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24시간 365일 전자파를 안고 산다(?). 사무실과 서재, 거실, 안방에 산불상황관제를 위한 모니터를 설치했고 내 손엔 항상 태블릿 PC가 들려있다. 모니터 중 산불 상황이 발생하면 전국 어디든 달려가 지상과 공중에서 현장을 기록하고 주민과 관계자의 증언을 담기도 한다.
<119플러스>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서 2022년엔 대통령선거가 있고 그 선거일이 산불 최고위험 시기라 대선에서 가장 큰 논쟁거리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선거가 있는 해에는 국가적으로 어수선하기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진 모르겠지만 늘 그래 왔기 때문이다.
‘선거 짝수 해 대형산불 ‘악몽’…’, ‘‘선거 낀 짝수 해 대형산불 징크스’ 올해는 큰 선거 두 번 있다’, ‘산불 총력대응’ 등 연례행사처럼 쏟아지는 주무관청 발 보도자료다.
하지만 보도자료와 문서로만 남겨질 뿐 현장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우리나라 산불은 그렇게 반세기 동안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식상한 대책과 헛구호만 남발됐다.
올해 역시 온갖 대책에도 1월 중 89건(실제 11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최근 10년간 1월 산불 중 2019년(동해안 초대형 산불 발생년도) 다음으로 많이 발생했다.
문제는 2019년처럼 건조하지 않아 마땅한 핑곗거리도 없다. 한마디로 모든 게 말뿐이고 시행 일자만 달리한 문서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
산불을 어떻게 막느냐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화재 분야 중 유일하게 예방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는 분야가 산불이다. 만약 민간기업을 이런 식으로 경영했다면 어찌 됐을까? 여지없이 도태되거나 책임자를 문책했을 거다.
산림청 산불은 소방청 화재관리와 달리 은밀한 측면이 있다. 관리자와 현장 대응 인력, 관리주체가 모두 달라 발전적인 토론도, 반성도 없이 행사만 있을 뿐이다. 자연인처럼 산속에서 무슨 짓을 해도 얼렁뚱땅 넘어갈 수 있다. 산불은 엄연히 국가적 재난 분야인데도 말이다.
이미 세계적으로 산불관리에 있어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하는 척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겉치레인 문서로만 대책을 남발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전쟁 같은 산불 시대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전쟁을 준비하듯 산불 대응에서도 실전 대응력을 높이려면 우리나라 산불의 현실과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전략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이를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고 체계적인 대응으로 국민의 신뢰와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산불이라고 다 같은 산불이 아니다 산불은 산소와 연료에 열이 가해져 발생하고 다시 기상과 지형, 연료에 따라 확산된다. 재난성 대형산불은 봄철 강풍을 동반한다. 365일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언제 가장 위험한지 정보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체득하는 데 있다. 제일 먼저 계절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자.
1. 가을 산불은 연기만 무성하다
가을 산불은 연기량에 놀라 무리하게 진화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 교육훈련 전문가 측면에서 본다면 가을 산불은 실전 대응력을 높이는 데 활용할 필요가 있다.
2. 겨울 산불은 차고 무거운 공기에 눌려 쉽게 번지지 못한다
3. 봄 산불은 도깨비불같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초기진화에 실패하면 소방은 산불을 산불진화대와 헬기에 맡기고 인명과 재산 보호에만 집중해야 한다. 거듭 강조하지만 봄 산불은 어디든 날아가 옮겨붙을 수 있다는 걸 잊어선 안 된다.
4. 여름 산불엔 참나무 숲도 안전하지 않다
가을에서 봄 산불은 침엽수가 가장 위험하고 수종에 따라 확산위험이 다르다. 그러나 여름 산불은 수종 가리지 않고 산 전체가 불구덩이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혼효림에서 침엽수 열원이 활엽수 잎에 옮겨붙으면 화세가 거세지기도 한다.
사람은 서울로 말은 제주로…? 산불은 동해로 간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형산불이 단 한 번도 동해 쪽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걸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봄철에 대형산불이 발생한다.
봄철에 산불을 대형화시키는 바람은 양쯔강기단인 남서풍이다. 북서풍은 높은 고도에서 찬 기온을 동반하고 북동풍은 습도가 높고 태백산맥에서 대부분 저지돼 산불을 크게 밀고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작은 산불은 국지풍(산곡풍, 해륙풍)에 따라 방향이 다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서울로 가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작은 산불이 어디로 가는가는 예측할 필요도 없이 눈으로 보고 확인하면 될 사안이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큰 산불은 동해 쪽을 향한다는 것만 알아도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다.
지형지세를 살피고 도시숲과 야산에 집중하라!
산림이 주 확산 방향을 가로막고 있는 곳이라면 확산 속도가 느리지만 비산화와 지중화 현상이 심화된다. 평지형 야산이나 도시숲은 소방 측면에서 보면 가장 위험한 산불이다.
시설물 피해는 평지형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옮겨붙거나 비화되면서 가장 큰 피해가 발생한다. 특히 야산 중턱 이상에 위치한 민가는 산불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평지 도심형 산불에 특별히 경계하고 대응력을 높여야 한다.
산불진화에 적절한 장비를 선택하라!
외국 사례에 너무 의존할 필요도 없다. 우리 실정에 맞는 장비가 오히려 관련 기술을 선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총 4회에 걸쳐 산불의 구조적인 문제점과 현장의 애로사항, 대응 방안에 대해 다뤘다. 산불은 개별법에 따라 산림청이 주관기관이라 소방에서는 다소 소홀히 대한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산불 현장에 100% 투입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보니 산불에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함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에 따라 가능한 지식과 경험을 동원해 연재하고 있다.
우리나라 산불관리체계는 애매한 부분이 있다. 믿음직한 소방에서 주도적으로 산불을 관리한다면 민간전문가가 나설 필요도 없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다음 호에서는 큰 틀에서 되짚어 보고 가장 이상적인 정책대안이 무엇인지 다뤄볼 예정이다.
황정석 소장은 1967년 소백산자락 과수원집 큰아들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에서 산림정책을 전공하면서 산불정책과 교육 관련 박사학위를 받았다.
7년 가까이 관계 기관 전임강사로 활동하다가 폭넓고 자유로운 산불연구를 위해 산불정책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03년 행정안전부(당시 행정자치부)로부터 산림분야 신지식인으로 선정됐으며 2019년에는 ‘우리나라 산불이야기’를 출간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우수과학도서로 인증받은 바 있다.
현재 중앙소방학교 외 5개 기관에 강의를 나가고 있다. 인니ㆍ몽골 산불인프라 구축 관련 ODA 사업 연구기획과 산불정책 관련 언론 기고, 산불대응전략ㆍ교육훈련 관련 교재를 집필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산불방지정책연구소_ 황정석 : hyh4884@hanmail.net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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