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반복되고 있는 산불이 주택과 도심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인명까지 앗아가는 대형 복합재난으로 진화했다. 이는 산불을 임야 화재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묵직한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 체계는 여전히 ‘산림’ 개념에 무게를 둔다. 산림청이 대응을 맡고 소방은 지원기관 역할에 그치고 있다. 이처럼 다원화된 산불 대응체계는 재난 대응 현장에서 큰 혼선을 부른다는 지적을 오랜 기간 받아왔다.
‘산’은 산림청이 대응하고 ‘집이나 건물’ 같은 산림 인근 시설물 화재는 소방이 맡는다. 이러한 복잡한 대응체계는 국민에게도 혼란을 주기 충분하다. 불이 나면 ‘119’라는 국민적 통념 또한 무너진 꼴이다.
산불은 산과 마을의 경계를 가리지 않는다. 이번 경북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역시 급변하는 풍향과 불씨가 예측조차 어렵게 날아다니며 산과 시설물을 가리지 않고 태웠다. 결국 커다란 인명피해까지 불렀다.
현행 ‘산림보호법’에선 중ㆍ소형 산불은 시장과 군수, 대형 산불은 시도지사 또는 산림청장이 통합지휘토록 규정한다. ‘소방기본법’에선 산림을 소방대상물로 포함한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육상에서 발생하는 재난 상황 시 소방본부장이 지역 긴급구조통제단장으로 현장지휘를 수행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이처럼 산불 현장의 지휘권이 산림청장과 지자체장, 소방 기관장으로 나뉘면서 실제 책임과 권한이 분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해외 주요 국가의 산불 대응체계는 다르다. 관련 연구 자료에 따르면 OECD국가 중 대다수가 소방 또는 위기대응기관에서 산불 대응을 전담한다. 일본과 독일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등 주요 선진국과 스페인, 이탈리아, 벨기에, 스위스, 포르투갈, 이스라엘,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체코, 룩셈부르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등 유럽 중소 국가들은 소방기관이 산불 대응을 맡고 있다. 북유럽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헝가리, 뉴질랜드 등은 위기대응기관이 산불을 담당한다.
산림기관이 산불 대응을 맡은 나라는 미국의 일부 주와 멕시코, 칠레, 터키, 라트비아 등 5개국 정도에 불과하다. 산림청과 소방이라는 이원화된 지휘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우리나라와 비교해보면 크게 대조적이다.
다양한 국가가 산불대응체계 정립에 있어 중점을 두는 건 ‘속도’와 ‘일원화된 지휘’다. 아무래도 화재 신고를 처음 접수하고 24시간 상시 출동태세를 갖춘 전문인력을 빠르게 투입할 수 있는 소방이 유리할 수밖에 없다.
산림청의 산불 진화인력은 대부분 한시적이고 고령자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번 경남과 경북지역에서 숨진 네 명의 산불예방진화대원의 나이는 60, 63, 64, 69세였다. 이는 비상설로 운영되는 진화대원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잘못된 산불 대응체계가 제대로 된 장비도, 통신체계도 없는 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산불은 건조한 봄과 가을에 집중된다. 여름과 겨울에는 발생 빈도가 낮고 확산 위험도 적다. 따져보면 상시 조직으로 산불만을 대응한다는 건 인력과 장비 등 예산 투입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국토 면적이 적으면서도 64%가 산지인 대한민국의 특성상 화재라는 위험에 상시 방어 태세를 갖춘 소방이 전담하는 게 국가 차원에서도 큰 효율을 가져올 수 있다는 건 비전문가가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2025년 최악의 산불피해를 겪자 산림 보호 영역의 이해 당사자들은 인력 운영 확대와 장비, 훈련 시스템 등 많은 걸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고를 핑계로 더 많은 예산과 조직을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산불만을 위한 상시 대응 인력을 늘리고 훈련시설을 짓는 건 우리나라가 보유한 소방이라는 국가 육상 재난대응체계의 인프라를 모두 무시하고 중복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발상과 다를 게 없다. 효율보단 집단 이익이나 외형 확장이 더 중요한 게 아닌지 의심이 앞선다.
‘산’에서 시작된 산불이 ‘사람’을 위협하고 있다. 더는 산불 재난의 대응을 산림청 몫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 국가재난으로 인식하고 통합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 재난 대응의 중심은 ‘산림’이 아닌 ‘생명’이어야 한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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