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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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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중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06/08/14 [16:40]

세상에 이런 일이...

이재중 논설위원 | 입력 : 2006/08/14 [16:40]

▲이재중 논설위원    

저녁 8시 뉴스시간이었다. tv를 지켜보던 나는 순간적으로 내 눈과 귀를 의심했다. 도저히 있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 화면을 장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뉴스를 진행하는 아나운서가 소화기(消火器)를 가리키면서 “이것은 불이 났을 때 불을 끄는 소화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불을 끄려고 소화기를 방사(放射)시켰더니 불이 꺼지기는커녕 오히려 확대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이어서 소화기를 시험하는 장면이 나타났는데, 정말 연소가 확대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다시 아나운서가 화면에 나타나 “그럼, 이번에는 다른 회사 제품의 소화기를 사용해 보겠습니다.” 곧이어 시험대에 불을 질러 놓고 소화기를 방사시키는 장면이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순식간에 불이 꺼져 버렸다.
 
화면에 다시 나온 아나운서는 다음과 같이 뉴스를 진행해 갔다. “분말 소화기의 약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 1 인산암모늄인데 중견 소방기구 제조업체인 청운소방에서 값이 비싼 제1인산암모늄 대신 단가가 싼 황산암모늄을 채워 넣어 이제까지 22만개를 판매했는데 더욱 이상한 것은 이 소화기의 성능을 인정해주는 국가 검정필증이 버젓이 붙어 있어서 경찰청에서도 많은 수량을 구입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화면은 경찰청 청사와 진열돼 있는 수많은 소화기들을 차례로 크로즈업시켜 주었다.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한 때나마 소방계에 종사했던 사람으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특히 장마 때 구슬땀을 흘려가며 인명을 구출 해 내는 등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오직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쌓아 온 일선 소방관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먹칠을 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고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분말 소화기의 중요 약제인 제 1인산암모늄(nh4h2po4)의 경우 열분해하는 단계에서 만들어지는 메타인산(hpo3)이 가연물 표면에 융착하여 유리 모양의 피막을 형성해주기 때문에 소화는 물론 연소의 재발까지 막아주고 소화기 안에 함께 혼합되어 있는 중탄산나트륨, 중탄산칼슘 등과 반응하면서 수증기 및 이산화탄소를 발생시켜 열을 흡수하고 불을 끄는데 직접 작용을 하는 우수한 소화 약제이다. 그러나 황산암모늄{(nh4)2so4} 은 우리가 농사에 흔히 사용하는 질소 비료이다.
 
이 물질은 암모니아(nh3) 와 황산수소암모늄{(nh4)hso4} 으로 열분해 되는데 소화능력은 제로라고 할 수 있다. 화재 발생 시 긴급 사태에서 사용되는 소화기에 질소 비료를 넣어서 소화기로 제조 판매했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 뉴스가 보도된 후 한국 소방검정공사에서 문제가 된 소화기를 분해해 본 결과 제 1인산암모늄은 단 1g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소방기구의 검정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한국 소방검정공사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보도에 따르면 “소화기 제조업체가 소방 검정공사의 개별검사 시 2천 개 당 50개를 무작위로 샘플 검사하는 허점을 악용해 불법적인 바꿔치기 수법으로 제품 검사를 통과하는 등 치밀한 계획 하에 조직적으로 불량 소화기를 제조해 유통시켜 왔다”고 말해 모든 잘못이 소화기 제조업체에게 만 있는 듯이 변명하고 있으나 이제 까지 검정을 통과한 수량이 몇 백 개 혹은 몇 천개라면 그런 변명이 통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무려 22만 개를 검정하면서 소방업자에게 지금까지 속아만 왔다면 등신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믿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한편 소방 방제청에서는 긴급조치로 유통 중인 전 소화기에 대한 일제 점검을 해서 소방관서 주관으로 무 검정 및 불량소화기구 유통 실태를 파악하도록 했고, 이미 유통된 불량소화기는 제조자, 판매자 또는 시공자에게 수거 또는 폐기하도록 조치하고, 유통 중인 전 소화기 품질을 확인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수거해 시험을 실시한 후 불량 소화기를 모두 교환 혹은 관련 제조업체에서 배상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일선에서 고유 업무를 수행하기에도 벅찬 소방 공무원들이 이 엄청 난 일을 어떻게 감당해 낼 것이며 점검을 하기 위한 기구 및 시설과 전문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또 하나는 이미 도산해버린 제조업자에게 무슨 수로 배상을 받아 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칫 소리만 요란 할 뿐 용두사미(龍頭蛇尾)로 흐지부지 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국민에게 신뢰를 잃게 되면 대단히 어려운 일에 부디 치게 된다. 최근 어느 고법(高法)의 부장 판사가 뇌물을 받고 부당한 재판을 했다는 혐의로 구속되었다.
 
그가 구속되자 그에게 재판을 받고 집행 중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받은 재판이 잘못됐다고 진정을 하는가 하면 “믿을 수 없는 법관들에게 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재판을 거부하는 사태까지 일어나 사법부가 국민들에게 신뢰를 회복하는 방안을 연구하느라 고심 중에 있다고 한다.

이번 소화기 파동이 말잔치로 끝나서는 안된다. 명명백백(明明白白)하게 책임을 묻고 잘못된 제도는 고쳐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문제가 있다고 의심되는 모든 소방업무에 대하여 과감한 개혁과 조치를 하므로서 이번 사태를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삼아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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