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 보도에 의하면, 작년 말 중국에서 최초로 「1인 당 국민 총 생산」1만 달러를 돌파한 「광저우」시의 달라진 모습을 헬스클럽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저녁 6시. 족히 500평(약1652㎡)은 돼 보이는 대 규모 체련장에서 퇴근길의 남, 녀들이 비만을 줄이려고 땀을 흘리며 운동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이 신문은 전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년간 1조 8천 억원에 달 한다고 한다. 비만은 경제 성장에 의한 영양 과잉 섭취로 나타나는 공통된 사회적 현상인 것 같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도 못되는 45년 전, 우리나라에는 「보릿고개」라는 전설 같은 것이 있었다. 가을에 추수한 쌀을 한 겨울 동안 먹고 나면 이듬해 4,5월 쯤 에는 바닥이 나고 만다. 7월에 햇보리가 수확될 때 까지 3개월여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수출 규모가 천만 달러를 겨우 맴도는 외환 사정으로 해외에서 곡물을 수입해다 먹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다.
그야말로 초근목피(草根木皮). 풀뿌리건, 나무껍질이건 먹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리지 않고 캐먹고, 벗겨다 먹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죽어 갔다. 배가 나온 사람을 부러워했고 「사장님 배」라고 존경을 받던 웃지 못 할 시절이 있었다.
서기 1900년 초, 조선조 말엽, 한반도를 둘러싼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열강들의 힘겨루기 틈새에서 조선의 정치 지도자들은 수구세력과 개혁세력 간에 피 터지는 싸움으로 날을 지세다 급기야는 나라를 일본에게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36년간을 일본의 식민지로 통치를 받으며 수탈당하다가 외세의 힘에 의해 해방을 맞았으나 정치 지도자들은 좌,우(左,右)의 이념 대립으로 충돌 했고 나라는 남,북(南,北)으로 분단되었으며 6.25전쟁까지 치렀으니 민초(民草)들의 고달픈 삶을 어떻게 표현할 길이 없었다.
1961년, 한국은 1인당 국민 총 생산 89달러로 세계 125개국 중 101번째로 가난한 나라였다. 5개년 경제계획을 세워 추진하려 했으나 돈을 빌려 주는 나라는 세계에 한나라도 없었다. 지금은 3d업종으로 구분돼 누구나 기피하는 일자리도 그때는 구할 수가 없었다.
할수없이 서독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서 시체 닦는 일을 하는 간호사들과 탄광 막장에서 중노동에 시달리는 대졸출신 광부들의 임금을 담보로 해서 서독 정부로부터 차관을 얻어 낼 수밖에 없는 형편 이였다. 그후 열사의 사막 중동에서, 전쟁 중인 베트남에서, 목숨을 걸고, 피땀을 흘려가며 외화를 벌어 들였다.
한편 국내에서는 경제 황무지 위에 “땀 흘려서 일 하고, 부자 마을 만들자”는 구호 아래 온 국민들이 한 마음으로 뭉쳐서 공휴일도 잊은 채 땀 흘려 노력한 결과 오늘 우리는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 했고, 배고팟던 시절은 옛날이야기의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아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우리들의 오늘은 어떠한가? 고생을 모르고 자랐고, 땀의 가치를 모르는 젊은 세대들이 힘든 노동을 기피하고 있어, 작년에 그냥 놀고 있는 젊은이들이 백만명을 넘었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앞날을 걱정하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올 해로 삼성그룹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은 이건희 회장은 “일본은 앞서가고, 중국은 쫓아오는 사이에서 샌드위치로 끼워있다”면서“이를 극복하지 못 하면 앞으로 20년 동안 참. 고생을 많이 할 위치에 있는 것이 우리 한반도”라고 걱정 했는가 하면 성신여대 강석훈 교수는 최근 발표한 칼럼을 통해 “지금 추세대로 경제 성장률이 하락한다면, 10여년 후에는 1~2%대로 떨어질 수도 있다”면서“10년 후에는 중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를 완전히 추월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 세대가 중국에서 어깨를 활짝 펴고 다니는, 최초 세대이자 마지막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상황을 감안하면서 10년 후 먹거리 문제를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고 경고 하고 있다.
“왜, 그때 라면도 못 먹었느냐?”고 묻는 우리 젊은 세대들 앞에, 45년 전 옛날의 악몽이 다시 찾아 올까봐 매우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