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산불은 계절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다. 건조한 봄철뿐 아니라 여름과 가을, 심지어 겨울철까지 산림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그 피해 규모 또한 매년 커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기후 위기와 인간의 부주의가 맞물리며 만들어낸 복합 재난이다. 이제 산불은 특정 지역과 특정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대응해야 할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위협이다.
소방 현장에서 마주하는 산림화재는 생각보다 더 치열하고 위태롭다. 불길은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번지고 지형은 진입과 진압을 어렵게 만들며 때로는 대원들의 안전마저 위협한다. 열과 연기, 고온의 기류, 무너지는 낙엽층 속 화염은 구조와 진압을 동시에 어렵게 만든다. 특히 야간이나 고지대 화재 상황에서는 헬기 운용이 어려워지고 인력 위주의 대응으로 전환돼 대응 속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초기에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했느냐가 피해의 크기를 좌우한다.
그러나 아무리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도 산림화재의 발생 자체를 막지 못하면 피해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산림화재 대부분은 인위적 원인에서 비롯된다. 담배꽁초나 쓰레기 소각, 캠핑 후 남겨진 불씨, 논ㆍ밭두렁 태우기 등 대부분이 인간의 부주의로부터 시작된다.
특히 봄철 논ㆍ밭 정비를 위한 소각 행위는 여전히 많은 지역에서 관행처럼 이뤄지는데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오판하면 순식간에 불씨가 숲으로 옮겨간다. 불씨 하나가 수백㏊의 산림을 삼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하다.
산림화재는 단지 나무가 타는 게 아니다. 소중한 생태계가 무너지고 대기질은 오염되며 거주지와 기반 시설이 위협받고, 인명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는 중대한 재난이다. 특히 최근엔 도심과 인접한 야산에서 발생한 화재가 주거지로 번질 위험도 커지고 있다. 산림화재가 단순한 화재로 그치지 않고 복합 화재로 진화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한 ‘진압’ 중심의 대응을 넘어 ‘예방’ 중심의 체계 전환이 절실하다. 지역 주민이나 등산객, 캠핑족, 농업인 등 산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 모두가 산불 예방의 주체가 돼야 한다. 특히 마을 단위에서의 공동 예방 교육, 불법 소각에 대한 단속 강화 등 공동체의 노력이 함께할 때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소방은 항상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바라는 건 시민의 안전한 하루다. 그 하루는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실천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산불 예방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불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불씨 하나를 피우기 전 ‘혹시나’라는 마음으로 한 번 더 점검하고 쓰레기 소각이나 불놀이 같은 사소한 행동이 어떤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깊이 인식하는 게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다가올 계절을 앞두고 다가올 불씨에 대비하자. 산불을 막는 가장 강력한 장비는 소화기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과 행동이다. 우리가 모두 산불 예방의 주체가 돼 더는 잿더미 위에서 후회하지 않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길 바란다.
동대문소방서 소방행정과 소방교 이한빈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