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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석의 리튬이온배터리(LIB) 이야기] 배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019년 노벨 화학상 수상 – 리튬이온배터리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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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구리소방서 강경석 | 기사입력 2024/02/01 [13:30]

[강경석의 리튬이온배터리(LIB) 이야기] 배터리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2019년 노벨 화학상 수상 – 리튬이온배터리 개발’

경기 구리소방서 강경석 | 입력 : 2024/02/01 [13:30]

2019년 10월 9일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상위원회는 텍사스대 교수인 존 구디너프와 미국 빙햄튼대 교수 스탠리 휘팅엄, 일본 메이조대 교수 겸 아사히카세이 명예 연구원인 요시노 아키라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 (왼쪽부터) 존 구디너프, 스탠리 휘팅엄, 요시노 아키라

 

노벨상위원회는 “노벨 화학상 수상자들은 ‘충전 가능한 세계’를 창조했다”며 “각종 휴대기기에 널리 사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태양광과 풍력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저장해 연료가 필요 없는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영국 바스대학교의 재료 화학자인 사이풀 이슬람(Saiful Islam)은 “내 생각에는 이 상이 너무 늦어졌다고 생각한다. 재료 화학의 중요한 분야가 인정받은 걸 보니 정말 기쁘다”며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 배터리는 휴대용 혁신에 힘을 실어 주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 소식은 널리 퍼지며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과학자들의 흥분과 기쁨을 끌어냈다.

 

이렇듯 혁신적인 기술을 탄생시킨 위대한 세 명의 과학자 이야기를 통해 리튬이온배터리의 탄생 과정 등을 알아보며 그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특별히 2023년 6월 25일 향년 100세로 타계한 구디너프 교수(님)에게 이 글을 통해 인류 과학 발전에 이바지함에 감사의 마음을 기려본다.

 

재충전이 가능한 세상

1. M. 스탠리 휘팅엄

▲ (왼쪽) 스탠리 휘팅엄(출처 Nobel Media), (오른쪽) 휘팅엄 교수가 만든 리튬이온배터리 모델(출처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휘팅엄 교수는 1941년 12월 22일 영국 노팅엄에서 태어났다. 그는 1951~1960년 영국 중동부 지역에 위치한 링컨셔의 스탬퍼드 학교에서 정규 교육을 받은 후 옥스퍼드에서 화학을 전공했다(학사 1964, 석사 1967, 박사 1968). 스탠퍼드에서 박사 후에는 로버트 허긴스 밑에서 연구원으로 고체 이온 현상을 연구했다. 

 

특히 초전도 물질을 생산하기 위해 고체 전해질에서 나트륨(Na+)과 은(Ag+) 이온의 이동(삽입)을 연구했다. 이 연구를 토대로 리튬이온배터리 발견의 발판을 마련한다. 

 

1969년까지 미국의 석유 생산량은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고 중동의 값싼 석유에 의존했다. 엑슨과 같은 대형 석유회사들은 다각화에 열중해 1973년의 석유 위기를 예측하고 뉴저지 클린턴에 엑슨 연구소와 엔지니어링 회사를 세웠다. 휘팅엄은 1972년 채용됐다. 

 

당시 이황화탄탈럼(TaS2) 초전도체에 관한 그의 연구는 매끄럽지 않았다. 하지만 칼륨 이온(K+)이 삽입되면 이황화탄탈럼의 전도도가 변한다는 걸 발견했다. 추가 조사를 통해 그는 이 물질이 놀랍도록 에너지가 풍부하고 납축 배터리만큼 좋은 전위(2V)를 쉽게 측정할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로 인해 그의 연구 방향은 변하고 에너지 저장을 목적으로 하는 다른 재료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후 이황화탄탈럼에서 양극을 이황화타이타늄(TiS2)으로 바꿨으며 칼륨이온을 리튬이온(Li+)으로 대체해 최초의 충전식 리튬(Li)배터리를 생산했다. 

 

리튬을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SI 화학 데이터 책을 잠깐 살펴보면 리튬이 모든 금속 중에서 가장 높은 표준 전극 전위(-3.04V)를 가지며 가장 가볍다는 걸 알 수 있다(r=0.534g/㎤).

 

따라서 휘팅엄의 설계는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이동해 이황화타이타늄에 삽입되고 재충전 시 리튬이온은 다시 리튬 음극으로 이동한다. 휘팅엄은 자신의 연구 결과물을 뉴욕의 엑슨 본사로 가져갔다.

 

15분간의 회의 후 최고 경영진은 이 새로운 배터리를 상용화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그러나 경쟁업체(벨 연구소)가 발명품에 대해 알게 될 경우를 대비해 모든 작업은 완전히 비밀리에 수행됐다.

 

하지만 이 배터리는 생산에 차질이 생겼는데 리튬의 독특한 특성과 관련이 있다. 리튬은 반응성이 높으며 물이나 공기와 접촉하면 격렬한 산화 반응으로 연소되고 산소가 없어도 탈 수 있다. 이로 인해 엑슨의 실험실에서 실제로 여러 차례 리튬 화재가 발생했다. 

 

그러나 더 나쁜 일은 아직 오지 않았다. 초기 리튬이온배터리가 반복적으로 충ㆍ방전을 하게 되면 리튬이온이 양극으로 돌아가는데 이때 리튬이온이 수지상 결정형태로 형성돼 양극과 음극 사이의 장벽을 뚫고 단락이 발생할 수 있다. 

 

여러 번의 리튬 화재를 겪은 엑슨 연구소는 놀라운 결과를 제공하는 배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리튬을 리튬알루미늄(LiAl) 합금으로 대체했다. 하지만 배터리 수명이 줄어드는 문제가 다시금 발생한다.

 

그런데도 배터리는 1976년 세상에 발표됐다. 궁극적으로는 자동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배터리를 확장하려는 계획이 진행 중이었다. 불행하게도 1980년대 초 석유 가격이 급락했고 엑슨은 휘팅엄의 배터리 연구를 중단했다. 

 

엑슨에서 16년을 보낸 후 휘팅엄은 다른 회사(Schlumberger-Doll Research)의 관리자로 4년 동안 일했다. 그 후 1988년에 뉴욕주립대학교에서 화학과 재료 과학, 공학 분야의 저명한 교수가 됐다.

 

2. 존 B. 구디너프

▲ (왼쪽) 존 구디너프 교수(출처 Nobel Media), (오른쪽) 구디너프가 만든 리튬이온배터리 모델(출처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독일 예나에서 출생한 존 구디너프 교수는 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그는 12세에 그로턴(Groton)에 있는 사립 기숙학교로 보내졌다. 난독증으로 고생했고 글을 읽을 수 없었지만 수학을 잘해서 예일대에 입학할 기회와 지원을 받았다. 1943년에는 수학과 학사 학위를 우등으로 수여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징집되는데 수학과 교수였던 에그버트 마일스(Egbert Miles)가 존 구디너프에게 “존, 다른 친구들처럼 해병대에 지원하지 마. 군대에는 당신 같은 배경을 가진 남자애들이 미 육군항공대의 기상학에 지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전쟁에서 영웅을 연기할 배짱이 없었기 때문에 이 친절한 조언에 따라 행동하며 기상학자로 미군에 복무했다. 1946년부터 1951년까진 시카고대학교에서 에드워드 텔러(Edward Teller)와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를 비롯한 당대의 주요 물리학자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물리학 대학원 과정을 공부했다. 

 

클래런스 제너(Clarence Zener) 밑에서 박사학위를 마친 후 1952년에는 MIT의 링컨(Lincoln)에서 새로운 컴퓨터 메모리 시스템을 연구하는 팀에 합류했다.

 

1950년대 중반 구디너프와 준지로 카나모리(Junjiro Kanamori)는 현대 RAM(Random Access Memory) 개발에 중요한 금속 산화물의 자기 특성을 합리화하는 경험적 규칙인 구디너프와 준지로 카나모리 규칙을 개발했다. 

 

1970년대 중반 구디너프는 휘팅엄이 배터리 개발을 모색하게 만든 에너지 위기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집착했다. 하지만 링컨 연구소는 공군의 자금 지원을 받았고 에너지는 국립연구소의 책임이었기 때문에 이 작업을 수행할 수 없었다.

 

1976년 구디너프는 옥스퍼드 무기화학연구소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사실상 화학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선발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다. 같은 해에 엑슨은 리튬이온배터리를 공개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배터리의 폭발과 화재 발생 경향이 명백해지기 전에 엑슨이 잠시 상용화한 것이다. 

 

구디너프 교수는 이황화타이타늄을 교체하면 휘팅엄 교수보다 더 강력한 배터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MIT 시절부터 매우 친숙한 금속 산화물을 사용했다. 구디너프는 두 명의 박사 후 연구원에게 모든 금속 산화물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어느 것이 가능한지 확인하도록 요청했다.

 

정답은 산화코발트(CoO2)로 가장 많은 리튬이온을 수용하고 4V의 전위를 인가해 끌어낼 수 있었다. 새로운 배터리는 1980년에 완성됐다. 이 리튬이온배터리에는 프로필렌 카보네이트에 리튬 테트라플루오로보레이트 전해질의 전해액을 사용했다. 음극으로는 리튬 금속 또는 Li0.1V2O5를 활용했다.

 

산화코발트 양극의 발견으로 리튬 금속보다 훨씬 더 높은 전위를 갖는 음극을 사용할 수 있게 됐지만 이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흥미롭게도 옥스포드는 새로운 배터리에 대한 특허를 거부했다. 수십억 달러 규모로 성장했기에 안타까운 일이었다. 

 

1986년 구디너프 교수는 영국의 의무 퇴직 연령인 65세를 맞이하고 옥스퍼드를 떠나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대학교의 코크렐(Cockrell) 공학대학 기계ㆍ전기 공학부에 합류했다.

 

그는 그곳에서 이온 전도성 고체와 전기화학 장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며 “여전히 나에게 또 하나의 큰 돌파구가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구디너프는 마지막까지 연구에 소명을 다하고 2023년 6월 25일 향년 100세로 타계한다. 

 

3. 요시노 아키라 

▲ (왼쪽) 요시노 아키라 교수(출처 Nobel Media), (오른쪽) 요시노 아키라가 만든 리튬이온배터리 (출처 Johan Jarnestad/The Royal Swedish Academy of Sciences)



2019년 노벨상의 마지막 돌파구는 1985년 일본에서 나왔다. 서구에서는 1980년대 석유제품 가격이 저렴해지면서 배터리 연구가 종식됐다. 그러나 일본의 전자회사들은 새로운 모바일 장치(주로 라디오, 무선 전화기, 카메라)에 전원을 공급할 수 있는 가볍고 강력한 배터리를 찾는 데 매우 열중했다. 

 

요시노 아키라는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그는 1873년에 설립된 유럽식 학교인 키타노고등학교(Kitano High School)를 다녔다. 교토대학 화학과에서 학사(1970)와 석사(1972)를 졸업하고 아사히카세이에 입사했다. 

 

그는 폴리아세틸렌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폴리아세틸렌은 시라카와 히데키(2000년 노벨상 수상)에 의해 유기 전도체로 보고됐는데 이러한 분자를 마이크로 전자 공학에 사용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1981년 요시노 아키라는 휘팅엄 배터리의 고체 리튬 금속 음극의 위험을 피하고자 폴리아세틸렌으로 만든 충전식 배터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합한 양극을 찾지 못했다.

 

1983년 그는 구디너프의 CoO2 음극에 대해 읽고 이를 폴리아세틸렌 음극과 결합해 그의 첫 번째 작동 배터리를 생산했다. 다른 탄소 물질이 시도됐고 결국 석유 코크스가 최고의 음극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1986년에는 프로토타입이 완성됐다. 

 

이는 리튬이온의 새로운 개념을 의미한다. 리튬이온의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배터리 리튬이온을 이온으로 전환하는 게 아니라 리튬 금속, 즉 요시노 배터리는 금속 리튬이 포함되지 않은 최초의 리튬이온배터리였다. 

 

배터리는 가벼운 데다가 4V 이상으로 개발됐다. 무엇보다 리튬 금속을 사용했을 때보다 안전하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또 다른 안전 기능은 합선 등 배터리가 과열되면 양극과 음극 사이의 장벽이 녹아 기공을 막으면서 급격한 방전을 막아준다는 점이다.

 

새 배터리의 공식 출시는 1991년 소니(Sony)에 의해 이뤄졌다. 그러나 1996년 노트북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진 실제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무선 혁명을 향한 결정적인 발걸음

노벨위원회는 ‘3인방’에게 상을 수여하면서 이번 돌파를 ‘무선 혁명을 향한 결정적인 발걸음’이라고 불렀다. 세 사람은 휴대용 전자제품에 혁명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전기자동차 개발과 재생 가능 에너지원으로부터 에너지 저장을 가능하게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휘팅엄은 고체 전기화학 방법을 체계적으로 개발해 최초의 충전식 배터리 프로토타입을 조립함으로써 기반을 마련했다. 구디너프는 새로운 화합물인 리튬 코발트 산화물을 발견하고 초기 프로토타입보다 강력한 배터리 설계에 혁명을 일으켰다. 

 

구디너프의 양극을 기본으로 요시노 양극의 코발트 산화물처럼 리튬이온을 삽입할 수 있는 탄소 재료인 석유 코크스를 사용해 최초로 상업적 실행이 가능하고 안전한 리튬이온배터리를 고안했다. 

 

또 구디너프의 원래 리튬 코발트 산화물 구조는 전 세계 모든 스마트폰과 태블릿에 실제로 사용되는 리튬이온배터리에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이들 위대한 과학자 세 명의 여정을 통해 우린 에너지의 재충전이 가능한 세계와 무선 혁신의 위대한 이정표를 얻게 된 셈이다. 

 

하지만 과학은 언제나 양면성을 갖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프로메테우스의 발견과 오펜하이머 발명 그리고 이러한 위대한 발걸음이 재난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일이다.

 


참고 자료

Whittingham, M. S., Prog. Solid State Chem., 1978, 12(1), 41–99.

Whittingham, M. S., Science, 1976, 192(4244), 1126–1127.

Mizushima, K., Jones, P. C., Wiseman, P. J. and Goodenough, J. B., Mater. Res. Bull., 1980, 15(6), 783–789. 

Yoshino, A., Angew. Chem. Int. Ed., 2012, 51, 5798–5800. 

PETER KARUSO, Chemistry in Australia. (2020) 21-23.

 

경기 구리소방서_ 강경석 : youeks@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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