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6일 소방은 또 한 번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만 했다. 정부는 특검의 수사 개시 통보를 근거로 허석곤 소방청장과 이영팔 차장을 직위해제했다. 신임 차장으로는 김승룡 강원소방본부장을 임명했다. 청장과 차장이 동시에 직위를 잃은 건 소방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당분간 소방청은 김승룡 신임 차장의 청장 직무대리 체제로 돌아가게 됐다. 사실 이번 인사 명령이 있기까지 소방조직 내부는 큰 혼란을 겪어야만 했다.
위헌적 비상계엄 사태에 소방조직이 엮이며 크게 술렁였고 정권 교체 이후에도 멈춰버린 인사 탓에 오랜 기간 업무 동력을 상실해야만 했다.
짚어보면 이번 사태 결과는 소방 수장들의 직위해제지만 그 본질은 다른 곳에 있다. 바로 12ㆍ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소방이 국회와 국민 앞에서 진실을 감추려 했다는 사실이다.
소방청은 계엄 당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특정 언론사 단전ㆍ단수 지시를 받은 사실을 처음부터 숨기려 했다. 국회에서 요구한 자료마저 거짓으로 제출했다. 하지만 결국 국회의 추궁 과정에서 그 거짓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국회와 국민은 분노했다. 아마도 그 배경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소방이 권력 앞에서 휘둘렸다는 실망감이 커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 소방의 도덕적 권위와 국민적 신뢰는 단 한 번의 거짓말로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로 입증됐다. 더욱 뼈아픈 건 그 거짓이 반복되기까지 했다는 점이다.
국회 답변 과정에서 부정했던 것들은 불과 며칠 만에 번복됐다. 국회에서 나온 “언론사 단전ㆍ단수 지시를 받은 뒤 관련 명령을 내린 적이 있냐”는 질문에 허 청장은 “차장과 의논한 건 사실이지만 단전ㆍ단수가 소방의 의무는 아니어서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았다”고 했었다. 그러나 서울소방재난본부장에게 관련 지시를 하달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를 단순한 소방 지휘부의 일탈로 치부할 순 없는 일이다. 청장과 차장은 소방조직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소방의 최고 책임자가 국회에 밝힌 거짓은 소방 전체의 도덕성을 훼손하고 현장 소방관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치명적 오점을 남겼다.
돌이켜보면 대통령과 장관의 부당한 지시를 따랐느냐의 문제만이 아니었다. 진실을 숨기고 국회를 기만하려 했다는 게 더 큰 문제다. 국회를 속였다는 건 곧 국민을 속인 거로도 볼 수 있어서다.
국민 안전을 위해 존재하는 소방이 정치 권력 압박에 휘둘린 것도 실망스러운 일이지만 존재하는 진실을 감추려 한 행태는 분명 지울 수 없는 잘못이다.
진실을 외면한 대가는 청ㆍ차장의 직위해제와 조직의 혼란이라는 결과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이제 국민의 신뢰를 다시 찾아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냉정하게 성찰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최전선에 서 있는 소방. 그 숭고한 역할을 지키기 위해선 단 한순간의 거짓도 허용될 수 없다.
이번 사건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소방에 울려주는 경종이다. 다시는 거짓으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필요하다. 거짓의 대가를 치른 만큼 앞으로는 진실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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