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수다Talk] 몸이 아닌 목소리로 사람을 살리는 소방관들… 119종합상황실 상황요원경기소방 박병규 소방장ㆍ인천소방 변영진 소방위우린 언제부턴가 위험에 빠지면 ‘엄마’를 찾기보다 먼저 전화기를 들고 ‘119’를 누른다.
“네, 119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믿음직한 목소리에 불안감은 눈 녹듯 사라진다. 그리고 그들이 우릴 이 위험에서 구해낼 거란 확신이 차오른다.
“불이 났어요, 빨리 와주세요”, “사람이 쓰러졌어요. 여기는요…” 다급한 말에도 언제나 침착하고 단호하면서도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비록 몸은 현장에서 떨어져 있지만 나의 눈과, 입과, 귀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린다는 믿음.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구조대상자는 물론 동료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긴장감. 이 모든 감정들로 인해 매 순간순간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그들. 바로 ‘119종합상황실 상황요원들’이다.
지난해 119신고는 총 1195만건. 1분에 23번의 신고가 접수된 셈이다. 전국의 119종합상황실 상황요원은 하루 많게는 300건이 넘는 신고를 처리하고 있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FPN/119플러스>가 만난 경기소방 박병규 소방장, 인천소방 변영진 소방위는 힘든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사고 위치를 특정하기 쉽도록 모든 국민이 GPS를 켰으면 좋겠다”며 국민의 안위만을 걱정했다.
이런 그들을 만나 119종합상황실 상황요원으로서의 근무 여건과 고민거리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병규 2012년 구급특채로 소방공무원이 된 경기소방 소속 박병규 소방장입니다. 9년간 구급대원으로 활동했고 2021년부터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변영진 2008년 10월 인천소방에 입직해 화재진압대원으로 활동하다 현재 119종합상황실에서 상황ㆍ관제요원으로 근무 중인 변영진 소방위입니다.
많은 직업 중 소방공무원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병규 어린 시절 집 앞에 119안전센터가 있었어요. 소방관들이 훈련하고 출동하는 모습을 많이 봐와서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능 준비 중 ‘응급구조과’를 알게 됐는데 졸업 후 소방공무원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입학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 119안전센터에 실습을 나간 적이 있어요. 그동안 멀리서 소방공무원을 지켜보기만 하다가 막상 실습해보니 더욱 매력을 느껴 소방공무원이 되기로 했습니다.
변영진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에 불이 난 적이 있습니다. 혼비백산인 상태에서 소방대원이 화재를 진압하고 연기를 마신 가족을 구조하는 모습이 머릿속 깊이 각인됐습니다. 가족이 살아있음에 감사했죠.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대원분들 덕분이었습니다.
이렇게 큰일을 겪고 나니 “나도 커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일을 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성장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그 꿈이 변하지 않아 결국 소방관이 됐습니다.
소방공무원엔 다양한 직무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상황요원을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박병규 구급특채자이기에 일선 서에서는 할 수 있는 업무가 많이 국한돼 있는 게 사실이에요. 구급대원으로 9년간 활동하다 보니 다른 업무도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출동하면서 신고접수 녹음을 들었는데 한번 해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급뿐 아니라 화재나 구조 등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지원하게 됐습니다.
변영진 신임 소방공무원은 첫 임용 시 보통 현장부서로 배치됩니다. 현장 대원들은 출동을 나갈 때 상황실에서 내려준 출동지령서에 기반해 현장으로 갑니다.
저도 현장 대원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요. 어떤 출동은 상황실에서 내려준 초기 정보가 명확해 수월했지만 또 어떤 출동은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상황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출동의 최초 시작점이 되는 상황실의 출동지령이 현장 활동의 전체 흐름을 결정하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상황요원이 어려운 업무를 하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출동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실에서 근무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어 상황요원에 지원했습니다.
119신고 접수 절차가 궁금합니다. 어떤 식으로 이뤄지나요? 박병규 신고가 접수되면 가장 먼저 신고자의 주소와 재난 유형 등을 파악해 출동지령을 내립니다. 그러면 119안전센터로 출동 방송이 송출되고 차량이 편성됩니다. 이후 더욱 세부적인 내용을 파악해 출동지령서나 무전 등으로 출동대에 상황을 전달합니다.
이외에도 경찰이나 시청, 한전 등 관계기관에 지원 요청을 하고 건축물대장, 도면 등이 필요하면 자료를 빨리 입수해 현장에 알려줍니다.
변영진 시민이 119로 신고하면 화재사고인지, 응급환자가 발생한 건지 등 기본적인 상황을 파악하는 질문을 합니다. 상황 파악을 마치고 위치가 확인되면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소방차량에 출동지령을 내립니다. 이후 신고자가 응급환자 보호자라면 응급처치를 안내해 드리고 다른 부분이라면 관계기관을 연결해 도움을 줍니다.
하루에 신고를 최대 몇 건까지 받아보셨나요? 박병규 계절마다 다르고 편차가 있는데 많이 받을 땐 12시간 기준 300건 이상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경기도는 주간, 그리고 여름에 신고가 상당한 편이에요. 여름에 시민 여러분의 활동이 많고 벌집 관련 출동도 많기 때문이죠.
변영진 인천은 2023년 기준 월평균 5만7천건의 신고가 들어옵니다. 하루 평균 1800건 정도고 상황요원 한 명당 하루 150~200건 정도 신고를 받고 있습니다. 박병규 반장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여름에 벌집 출동과 현장 활동이 많기 때문에 겨울보다 신고가 많은 것 같아요.
신고 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는 게 중요할 것 같은데요. 나만의 노하우가 있다면요. 박병규 신고자가 전화했다는 건 위급 상황이란 얘깁니다. 따라서 구조대상자의 위치를 간파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최소한 대략적인 위치라도 빠르게 파악해 출동지령을 내립니다.
신고자와 통화하면서 출동 조치를 하면 조금 진정되기도 합니다. 그 후 신고자에게 침착하게 정확한 주소를 묻고 주소를 모른다면 주변의 랜드마크를 중심으로 서서히 범위를 좁힙니다.
변영진 보통 위급 상황에서 119에 신고하기 때문에 흥분상태일 때가 많습니다. 어떤 상황인지조차 설명하지 못 하는 때도 있죠. 출동지령을 내리려면 최소한의 정보를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선 신고자를 안정시키는 데 중점을 둡니다.
원래는 성격이 급한 편인데 상황실에서 근무하면서 많이 차분해졌어요. 신고자가 있는 곳이 초행길이면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땐 주변에 보이는 큰 건물이나 상가 간판 글자를 그대로 읽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신고 전화가 있을까요? 박병규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다중 추돌사고가 기억에 남습니다. 신고를 받고 바로 차량을 출동시켰습니다. 이후 고속도로에 설치된 CCTV를 확인하는데 반대편 차선에서 검은 물체가 보였어요. 순찰대에 카메라를 확대해 달라고 하고 자세히 보니 사고 직후 튕겨 나간 운전자였습니다.
출동대에 즉시 전달해 안전하게 구조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CCTV를 세밀하게 보지 않았다면 2차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조금의 관심이 한 사람의 생명을 살린 사건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변영진 외국인 아내가 남편이 갑자기 쓰러졌다고 신고했습니다. 한국어로 의사소통은 가능했지만 한글을 읽지는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 주소를 모른다고 해서 신고자에게 계약서를 찾아달라고 했습니다.
영상통화로 전화를 다시 걸어 계약서에 적힌 주소를 확인했고 그 장소로 구급차를 보내 환자를 무사히 병원에 이송한 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반대로 장난 혹은 급하지 않은 신고 전화도 많을 것 같아요. 박병규 다양한 종류의 신고가 있습니다. 파스를 붙여달라거나 벌레, 쥐를 잡아달라는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출근해야 하는데 자전거 키를 놓고 왔다는 신고도 있었고요. 소방차량은 긴급상황에만 출동하기 때문에 도움을 드릴 수 없다고 안내한 후 통화를 종료했습니다.
변영진 “나무에 공이 끼었으니 꺼내주세요”, “현관문이 잠겨서 못 들어가요. 문 좀 열어주세요” 등의 신고가 있는데요. 이런 신고는 보통 출동이 불가하다고 설명해 드리고 통화를 종료하는 편입니다.
조금 황당했던 신고도 있었는데요. “우리 딸이 숨을 안 쉬는 것 같다”며 울면서 전화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매우 흥분한 상태여서 구급차 출동지령 후 신고자를 진정시키며 환자 신상을 파악하는데 말씀하신 딸이 ‘사람’이 아니라 ‘강아지’였어요. 그래서 동물병원에 가 보셔야 할 것 같다고 전달해 드렸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다양한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감정노동을 하실 것 같은데요. 박병규 상황요원으로 근무하다 보면 욕설하시는 분 등 굉장히 다양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걸 별로 담아 두는 성격은 아닙니다. 신고받은 건 한 귀로 듣고 바로 흘려버립니다. 상처받으면 저만 더 힘들고 오래 근무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죠.
변영진 신고자는 일상이 아닌 경험해본 적 없는 긴박한 상황에서 신고전화를 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흥분하실 때가 있는데요.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에서 욕설하거나 비방하시는 분도 간혹 있습니다. 이럴 때 감정적으로 매우 힘이 듭니다.
또 단순 신고 건이나 출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출동 불가 이유를 설명해 드리는데요. 이해해주시는 분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이성적으로 대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죽으려고 한다는 신고를 받으면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박병규 그런 신고를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꽤 있습니다. 그럴 땐 먼저 안심을 시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신고자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먼저 파악해야 합니다. 병원 진료가 필요하면 저희가 빠르게 출동해서 이송해드리고요. 상담이 필요한 거라면 관계기관 상담부서에 연결해드리고 있습니다.
변영진 실제로 이런 신고를 받은 적이 있는데요. 어떤 중년 남성분이 “뛰어내리겠다. 죽고 싶다”고 신고를 하셨습니다. 위치를 물어봤는데 말씀을 안 하시고 “그냥 찾지 말라. 조용히 가고 싶다”고만 하셨어요.
그래도 신고자를 진정시키면서 전화를 끊지 않았죠. 끊게 되면 극단적 행동을 할 것 같아서 출동지령을 내리고 현장에 출동 요청을 했습니다. 결국 현장대원들이 강가에 투신하려고 하신 신고자분을 찾아내서 구조했던 기억이 있어요.
상황요원의 처우 개선을 위해 어떤 게 바뀌어야 할까요? 박병규 소방의 공통적인 문제, 인력 부족입니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 119종합상황실의 경우 12초마다 신고가 접수됩니다. 매우 많죠. 너무 많은 양을 접수하면 피로가 쌓이고 신고접수 질에도 안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천소방처럼 경기소방도 출동대원이 상황요원을 체험해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런 것들이 점점 확대돼서 출동대와 상황실 간의 소통이 더욱 잘 되고 서로 간의 믿음과 신뢰가 쌓였으면 좋겠습니다.
변영진 상황실 직원들은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대형사고로 번질 수 있기에 항상 본인의 컨디션을 최고조로 유지해야 합니다. 지금도 만족하긴 하지만 상황실 근무자를 증원하거나 비번날 휴식프로그램이 더 신설됐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의식 변화도 필요합니다. 예전보단 많이 좋아졌지만 상황요원에게 욕을 한다든지, 출동이 필요 없는 상황에서 출동을 요청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119는 시민이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에 놓였을 때 신고하는 번호입니다. 비응급 신고는 정작 급한 곳에 출동을 지연시킬 수 있다는 걸 명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에게 당부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요? 박병규 핸드폰 GPS를 꺼두시는 분이 계십니다. 시민께서 119에 신고할 때 핸드폰에 GPS나 와이파이가 켜져 있으면 위치파악을 정확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GPS를 반드시 켜두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소를 모르면 전신주 번호로도 위치를 조회해 볼 수 있습니다. 상황요원의 말에 귀 기울여 주시고 질문에 잘 대답해 주신다면 저희가 더욱 빠르게 출동해서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변영진 통화만으로는 상황실 직원들이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데 미흡한 부분이 있습니다. 신고자가 제공한 정보가 부족해 준비가 덜 된 상태로 현장 활동을 할 때도 있을 겁니다. 현장 대원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러니 시민 여러분께선 현장 대원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밖에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변영진 저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상황실 근무자들은 지금 이 한 통의 전화가 소방의 이미지를 대표한다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이 전화가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도, 대형 재난 사고를 막을 수도 있다는 걸 알기에 매우 큰 책임감과 사명감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단 한 건의 신고도 최선을 다해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데 일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FPN TV’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유은영 기자 fineyoo@fpn119.co.kr 박준호 기자 pakr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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