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N 신희섭 기자] = 나라장터에 등록된 소방피복 제조사의 직접생산 여부를 조사하던 조달청이 이달 초 불현듯 물품 계약 방식을 변경하겠다고 나섰다. 업계에 만연한 불공정 거래를 뿌리 뽑겠다 게 이유다.
소방피복은 중소기업청에서 선정하는 중기 간 경쟁물품 중 하나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대기업의 참여가 제한되고 제조사 역시 자사 공장에서 모든 제품을 생산해야 한다. 관련 업계에서 불공정 거래가 문제 되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직접생산 때문이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조달청 조사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조달청은 직접생산 능력이 없는 제조사의 경우 시장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기술보유 인력에 따라 1회 최대 입찰 금액을 제한하는 새로운 규정도 도입했다. 소방피복 제조사에 족쇄를 채운 셈이다. 또 이달 초에는 물품 계약 방식 변경에 대한 사실을 통보하는 등 압박 수위를 점점 높이고 있다.
불공정 거래는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는 점에서 이런 조달 행정에 처음에는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취재가 진행되면서 몇 가지 의문이 들었다. 조달청이 진정 불공정 거래를 바로잡기 위해 계약방식까지 변경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소방피복 제조사를 길들여 자신들이 ‘갑’임을 확인하려는 것일까.
계약방식 변경에 대한 통보가 있기 전까지 조달청은 수요기관인 소방조직과 단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부터가 넌센스다. 소방조직 역시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사에 계약 변경 사실을 전달한 방법 역시 이해가 안 된다. 조달청은 정부기관이다. 더욱이 제조사들과 체결한 MAS 계약의 기간도 남아있다. 이 시점에서 계약 제도를 변경한다는 건 이전 계약을 파기하는 중대한 사안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공문서 하나 없이 달랑 담당자 전화 통보로 이 사실을 알렸다고 한다.
계약방식 변경에 대한 소식이 전해지자 관련 업계는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제3자단가계약 방식이 다시 도입될 것이라는 소문도 무성하다. 실제로 조달청 직원에게 이 같은 말을 전해 들었다는 업계 사람도 여럿이다.
제3자단가계약은 이미 지난 2009년 수요기관인 소방의 요청으로 한 차례 변경된 바 있다. 피복 품질저하와 사후관리에 문제가 발생된다는 게 이유였다. 과거 실제 운영을 통해 문제가 됐고 수요기관조차 거부감을 갖던 계약 방식을 다시 도입한다니 그 누가 이를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조달청이 변경을 추진하는 3자단가 계약이 도입되면 MAS와 달리 제조사 간 공동수급이 가능해진다. 지난 5월 도입한 기술보유 인력에 따른 입찰가 제한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은 그나마 인정한다. 하지만 과거처럼 소방피복의 품질저하와 사후관리 문제로 제조사와 수요기관 간 갈등이 빚어질게 불보듯 뻔해 걱정이다.
차라리 현재의 MAS 계약 제도를 유지하면서 공동으로 수급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수 있는 행정을 수요기관이나 업계와의 협의조차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조달청의 속내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