했다. 현재 소방관 인생을 마무리하고 갑자기 아프리카로 튀어 카메룬 야운데에서 코이카 병원 전 응급의료체계(EMSS) 구축 프로젝트 현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서울대병원 PMC_ 유기운 : waterfire119@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6년 3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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