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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일 년 살기- 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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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기사입력 2024/11/01 [10:00]

남극 일 년 살기- Ⅷ

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입력 : 2024/11/01 [10:00]

남극에서 열린 하프 마라톤 대회

요즘 대한민국은 러닝 열풍이다. 각종 마라톤대회 접수가 조기 마감되고 러닝화 품절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필자 역시 이 열풍에 동참해 각종 마라톤대회에 참가하며 달리기를 즐긴다. 이 달리기의 시작은 바로 남극에서부터다.

 

극야가 찾아오고 혹한의 날씨가 이어지는 동계기간은 외부활동에 제약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운동하며 체력 관리를 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가볍게는 삼각형 모양의 기지복도를 빙글빙글 돌며 걷기운동을 하거나 헬스장에서 기구를 이용한 근력운동과 러닝머신을 이용한 유산소 운동을 하는 등 각자의 스타일에 맞게 운동하며 자기관리에 힘쓴다.

 

그중에 단연 인기 많은 운동기구는 러닝머신이다.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러닝머신이 인기가 많다 보니 동계에 대비해 기존 2대에서 3대로 늘렸다. 그 이유 중 하나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 대한민국에 부는 러닝 열풍에 대해 어떤 전문가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불안감 때문에 젊은 세대들이 소소한 목표라도 확실히 성취해 삶의 의미가 되는 운동을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현상이라고 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아 우리도 어쩌면 그래서 더욱 열심히 달렸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한의 날씨로 생활반경이 좁아지고 계속 반복되는 일상과 햇빛마저 볼 수 없는 답답함 속에서 소소한 목표를 정해 달렸던 게 아닐까.

 

그러던 중 ‘러닝머신으로 마라톤을 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은 곧 행동으로 옮겨졌다. 42.195㎞를 달리기로 마음먹고 몇몇 대원의 의사를 확인했다.

 

기계설비 대원과 통신 대원이 동참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러닝머신으로 풀코스를 달리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기에 다음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금요일 오후에 달리기로 했다.

 

이렇게 함께 달릴 인원과 스케줄이 결정되자 의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일부 대원이 우리 계획을 반대했다.

 

지금 운용되는 러닝머신도 다른 고장 난 기계에서 부품을 빼 겨우 수리해 사용하는 건데 3대 모두 42.195㎞를 가동하면 고장의 우려가 있어서다. 고장 나면 남은 기간 러닝머신을 사용하지 못할 공산이 큰 건 사실이었다.

 

우리도 그 의견을 받아들여 풀코스 마라톤에서 하프 마라톤인 22㎞로 변경해 달리기로 했다. 함께 달리기로 한 통신 대원이 슬그머니 동참 의사를 철회하면서 결국 기계설비 대원과 둘이서 러닝머신으로 하프 마라톤을 진행하기로 했다.

 

우선 우린 달리기 후 몸무게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달리기 전 체중을 쟀다. 달리면서 틈틈이 마실 음료도 준비했다. 스트레칭을 함께 하고 대원들의 응원을 받으며 생애 처음으로 러닝머신 22㎞ 달리기를 시작했다.

 

▲ (왼쪽부터)마라톤 전 몸무게, 마라톤 후 몸무게

 

▲ 하프 마라톤 전 기계설비 대원과 기념촬영

 

▲ 하프 마라톤

 

처음엔 가볍게 시작해서 조금씩 속도를 내는데 평소 10㎞ 이상 달려본 적이 없던 터라 15㎞ 정도 달리고 나니 몸에 무리가 오는 게 느껴졌다. 우선 다리가 무거워진다는 느낌이 들었고 호흡도 매우 힘겨워졌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일인데 끝까지 완주하고 싶었다. 함께 달리는 기계설비 대원과 파이팅을 외치며 다행히 순조롭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남극에서 러닝머신으로 달린 하프 마라톤 결과는 2시간 10분 후반대를 기록했다. 남극엔 7일간 250㎞ 달리는 남극 마라톤대회가 있다면 장보고 과학기지엔 러닝머신으로 달리는 마라톤대회가 있다.

 

그리고 장보고기지 대회의 하프 코스 첫 기록자에 나와 기계설비 대원의 이름을 올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장님 이름으로 기록증을 발급 요청해 보관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게 우리만의 대회를 마치고 몸무게를 측정한 후 샤워까지 끝냈다. 체중은 2㎏ 정도 줄었다. 생각보단 많이 줄지 않았다. 잠시 쉬었다가 저녁 식사를 했다. 이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식탁에서 앉았다 일어나는데 다리가 아파 걷는 게 불편했다. 다음날까지 다리가 아파서 생활하는 데 지장이 많았다. 그래도 다행히 주말이 끝나기 전에 어느 정도 회복됐다. 그 이후로도 여러 대원과 지속해서 러닝머신 달리기를 하며 함께 어두운 극야기간을 보냈다.

 

남극 최대의 명절 ‘동지’

우리나라에 민족 최대명절인 한가위가 있다면 남극에는 남극 최대명절 동지가 있다. 남극 동지는 남극의 혹한 겨울 중 절반을 지나는 절기다. 극야기간의 절반을 무사히 보냈다는 의미와 조금씩 해가 길어지면서 해를 볼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축하하는 남극의 명절이다.

 

남극에서 겨울을 보내는 세계 각국의 기지에서 각자만의 특이한 방법으로 동지를 축하하는 세레머니를 한다. 개성 있는 기념사진을 첨부한 축전을 주고받으며 남극의 모든 기지에서 이를 기념하고 즐기는 오랜 전통을 지녔다.

 

▲ 동지 축전

 

우리도 세계 각국의 기지에 보낼 축전에 쓰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이 기념사진은 국내에서 매년 전 국민의 관심을 받는 의정부고등학교 졸업사진만큼이나 각국의 특색을 나타내기 위해 다양한 복장과 포즈로 연출한다.

 

1. 남극의 알 포인트

베트남전쟁을 담은 호러 영화 ‘알 포인트’가 2004년 개봉했다. 이 영화는 9명의 군인이 작전에 나갔으나 기념촬영을 한 사진에는 유령 포함 10명이 찍힌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우린 반대의 상황이었다.

 

동지 축전 기념촬영을 위해 각자 준비한 특이한 복장을 하고 식당에 모여 간단하게 회의를 했다. 영하 30℃가 넘는 날씨이기에 외부 활동 시간을 줄여야 했다. 촬영장소는 어디로 정할지, 어떤 콘셉트로 촬영할지 논의한 후 기지 앞 펭귄 동상 앞으로 향했다. 

 

나는 소방 기동복을 입고 제주 감귤 모자를 쓴 후 촬영에 임했다. 반바지에 반팔, 선글라스를 낀 대원도 있고 개량한복을 입은 대원 등 각자 개성 있는 복장으로 사진 촬영을 준비했다. 하지만 너무 춥다 보니 빨리 촬영을 마치고 실내로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 동지기념 사진

 

모두 같은 마음으로 재촉하는 와중에 사진기사를 자청한 해양 대원이 카메라 세팅을 어느 정도 맞춰놓은 후 야외로 나갔기에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둘러 여러 포즈의 단체 사진과 개인 사진을 20여 분간 촬영한 후 서둘러 기지로 복귀했다. 

 

여러 사진 중 축전에 쓰일 사진을 고르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린 분명 18명인데 단체 사진에는 17명만 있었다. 사진 촬영을 자청한 해양 대원도 사진에 있었는데 말이다. 한 명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누가 빠졌나 했더니 우주과학 대원이 보이지 않았다. 극야기간 외부에서 대원이 실종이라도 된 것이라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상황이었다. 우린 우주과학 대원을 ‘우주’라고 불렀기에 모두 “우주 어디 갔어?”라며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우주과학 대원은 보이지 않았다.

 

얼마 후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던 우주과학 대원을 발견했다. 사진 촬영 전일 당직이었던 그는 회의 때부터 자리에 없었는데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주과학 대원이 빠진 17명의 단체 사진을 두고 다시 사진을 촬영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하지만 일부 대원이 “추운 날씨에 다시 반바지, 반팔을 입고 나가 사진을 찍는 게 힘들다”고 했다.

 

마침 우주과학 대원이 “제 사진은 그냥 포토샵으로 넣어주세요”라고 말해 그렇게 하기로 하고 동지기념 사진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 그 상황을 떠올려보면 아직도 절로 웃음이 지어진다. 그렇게 찍은 사진으로 남극 장보고 과학기지 축전을 만들었다. 그 축전을 세계 각국 남극기지로 보냈다. 그렇게 우리만의 동지 행사를 마쳤다.

 

2. 명절에 빠질 수 없는 동지 음식

남극 생활을 다룬 일본영화 ‘남극의 쉐프’를 보면 남극 일본기지에서 동지기념 파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급레스토랑에 와 있는 것처럼 정장으로 복장을 갖춰 입고 거위 간 요리를 비롯한 여러 고급요리를 함께 나눈다.

 

동지를 맞아 장보고 과학기지 조리 대원도 그동안 아껴온 재료들을 정성 어린 손길로 어루만져 멋진 요리들을 탄생시켰다. 가장 귀한 재료 중 하나는 한국에서 출발할 때 동지를 위해 가져온 18마리의 바닷가재였다. 조리 대원은 18명 인원에 맞춘 18마리의 바닷가재 요리를 한국에서부터 동지를 위해 기획했다. 

 

남극 최대의 명절답게 만찬은 전야 만찬과 동지 만찬으로 준비됐다. 모든 대원은 함께 식당에 모여 만두를 빚고 떡 매치기로 인절미를 만들었다. 동지를 위해 손이 많이 간다는 두부도 직접 만들었다.

 

▲ 동지 음식 준비

 

▲ 떡 매치기

 

▲ 만두 빚는 대원들

 

두부는 한국에서 공수할 수 없어 1년 동안 특별한 날에만 몇 번 만들어 먹었다. 두부는 콩을 불리는 작업부터 시작해 손이 많이 갈 뿐 아니라 특별한 기술이 필요했기에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몇 차례 월동경험이 있는 기계설비 대원이 한국의 친구 어머님께 직접 전수 받은 실력을 맘껏 발휘해 맛있는 두부를 먹을 수 있었다. 

 

▲ 기계설비 대원의 두부 비법 전수

 

▲ 두부 만들기

 

동지 전야 만찬으로는 참치회와 대게가 준비됐다. 그동안 대장님이 아끼던 화이트와인도 대량 분출해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 동지 전야 만찬

 

특히 동지 당일 저녁에는 특별히 테이블에 식탁보까지 깔고 바닷가재와 파스타 등으로 호텔레스토랑 분위기를 냈다. 

 

▲ 동지 만찬

 

이 자리에서는 한국에서 극지연구소장님이 보내신 축전과 세계 각국에서 도착한 축전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지난 절반의 동계기간 아무 사고 없이 보낸 우리를 축하하고 앞으로의 월동생활을 응원하는 대장님의 축사로 남극의 동지파티는 무르익었다.

 

▲ 동지기념 윷놀이

 

우리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즐거운 만찬에 참석 못 하는 이도 있었다. 바로 당직 근무자들이었다. 당직 근무자들은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당직근무에 투입됐다. 우리가 먹고, 마시고, 즐기는 그 시간에도 기지의 모든 시설과 장비를 24시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우리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함이었다. 

 

식사만 마치고 자리를 뜬 당직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 남은 우린 캄캄한 남극 설원 한가운데 비치는 장보고 과학기지 불빛 아래 앞으로 남은 6개월의 남극 생활의 안녕을 기리며 기나긴 동지 밤을 보냈다.

 

불면증이 찾아왔다

그렇게 웃고 즐기는 그 시간에도 문뜩 한국의 가족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었다.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이라는 시조에서 나오는 ‘동짓날 기나긴 밤을 잘라내어 이불 아래 넣어두었다가 님이 오면 꺼내겠다’는 구절이 생각났다. 

 

가족과 한국 생활에 대한 그리움 때문인지 아니면 사흘간의 동지 연휴를 너무 잘 즐겨서인지 그날 이후 나는 2주가량 기나긴 밤을 지새워야 하는 불면증에 시달리게 됐다.

 

극야기간에 많은 대원이 불면증과 우울증에 힘들어한다는 말을 들은 터였다. 남극에 들어오면서 가장 걱정했던 극야기간에 말로만 듣던 불면증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하루 이틀은 그냥 ‘생활 패턴이 무너져서 그런가 보다’ 했다. 정상 패턴을 찾기 위해 아침엔 꼭 운동을 했다. 일과를 마친 후에 피곤해도 침대에 눕지 않고 취침시간에 맞춰 잠자리에 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기지 밖 바람 소리는 매우 크게 들렸고 가끔 강풍에 흔들리는 기지의 작은 진동 역시 기지가 무너질 것만 같은 진동으로 느껴져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심지어 옆방 기상 대원의 코 고는 소리마저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극야기간 사용할 수 있는 멜라토닌 램프를 쬐어보라는 의료대원의 조언으로 광합성 치료도 받아보고 심지어 약물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몸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 태양을 대신하는 멜라토닌 램프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해줬지만 별다른 차도가 없었다. 새벽 5시께 겨우 잠들어 오전 8시에 깨 일과를 시작하는 생활이 2주가량이나 지속됐다. 그렇게 우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저녁 식사 후 잠깐 잠든 것 같았는데 화장실 한 번 안 가고 다음 날 아침까지 자는 기적 같은 날이 찾아왔다. 그리고 불면증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모든 건 주변의 염려와 시간이 해결해 줬다. 말로만 듣던 극야기간의 불면증이 찾아 왔다가는 걸 보면서 ‘남극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은 다 하고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그때를 생각해보면 ‘그래도 2주 만에 불면증이 사라진 게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린 기나긴 남극의 어두운 극야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보내고 있었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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