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는 전반적으로 조용한 분위기였지만 도로 위에서는 의외로 터프한 운전자들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약 20분 정도 조심조심 운전한 끝에 Campus Vesta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떠오른 느낌은 ‘너무 오래된 폐허 같은데?’였다.
관리되지 않은 듯한 낡은 창고 건물들과 어지럽게 자란 나무들이 어수선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순간 ‘정말 이런 곳에 그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날아온 건가…?’라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운전하며 들어서는 찰나 부식된 철판 외장재가 독특한 빈티지 감성을 자아내는 본관동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예상치 못한 흥미로움을 선사했다.
우리나라처럼 소방학교, 경찰학교, 군부대가 각각 분리된 구조와 달리 이곳 Campus Vesta는 소방, 경찰, 군인이 한 공간에서 각기 다른 교육을 받고 있었다. 우리가 머문 2주간 교육생 대부분은 경찰이었다. 마치 하나의 ‘통합 공공안전 아카데미’ 같은 분위기였다.
벨기에 남자 교육생들의 평균 키는 약 185㎝ 정도로 느껴질 만큼 훤칠했다(글을 작성하면서 찾아보니 실제로 벨기에 남성의 평균 신장은 약 181, 여성은 168㎝라고 한다).
특히 여자 교육생들 얼굴이 매우 작았는데 ‘정말 이렇게 작은 얼굴이 있을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로 교육이 끝난 뒤 피드백 시간에 “면체 크기가 너무 작았다”는 건의에 오히려 “지금 사용하는 면체가 벨기에 여성 소방관들에게는 커서 더 작은 사이즈의 면체를 도입할 예정”이라고 답해 우릴 놀라게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벨기에 여성들의 얼굴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더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첫날, 첫 수업에서 그동안 책과 영상 속에서만 본 카렐 램버트(Karel Lambert) 강사를 만날 수 있었다. 다부진 체격에 강렬한 눈빛을 가진 그는 첫인상부터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자신감에 찬 인물이라는 느낌을 줬다.
그 눈빛 하나, 자세 하나에서 교육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이 느껴졌다. 그 인상은 2주 동안 그를 믿고 따를 수 있는 든든한 출발점이 됐다.
그의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말 중 하나는 “교관의 자신감과 엄격함은 교육생에게 신뢰를 주며 그 신뢰는 교육생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보다 교육생이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낄 때 훨씬 높은 학습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고 나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교육에 푹 빠져들 수 있었던 2주였다.
첫 수업에서는 단순히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것보다 지금까지 알고 익숙해진 기존의 지식과 방식을 바꾸는 게 훨씬 더 어렵게 다가왔다.
카렐 램버트 강사와 보조강사 스티브(Steve), 마리오(Mario)는 훈련 형식이나 장면보단 ‘현실’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여겼다. 교육 내내 그들이 반복해서 강조한 건 “실화재 훈련은 현실과 다르다”였다.
이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우리가 훈련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되짚어주는 핵심적인 메시지였다.
한 가지 예로 ‘인형의 집’(Dollhouse)을 활용한 훈련에 대해서도 카렐 램버트는 분명한 입장이었다. 그는 이 훈련을 통해 기본적인 화재 성상 이론의 흐름을 재현하고 시연할 수 있다는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실제 화재 상황과는 다르다는 점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반복해서 지적한 핵심은 실제 화재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이다. 컨테이너 훈련장에서는 연료와 환기가 통제되며 소방대원은 화점실보다 낮은 위치에서 대응하고 인명 위험이 없는 상황에서 진행된다.
반면 실제 현장에서는 가연물의 양을 정확히 알 수 없고 환기 역시 의도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대상 건물 안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황을 훨씬 더 복잡하고 위험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강의와 실습 사이, 짧은 쉬는 시간마다 틈틈이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교육생들이 훈련에 익숙해지며 현실 감각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오히려 훈련의 몰입도를 높여주고 사고 예방에 대한 인식을 깊게 해줬다.
이론 수업은 여느 훈련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했으며 전문적이었다. 수없이 쏟아지는 질문과 문제들 앞에서 계산하고 답을 추측하며 그것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도 모르는 채 말을 이어갔다.
대학에서 강의한다는 카렐 램버트는 이론 수업에서도 막힘이 없었다. 그의 설명은 논리적이고 명확했으며 복잡한 내용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과연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는 자리에 섰을 때 저만큼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이 스쳤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교육 방식에 대한 반성의 시간도 찾아왔다.
이론 수업이 끝나면 브리핑(Briefing) – 콜드 드릴(Cold Drill) – 실습 – 디브리핑(Debriefing)의 순서로 하루 교육이 진행됐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이론과 실습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구조 속에서 매 순간 집중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교육 방식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전북 실화재 교육에서도 이와 동일한 흐름으로 교육을 운영할 계획이다. 이론을 바탕으로 현장을 이해하고 실습을 통해 이론을 검증하며 디브리핑을 통해 다시 되짚는 이 구조는 교육생들의 사고를 더욱 깊고 탄탄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날 할 훈련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과 안전에 관한 브리핑을 마치면 책상에서 일어나 다음 코스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드라이 훈련’이라 불리는 콜드 드릴(Cold Drill)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는 생각보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처음엔 “굳이 이만큼 오래 해야 하나?”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그만큼 중요한 단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고 의사소통조차 원활하지 않은 컨테이너 셀 안에서 안전하고 효과적인 훈련이 이뤄지려면 본격적인 실습 전에 콜드 존(Cold Zone)에서 실제처럼 동일한 멘트와 행동을 반복ㆍ훈련하는 게 필수다.
콜드 드릴을 통해 인스트럭터(Instructor, 강사)의 역할과 훈련의 진행 순서, 실습 시 반드시 유의해야 할 사항들을 충분히 숙지한 뒤 실제 훈련에 참여했다. 확실히 컨테이너 안에서는 불필요한 동작이나 혼란이 없어 훈련에 집중할 수 있었고 교육 효과 역시 높았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디브리핑의 중요성이 점점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질의응답을 포함한 디브리핑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교육생이 강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뿐 아니라 강사가 교육생에게 질문하며 내용을 점검하는 게 매우 인상 깊었다.
특히 강사가 먼저 정답을 말해주기보단 교육생이 스스로 그 답에 도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식이 매우 새롭게 다가왔다.
답을 찾기 위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이어졌고 그 과정은 다소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은 교육생의 기억에 더 오래 남을 뿐 아니라 교관이 교육생의 이해 수준을 정확히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강사는 부정적인 피드백보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더 많이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또 모든 교육생이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를 위해 강사는 끊임없이 교육생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각자의 참여를 유도하며 수업을 이끌어갔다. 이처럼 섬세한 디브리핑의 운영 방식은 교육의 깊이를 더해주는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다음 호에서는 실화재 훈련 내용에 대해 다뤄볼 예정이다.
Let’s Burn!! Let’s Fun!!
전북 완주소방서_ 장준희 : jangjuni@gmail.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7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