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5일 국회에서 열린 '우리사회의 재난안전진단과 과제' 세미나 ©이재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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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PN 최영 기자] = 지난 1995년 6월 29일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악의 재난사고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사고로 502명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됐으며 937명이 부상을 입었다. 올해는 삼풍백화점이 붕괴된지 20주년이 되는 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는 세계에서도 3번째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건축물 사고로 기록돼 있다. 이 중 불가피한 요인으로 발생한 뉴욕 월드트레이드 센터 사고를 제외하면 사실상 2위인 셈이다.
건축 구조 문제로 일어난 사고 중 1위는 지난 2013년 방글라데시에서 1,100명의 사망자와 2,500명이 부상한 ‘라나 프라자 붕괴’ 사고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삼풍백화점 사고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건축물 사고였다.
삼풍백화점 붕괴에 이어 성수대교 붕괴,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지난해 세월호 사고 등 대형 재난 사고를 겪은 뒤 과연 우리나라 재난안전 분야에 달라진 것은 무엇이 있을까.
지난달 25일 경실련 도시개혁센터와 경향신문, 최재천 국회의원의 공동 주최로 열린 ‘우리사회의 재난안전 진단과 과제’ 세미나에서 재난 전문가들은 현재 대한민국의 재난관리 체계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삼풍 백화점 사고 등 장기간 국내 재난현장을 지켜 봐 온 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는 삼풍백화점과 세월호 사고가 판박이라고 주장하며 시스템 결함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1993년 소방조직에 입문해 수많은 현장을 누비며 재난관리시스템을 연구해 온 재난 전문가 류충 연구소장(한국소방안전협회)은 우리나라의 재난관리체계는 기본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라며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의 문제를 국민 안전의식의 결여로 결론지었고 재난관리 시스템의 기본인 재난관리시스템조차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주년을 맞아 재난사고 전문가들이 지적한 국내 재난관리 시스템의 핵심 문제들을 집중 조명해 본다.
“삼풍과 세월호는 시스템 결함이 발생시킨 필연적 재난”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 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도시방재안전연구소장) © 이재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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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삼풍백화점 사고와 세월호 사고는 시스템적 결함이 발생시킨 필연적인 재난이었다”
기조발제를 맡은 서울시립대 윤명오 교수는 이 같이 말하며 삼풍백화점과 세월호 사고의 공통점을 짚기 시작했다.
그는 “2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두 개의 재난은 완전 판박이었다. 과연 20년 간 무엇을 학습하고 발전시켰는지 자문하지 않을 없다”면서 두 사고의 공통적인 문제점을 크게 ‘구조설계 결함’과 ‘사전 징후 무시’, ‘미숙한 재난 대응 과정’으로 구분했다.
윤 교수는 “삼풍백화점은 건축물 구조 설계의 문제와 무단 증축이 이뤄졌고 이런 결함들은 간과되거나 묵인됐다”며 “이러한 결함을 인허가 검토과정에서도 걸러내지 못한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역시 구조변경으로 인한 구조설계 결함 문제와 고정 하중의 증가, 이동하중 증가 등 많은 문제가 있었고 선급협회는 이 결함을 간과하고 묵인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또 “두 사고 모두 사전 징후가 감지됐었지만 경영이익 앞에서 이를 모두 무시했다”며 “두 사고는 징후 없이 뒤통수를 맞은 게 아니라 빤히 보고 있다가 무시해서 당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전의식이나 심성의 문제가 아니라 경영이익 앞에서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음에도 자본주의적 경영이익을 제어해야 하는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윤 교수는 “제도가 경영이익을 제어하지 못했을 때 양심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린애들 같은 이야기”라며 “불법이 관여됐지만 감시되지도 적발되지도 않았는데 이것은 이익에 묻혀 법 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않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기술적인 리스크는 통상적으로 감시되기 어려운 부분이긴 하지만 명백한 것에 대해서는 내부고발이라도 있었어야 했지만 이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세월호 사고 시 재난 대응과정은 20년 전 삼풍백화점 때보다 더욱 심각했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그나마 할 말이 있는 것이 대응 초기에는 심각한 혼란이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서울시라는 강경한 지휘조직이 있었기 때문에 책임 소재와 일할 사람이 명확했고 점차 현장이 안정을 찾아 제 기능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월호의 경우 대응역량은 물론 진실과 오보조차 구분할 수도 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나중에는 기술이 없으니 해경 담당자가 유족에게 무릎을 꿇고 아이디어를 달라는 등 상황에 끌려 다니는 일까지 벌어졌다”면서 “국가는 불확실하게 개입해 누가 지휘관인지도 몰랐고 아직도 현장 지휘관 이름을 아무도 모르는데 이상하다는 생각조차 안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대형 사고의 근본 문제를 ‘안전불감증’으로 진단하고 국민의 책임으로 몰아 세우며 교육 부재 문제를 삼는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냈다.
그는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국민 전체가 올바른 생각을 해도 한 두 사람의 사이코패스 때문에 대형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것이고 재난은 이러한 한 두 가지 최악의 상황에 따라 좌우된다”며 “이러한 사람들은 안전교육을 받으러 나오라고 해도 결석을 할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안전불감증이라며 마치 선진국은 안전의식이 높은 것처럼 호도하면서 정부 기능 대부분을 생활안전과 교육하는 데 투입하고 예산과 조직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예산과 조직을 투입하고도 사고가 또 나면 교육이 덜 돼서 그렇다는 식으로 귀책 리스크가 전혀 없는 직무에 모든 힘을 쏟고 있다”고도 말했다.
또 “진정 국가가 책임져야할 것은 제도가 제 기능을 하는지, 위험이 통제되는지 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완전히 손을 놓고 있다”며 “손을 댔다가는 나중에 책임을 지니까. 우리한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윤 교수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대구지하철, 구미 불산, 세월호 사고 등은 모두 기술 실패에 의한 대형 사고였다”며 “이건 안전불감증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적 결함이 발생시킨 필연적이 재난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금부터 해야할 것은 이벤트성 계몽이 아니다”며 “문제를 짚을 때 위험 통제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하고 재난 중심부서는 현재 제도가 제대로 기능을 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이를 전부 묻어 놓고 잘 살아보자고 하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이제부터라도 시스템을 지향하고 개별 정책을 뜯어보며 실효성을 높여 내실있는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난대응체계, 첫 단추부터 다시 끼워야”한국소방안전협회 류충 정책연구소장▲ 한국소방안전협회 류충 정책연구소장 © 이재홍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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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방안전협회 류충 정책연구소장은 현재 우리나라 재난관리체계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지적하며 재난관리체계의 재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컨트롤 타워의 인력을 증원하는 부분은 물량적 측면에서 개선됐다고 볼 수 있겠지만 시스템적인 변화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정부조직과 지역, 국가 간의 컨트롤타워 연계 문제도 계속해서 발생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최근 발생한 메르스 사태에서도 이러한 시스템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드러났음을 강조했다.
류 소장은 “일상적인 행정 속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속도보다 오히려 위기대응 시스템에서의 의사결정 속도가 더 느리다는 게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다시 한 번 입증됐다”며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재난 매뉴얼 문제가 계속 반복됨에도 이것을 어떻게 단순화하고 전체적인 연계체제로 구축하는지에 대해선 구체적 대안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형적으로는 외국 시스템을 도입하고도 실제 대응 매뉴얼은 어떤 구조와 시스템으로 구성되는지에 대한 심층적 검토가 없어 재난유형별 매뉴얼이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이런 유형별 재난 대응 매뉴얼이 효과성이 없다는 것은 이미 선진국에서 입증돼 있다”며 “지방자치단체나 국가 수준의 대응 매뉴얼이 단일화되고 한 개의 대응시스템으로 모든 재난에 대응한다는 것은 공통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안전처는 통합적이고 포괄적인 관리시스템을 기본 전략으로 출발했지만 재난 대응 매뉴얼에 있어서는 유형별 대응 매뉴얼을 채택하고 있는 모순된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류 소장에 따르면 선진 재난관리 시스템 모델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재난 유형별로 소관부처별 관리하는 ‘분산관리 모델’이고 또 하나는 예방을 제외한 모든 재난관리를 국가 차원의 전담관리 시스템에서 맡는 ‘포괄적 관리 모델’이다.
류 소장은 “재난관리시스템은 이 두 가지 모델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는 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의 첫 출발”이라며 “심각한 문제는 현재 우리나라는 이 두 가지 모델을 혼재해서 같이 채택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재난관리 플랜을 보면 기본 전략 모델이 통합관리 시스템을 채택하는 거였다”며 “그런데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3조에는 재난관리 주관 기관이라는 것이 나와 있어 소관 부처별로 재난의 경감과 대비, 대응, 복구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했다.
유형별 재난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있으면서도 포괄적 재난관리 모델을 채택한 것은 앞 뒤가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류 소장은 “근본적이면서도 고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전담조직을 키우고 조직을 만들기 위한 관료 사회의 이익과 일치하는 측면이 상당히 크다”며 “실제 재난대응시스템은 유형별로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난관리 유형을 먼저 선택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재난관리 모델의 선택 유형별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재난 유형별 분산관리 시스템을 선택할 경우 현재의 중앙사고수습본부(이하 중수본) 형태는 유지하되 국민안전처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가 필요 없게 되기 때문에 중수본이 각 부처별 리드 조직 역할을 수행하고 의사결정 시스템을 문제해결 위주로 바꿔야 한다는 설명이다.
류 소장은 “이후 국가적인 위기 수준의 재난에서는 NSC가 재난에 대한 의사결정을 다루도록 보완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포괄적인 관리 모델을 채택했을 때에는 국민안전처와 중대본을 중심으로 컨트롤 타워를 일원화 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현존하는 각 소관 부처별 중수본을 중대본 컨트롤타워 내 시스템으로 예속시키는 방향이다.
그는 “중대본의 운영체계도 마찬가지”라며 “현재 사후 검토나 보고 중심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의사결정 구조로 운영체계를 변경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시스템을 우선 선정하고 국민안전처 조직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이러한 재난관리 시스템의 기본을 무시하고 있다는 시각도 내비쳤다. 류 소장은 “기본 재난 관리시스템은 경감과 대비, 대응, 복구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시스템이 있고 이건 너무나 흔하고 아주 기본적인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는 그냥 방치를 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바뀌거나 장관 또는 기관 장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정책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기본에는 충실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기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재점검하고 잘 돌아가는지 훈련해야 하는데 지금의 정부는 마치 자동차 본체가 아니라 옵션에만 집중하는 형태와 같다”며 “이 때문에 어떤 재난이 일어나도 기본 시스템이 안 돌아가 반응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류 소장은 재난대응 매뉴얼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지자체와 국가 수준 대응 매뉴얼은 한 개의 방향으로 가야하고 문제 해결 중심의 재난 대응 시스템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며 “그런데 우리나라는 재난유형별로 가고 있어 수백 가지 매뉴얼이 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유형별 매뉴얼은 외형적으로 보면 정밀해 보이고 유효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낯설거나 복합적인 재난이 발생할 경우에는 실용성이 없게 된다”며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최근에도 재난관리 대책이라며 조직을 늘리거나 인력을 늘려 전문화시킨다고 얘기를 하는데 위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은 모든 것을 다 갖출 수는 없다. 새로운 재난 때마다 전문가를 영입하고 조직을 날린다면 국민안전처 인력을 10만명으로 구성해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며 “모든 전문가는 주변에 모두 있고 이를 얼마나 빠르고 신속하게 활용하는 시스템이 구축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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