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이동윤 신부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파푸아 뉴기니아 선교지 체험여행에서 돌아온 지 벌써 3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그곳 정경이 눈에 선해 못 쓰는 글이지만 펜을 들었습니다. 말씀드렸듯이 처음 이 여행에 참가할 때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한국 외방 선교회 신부님들이 선교하시는 파푸아 뉴기니아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휴식과 관광도 겸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곳에서 신부님들과 열흘 동안의 생활은 선교지 체험 이상의 진한 감동의 연속이었습니다. 첫날 긴 열두시간의 비행을 끝내고 수도인 포트모르스비공항에 도착한 것은 아침 6시. 마중 나온 카리타스 수녀회 김 수녀님의 다부진 설명을 들으면서, 이곳이 적도 아래 호주 위에 있는 남태평양의 뜨거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치안의 허술함에 대한 긴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방문단 일행 열여섯명을 카리타스 여자기술고등학교까지 두 번에 나눠 씩씩하게 운전해 나르시는 김 수녀님은 열악한 현지 생활을 이겨내는 영락없이 억척스런 또순언니였습니다. 우리들의 목적지 마당교구까지는 수도에서 다시 한 시간 가량 비행기를 더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그 사이 우리는 여섯 분의 한국 수녀님들이 운영하시는 학교 수녀원에서 첫 미사를 올리고 이 여학교가 취업이 잘 돼 학생이 400여명이나 되는데도 입학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원장 수녀님의 설명을 들으면서 수녀님들의 땀과 정성이 밴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았습니다. 곧이어 점심때라 수녀님들과 즐겁게 점심을 들고 공항에 나가 비행기를 타고 마당공항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 경. 작열하는 태양은 대지를 뜨겁게 달구어 모든 것을 익힐 듯 뜨거운데, 우리 일행은 누군가 미리 섭외한 듯 특별히 공항 출구가 아닌 옆문으로 모두 빠져나오는데 이게 웬 일입니까! 흔히 tv나 그림에서 보았던 전통복장의 원주민들이 온몸에 빨간 물감을 칠하고 조개껍질이나 동물 뼈로 기이하게 장식하고 전통춤을 추며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열대지방 특유의 향이 나는 꽃목걸이를 모두 목에 걸고 즉석에서 구멍낸 코코넛 야자열매를 받아 마시며 잠시 얼떨떨하게 구경하다보니 아하 이게 바로 민족도 다르고 나라도 다르지만,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한 형제이기 때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콧등이 찡해 졌습니다. 존경하는 이동윤 신부님. 저는 그 때 분주히 왔다 갔다 하시며, 색이 다 바랜 낡은 티에 반바지, 슬리퍼 차림의 까까머리 젊은이가 신부님인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우리 일행의 무거운 여행 가방을 작은 짐차에 빙그레 웃으시며 부지런히 옮겨 싣는 모습을 보면서 그저 저희를 도와주는 착한 젊은이로만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일과 중 로망칼라를 하시지 않은 신부님을 거의 뵌 적이 없고, 또 신부님들만 힘든 일을 하시도록 그냥 보고만 있은 적도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소개를 받고나서야 비로소 신부님인 줄 알았습니다. 그날 그렇게 공항에서 신부님과 첫 대면을 하였습니다. 그 때부터 신부님께서는 저희가 마당교구를 떠날 때까지 거의 전 일정을 저희와 함께 하셨습니다. 예의 그 색 바랜 티셔츠와 반바지, 슬리퍼 차림으로··· 첫 날 밤은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당 리조트 호텔에서 묵고, 다음 날 장호창 신부님이 사목하시는 울링간 본당을 향해 짐 싣는 지프차 한대와 봉고 한 대를 두 분 신부님이 손수 운전하시면서 힘차게 페달을 밟으셨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은 야자나무와 끝없이 펼쳐지는 남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두 시간 남짓 달리셨죠. 군데군데 아스팔트 도로가 움푹 패여 곡예 하듯 운전하시는 신부님의 옆모습은 이미 현지인이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창 밖으로는 허름한 옷차림에 맨발인 원주민 아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 며 지나갔습니다. 장 신부님이 사목하시는 울링간 본당. 성당이 언덕 위 안쪽에 아담하게 자리 잡고,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 걸어 올라가는데 가끔 원주민들이 하나 둘 인사할 뿐 생각보다 조용하다 싶었는데 입구에 다다르자 갑자기 닫혀있던 문이 앞으로 확 넘어지면서 일시에 나뭇잎 복장과 창을 든 원주민들이 함성을 지르며 환영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둘레에 있던 수 백명의 신자들과 마을 사람들도 깔깔거리며 함께 즐거워했고요.
멀리서 반갑고 귀한 손님이 올 때 깜짝 놀라게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이 부족의 전통이라지요. 저녁식사는 원주민 교우들이 십리, 이십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각자 만들어온 풍성한 음식(삶은 바나나, 고구마, 옥수수, 돼지감자 비슷한 얆, 그리고 쌀밥과 닭고기, 열대과일 등)으로 즐겁게 나누고, 잠시 짐정리 후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열대 꽃으로 장식한 성모님 상 앞에서 원주민 교우들과 묵주기도 5단을 교송으로 바치고 바로 벌어진 음악회는 선명한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과 구름도 함께한 환상이었습니다. 짧은 여름밤에 더 노래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며 자매님 열 한분은 군 내무반 같은 숙소로, 형제 셋과 처음부터 저희를 인솔하신 김순겸 사도요한 신부님은 장 신부님 사제관에 함께 잠자리를 마련했죠. 마침 서울서 가져간 소주 두 병이 있어 김치라면을 안주삼아 한잔씩 나눴는데 어찌 그리 꿀맛이던지요. 그 때 술은 한 방울도 입에 못 대시는 장 신부님께서 여기 선교지에서 가장 외롭고 힘들 때가 말라리아에 걸려 한 밤중 고열과 오한에 떨며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감에 시달릴 때라고 말씀하실 때, 저도 속으로 울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 건강하고 잘생긴 신부님들이 이곳에서 이 고생을 하시며 사시나. 무엇 때문에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각오를 이 분들은 하고 계시나. 평범하던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답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그 밤도 신부님은 별 말씀 없이 빙그레 웃으시며 열심히 뒤치다꺼리만 하셨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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