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청도 산불을 시작으로 산청, 의성 등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인 산불이 발생했다. 이는 그간 최악의 산불로 여겨지던 2000년 동해안 산불의 피해 면적 2만3794㏊를 훌쩍 넘어 피해 면적만 4만5147㏊를 뛰어넘었다.
현재까지 사망자만 28명이고 산불진압용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숨졌으며 천년 고찰 고운사가 전소됐다. 이렇게 피해가 확산된 건 정부와 지자체의 산불에 대한 대비ㆍ대응이 미흡했기 때문이다.
근래에 발생하는 대형 산불은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 지구온난화로 최근 20년간 전 세계 산불 발생 건수는 2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초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발생한 산불로 23만ha가 소실됐고 지난해 6월엔 브라질 판타나우 습지에서 발생한 산불로 44만ha가 소실됐다.
우리나라에선 2023년과 지난해에 기록적인 폭우가 많이 내렸다. 이로 인해 풀과 나무들이 무성히 자랐고 산과 들의 나무와 풀들은 산불의 연료로 변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자료에 의하면 산림 기온이 1.5℃ 상승하면 산불위험지수는 8.6%가 증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연평균 238건이었던 산불은 2020년대에 들어 580건으로 증가했다.
산불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미국의 경우 최근 20년간 산불 발생은 두 배, 소실 면적은 1.7배로 증가했다. 미국에선 최근 10년간 기존 동기 대비 40배 많은 화재 경보가 발령됐다. 전 세계가 산불 위험 증가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만큼 여러 각국이 산불 대처를 위해 많은 자원을 투입하고 있다.
2023년 미국은 더 효과적인 산불 대응을 위해 산불 프로그램을 관리하는 내무부와 농림부를 중심으로 국립공원국, 토지관리국, 산림국이 산불 대응을 위한 자원을 통합했고 소방관과 산불진압장비를 대규모로 확충했다. 유럽연합은 2023년에 산불 대응을 위한 항공기와 헬리콥터, 소방인력을 두 배로 늘렸고 2030년까지 6억 유로를 투자해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계획이다.
한국도 이런 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산림 당국은 2023년 백서를 통해 이상 기온으로 산불이 대형화되고 있다며 산불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담수량 5t 이상의 대형 헬기를 확충하고 539명인 산불특수진화대를 2500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은 실행되지 않았고 그 결과 이러한 참담한 상황을 낳게 됐다.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산불특수진화대는 한 명도 증원되지 않았고 필요한 장비도 확충되지 않았다. 부족한 인력은 민간인으로 구성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들로 메워졌다. 산불 초기에 투입돼 사망한 이들 4명 중 3명이 이렇게 구성된 민간인들이었다.
산불은 산불진화용 특수차량부터 산불진화용 헬기까지 장비가 매우 중요하며 산불진화용 특수차량을 투입하기 위해선 임도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산림강국이라는 위상에 맞지 않게 임도가 매우 부족하다. 1968년 조성을 시작한 임도는 지난해 기준 2만6789㎞다. 1㏊를 기준으로 독일은 54m, 일본은 23.5m이나 한국은 4m에 불과하다.
산불진화용 헬기의 경우 산림청이 현재 보유한 수량은 50대다. 이 중 정비ㆍ수리 문제로 35대만 이번 산불에 투입됐다. 산불진압용 헬기는 중형(1400ℓ급), 대형(3천ℓ급), 초대형(8천ℓ급)으로 나뉘는데 국내엔 초대형 헬기가 7대뿐이다. 산불은 초기 진화가 중요한데 1만ℓ 이상의 물을 실어 나를 수 있는 치누크형 헬기는 전무하다.
산불이 잦은 미국의 경우 산불진화용 헬기뿐만 아니라 45t의 방화수를 100m 상공에서 투하할 수 있는 DC-10 에어 탱커(air tanker)를 2006년부터 운용하고 있다. 민간 여객 항공기를 개조한 에어 탱커는 컴퓨터로 제어되는 해치가 있어 정확한 지점에 물을 투하할 수 있다. 소방헬기와 달리 강풍의 조건에서도 운용이 가능하며 인력으로 몇 시간이 걸리는 작업을 단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다. 우리도 이제 미국처럼 1만ℓ 이상의 방화수를 공수할 수 있는 대형 항공기가 필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이번 산불을 통해 드러난 또 다른 문제점 중 하나가 산불 현장 지휘권이다. 수만㏊의 산림이 손실되고 28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65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이유는 초기 대응 실패, 정부ㆍ지자체의 미숙한 대응과 피난계획 때문이다. 산불이 발생하면 정전은 물론이고 기지국 파손으로 통신이 마비되기 때문에 대피방송도 불가한 경우가 많다. 적기에 정확한 대피계획의 실행이 중요한 이유다.
이번 산불에서는 주민에 대한 대피령이 너무 늦었고 어디로 대피할지도 확실하게 알려주지 못했다. 안동시는 3월 25일부터 모든 시민에게 대피를 권고하는 안전 문자를 발송했지만 어디로 대피하라는 구체적인 지시가 없었다. 영덕은 대피하라고 알려준 장소에 산불이 이미 들이닥친 상태라 다른 안전한 곳을 찾아가야 했다. 영양군은 주민 대피 방송을 너무 늦게 하는 바람에 피난 길에 오른 주민 6명이 숨졌다.
우리나라의 산불 대응은 규모에 따라 3단계로 발령된다. ‘산불진화 기관의 임무와 역할에 관한 규정’에 의하면 1ㆍ2단계 지휘권은 시ㆍ군ㆍ구청장, 3단계 지휘권은 시도지사에게 있다. 하지만 시ㆍ군ㆍ구청장과 시도지사는 산불에 대한 현장 경험이 없어 전문성이 떨어져 적시에 정확하고 효과적인 진화 작전을 펼칠 수가 없다. 또 지휘체계의 분산으로 인해 화재 초기에 화재를 진압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쳐버렸다. 따라서 산불 진화에 대한 지휘권과 권한은 서열에 상관없이 전문성이 있는 사람에게 부여돼야 된다. 즉 산불의 현장 지휘권을 일원화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핀란드, 일본, 스웨덴에 이어 세계 4대 산림강국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는 우리밖에 없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민둥산에서 울창한 산림을 만들어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만약 산림녹화에 성공하지 못했다면 현재 세계 경제 10위의 한국도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산림은 우리 경제와 사회, 문화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원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산불 발생 건수는 앞으로 더 증가할 것이다. 이번의 뼈아픈 경험을 계기로 현재까지의 미흡한 점을 개선해 체계적인 예방ㆍ대응 능력을 키워야 한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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