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화학 재난 대응 경험을 기준으로 재난관리에 대한 현황을 분석해 문제점을 개선한 후 새로운 대응 방법을 도출하는 건 국민 안전을 위한 소방의 책무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에는 재난관리를 재난의 예방ㆍ대비ㆍ대응ㆍ복구를 위한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또 재난은 국민의 생명ㆍ신체ㆍ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주거나 줄 수 있는 것으로서 ‘자연재난(태풍, 홍수, 지진, 황사 등)’과 ‘사회재난(화재, 폭발, 화생방사고, 환경오염사고 등)’으로 구분한다.
‘화학물질관리법’ 제2조에서는 화학사고를 시설의 교체 등 작업 시 작업자의 과실, 시설의 결함ㆍ노후화, 자연재해, 운송사고 등으로 인해 화학물질이 사람이나 환경에 유출ㆍ누출돼 발생하는 일체의 상황으로 명시하고 있다.
국내 화학사고 원인 물질 파악 최근 3년간(2020~2022년) 전국 18개 시도 소방본부에서 받은 기초자료를 활용해 국내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화학사고 원인 물질을 파악해 봤다.
그 결과 산성 화학물질은 염산(HCl 2)과 황산(H2SO4 4), 질산(HNO3 7), 아세트산(CH3COOH 19), 불산(HF 23), 폐혼산(24), 포름산(HCOOH 29), 인산(H3PO4 32), 브롬산(HBr 57) 등이 있었다.
이에 따라 산성을 띠는 화학물질로서 염기중화제 대응처리가 가능한 포르말린(HCHO 6)과 황화수소(H2S 11), 과산화수소(H2O2 12), 염소(Cl2 33), 아황산가스(SO2 35), 사염화규소(SiCl4 39), 시안화수소(HCN 49) 등의 사고를 파악할 수 있었다([그림1] 참조).
이들 사고 이력 산성 화학물질은 노출 시 피부ㆍ안구ㆍ호흡기 점막 화상 등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대기 중으로 배출ㆍ확산될 경우 토양이나 하천수 등 이차적인 생태계 오염 등의 피해를 일으킬 수 있다.
지난 2012년 경북 구미에서 발생한 불화수소 누출사고 대응 방법과 관련해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누출된 불산 기체 제거를 위해 소석회(Ca(OH)2)를 뿌려야 했지만 소방대원들은 초기 4시간 동안 염기중화제 사용 없이 물만 뿌려대는 바람에 피해를 키웠다”는 재난 대응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그 후 전국 소방관서에서는 소석회와 가성소다(NaOH) 염기중화제를 보유하고 사고대응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염기중화제와 관련된 ‘정확하지 않은 혹은 검증되지 않은 일반화의 오류개선 극복’을 위해 소방청에서는 대응 방법론(response methodology)의 관점에서도 심도 있게 검토해 볼 필요성을 제기했다.
불화수소산(불산, hydrofluoric acid)은 불화수소(hydrogen fluoride)를 물에 녹인 수용액이다. 즉 불산은 ‘액체’, 불화수소는 ‘기체’ 상태다. 당시 구미 누출사고 물질은 연무 형태 불화수소 기체(액적)가 대기 중으로 확산ㆍ누출된 사고였다.
화학식은 ‘HF’로 같지만 물질의 상태는 온도, 압력 등 여러 변수에 따라 액상 또는 기상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또 강산(strong acid)으로 분류되는 염산, 브롬산 등의 할로겐산과는 달리 불산은 분자 간 상대적으로 강한 수소결합(hydrogen bond)이 작용해 이온화가 잘 일어나지 않아 ‘약산(weak acid)’으로 분류된다.
하지만 신체에 닿으면 불화수소(HF)의 수소(-H) 원자와 피부ㆍ기관지ㆍ폐 조직 내 땀, 콧물 등 수분(H2O)의 수소(-H) 원자 간 ‘수소결합’ 형성으로 산의 세기는 커진다.
또 미세한 고체 분말 상태의 ‘소석회’ 염기중화제를 대기로 확산 중인 불화수소 기체 중화를 위해 소석회 분말을 뿌리더라도 기체-고체 간 접촉면적 손실이 커 중화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
게다가 소석회 자체의 건강 위험성도 매우 높아 출동대원은 물론 사고 현장 인근 주민의 이차 피해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또 소석회는 물에 용해되지 않고 죽처럼 현탁액(suspension) 상태를 유지하므로 관창 노즐을 이용한 소석회 수용액 분무 주수 방법으로 대기 중 확산 유해화학물질을 포집하거나 중화를 시도하는 대응기술 적용은 부적합하다.
2015년 6월 전북 군산의 폴리실리콘 제조공정 배관에서 ‘사염화규소(SiCl4)’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사염화규소는 비가연성으로 자체 연소성은 없다. 하지만 열에 의해 분해돼 ‘염화수소(HCl)’ 흄이 생성되는 등 유독물질에 포함된다.
사고원인 물질인 ‘사염화규소’는 워터커튼의 물과 접촉 반응하면 액적 상태의 유독 염화수소와 규폐증을 일으킬 수 있는 이산화규소(SiO2) 분말이 흡착돼 물안개처럼 대기 중으로 확산했을 여지가 높다.
산성 화학물질 누출사고 대응 전략은 ‘사고물질의 상태(기체ㆍ액체)에 따라 대응 전술에 확연한 차이’를 가진다. 또 같은 화학물질이라도 누출량이나 기상, 사고 위치 등에 따라 절차ㆍ방법이 달라질 수 있다.
산성 화학물질 누출사고 시 효율적 대응 방법으로는 사고 현장에 적합한 전문대응으로 처리해야 한다. 화학사고 발생에 따른 전문대응 단계는 ‘누출통제(spill control)’, ‘탐지분석(detection & analysis)’, ‘제독(decontamination)’ 활동으로 나눌 수 있다.
누출통제 대응은 사고상황에 따라 ‘방어적 전략’과 ‘공격적 전략’으로 나눌 수 있다. 공격적 사고대응 전략 방법 중 한 가지인 ‘중화작업(neutralization)’은 적은 비용과 노력으로 산성 물질을 무기염(inorganic salt)과 물로 변환시켜 유해 위험성을 낮추는 대응 방법이다.
최적의 중화약제를 찾아라! 소방청에서는 KAIST 연구진과 공동으로 다양한 산성 화학물질 누출 시 중화제 사용 취급의 ‘안전성’, 대응처리 ‘실효성’, 현장 출동대원 ‘건강 위험성’, 그리고 ‘가격 경제성’ 등 최적의 중화약제 선정 도출을 목적으로 ‘개선된 염기중화제 선정조사에 관한 재연실험 연구(2019)’를 추진했다.
재연실험 결과 전국 소방관서에서 다량 보유한 염기중화제, 예를 들어 ‘소석회’, ‘가성소다(NaOH)’ 등이 산성 화학물질 중화 과정에서 유해하고 위험하다는 걸 확인했다. 그러나 ‘중탄산나트륨(NaHCO3)’의 경우 안전하고 중화 대응의 효율성 등 모든 면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1. 중화 안정성 ‘소석회’, ‘가성소다’, ‘탄산칼슘(CaCO3)’, ‘탄산나트륨(Na2CO3)’, ‘과탄산나트륨(Na2CO3ㆍ1.5H2O2)’ 염기 중화약제와 세 종류의 산성(황산ㆍ염산ㆍ질산) 물질에 대한 각각의 중화 반응을 살펴봤다.
그 결과 낮게는 43℃에서 높게는 126℃까지 높은 중화열이 발생해 사고물질인 액상(liquid phase)의 산성 물질과 고상(solid phase) 염기 중화제가 함께 기상(gas phase)으로 누출ㆍ확산할 우려가 컸다.
하지만 중탄산나트륨의 경우 중화열 발생 없이 안전하게 중화됨을 규명했다. 이는 산성물질과 중탄산나트륨이 접촉 반응해 이산화탄소(CO2) 기체 발생ㆍ배출 과정에서 ‘흡열 반응(endothermic reaction)’에 따라 중화 발생열이 상쇄된 것으로 판단된다(반응식1-3, [그림 4] 참조).
H2SO4 + 2NaHCO3 → Na2SO4 + H2O + 2CO2 --------------------------------------------(반응식 1) HCl + NaHCO3 → NaCl + H2O + CO2 -----------------------------------------------------(반응식 2) HNO3 + NaHCO3 → NaNO3 + H2O + CO2 ------------------------------------------------(반응식 3)
2. 대응 실효성 염기중화제의 물에 대한 용해도는 산성 화학물질 재난 현장 대응 전술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소석회는 물에 용해되지 않고 불균일한 상태의 현탁액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가성소다나 중탄산나트륨은 물에 대한 용해력에서 우수한 결과를 보였다. 가성소다의 경우 물과 우수한 용해도를 가졌음에도 NFPA 704 건강 위험성(청색)이 ‘3’으로 매우 유해(extreme danger)하다.
또 산성 물질 접촉 시 높은 고열(~123℃)이 발생하는 치명적 결함을 지녔다. 중탄산나트륨은 물에 대한 용해도가 우수해 분무 노즐을 이용한 분사 대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물에 용해된 후에도 재결정(recrystallization)으로 인한 분무 노즐 막힘 우려가 적다.
용매에 용해된 고체 염기중화제 재결정화(recrystallization) 현상은 결정(crystal) 또는 분말(powder) 형태에 따라 분무 주수 운용의 당락이 결정될 수 있다.
즉 결정된 고체는 노즐 구멍의 막힘을 가져올 수 있으므로 노즐을 이용한 분무 대응 작업에 중요한 고려사항이다. 중탄산나트륨은 분무 노즐 상에서 재결정이 되더라도 ‘분말(powder)’ 형태이므로 낮은 수압의 분무 사용으로도 쉽게 부서지는 특징을 가져 노즐을 막힘없이 운용할 수 있다.
3. 건강 위험성ㆍ경제성 과일의 잔류 농약 제거를 위한 세척 용도, 친환경 산성토양 개질 용도, 위산과다 제산제, 빵을 구울 때 부풀게 하는 베이킹파우더의 성분인 ‘중탄산나트륨’의 NFPA 704 건강 위험성은 안전(단계 ‘0’)하다([그림 6] 참조).
산성 화학물질 누출 시 과량의 ‘중탄산나트륨’을 사용하더라도 사고 현장 인근 주민의 안전은 물론 출동대원의 신변안전까지 확보할 수 있다. ‘중탄산나트륨’은 가격 면에서도 다른 염기중화제와 비교할 때 저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책임져야 할 소방은 교육훈련뿐 아니라 과거 인ㆍ물적 화학 재난 대응 경험을 통해 문제점과 개선책 도출을 위한 노력을 수행해야 한다.
이로써 모든 국민이 화학 재난으로부터 안심할 수 있도록 국민 안전 지킴이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가기 바란다.
국립소방연구원_ 조철희 : chcho119@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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