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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일 년 살기-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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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기사입력 2024/05/02 [10:00]

남극 일 년 살기- Ⅱ

경기 파주소방서 김성한 | 입력 : 2024/05/02 [10:00]

남극에도 신고식이 존재한다고?

인수인계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장보고 10차 월동연구대의 활동이 시작됐다. 각자 인수인계받은 장비와 시설들을 다시 한번 점검한 후 1년간의 업무에 대해 계획을 세우고 적응해나가느라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 소방안전교육

 

그 사이 기지에서의 안전한 생활을 위한 안전대원의 소방안전교육과 유지반장의 정전 대비 교육 등 여러 가지 안전교육도 함께 진행됐다. 이 교육들은 사고 예방을 위해 매우 중요해서 인수인계 직후 실시됐다.

 

기지에서 화재나 정전 같은 사고가 발생해 초기에 해결하지 못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고립된 남극 환경에서는 외부 지원을 받을 수 없어 이 같은 사고는 생존과도 직결된다.

 

‘화재는 그렇다 쳐도 정전이 왜 대형 참사로 이어질까?’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극은 춥기 때문이다.

 

모든 배관은 동파 방지를 위해 열선이 감겨 있다. 따라서 추운 날씨에 정전이 되면 30분 이내에 배관들이 동파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물 공급뿐 아니라 배출이 어려워지면서 기지는 마비가 된다.

 

발전기 문제가 생겨 정전된다는 건 사람으로 치면 심장이 멈추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듯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준비하고 교육했다. 그리고 내 노력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큰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컴퓨터 화면이 꺼지더니 정전을 알리는 알람 소리가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울어대기 시작했다. 순간 매우 당황스럽고 짧은 찰나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무전으로 본관동과 다른 연구동 상황을 확인하니 전 기지가 정전이었다. 기지에는 3대의 발전기가 돌아가면서 가동되는데 3호기에서 1호기로 교대 운전 중 발전기가 멈추면서 정전이 됐다.

 

기지의 심장이 멈춘 엄청난 사건이 발생하자 발전대원과 전기대원, 기계설비대원들이 달려와 발전기를 재가동시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발전기가 가동되지 않았다.

 

필수 장비 가동을 위한 비상 전원장치의 배터리도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급한 마음에 비상 전원장치로 가동되던 필수 장비마저 모두 셧다운 시키고 발전기 시동을 다시 걸어보기로 했다. 기지 대장님의 무전과 동시에 기지의 모든 전력을 차단했다.

 

▲ 정전 복구 중인 발전대원

 

그 순간 기지에 적막이 흘렀다. 발전대원의 손은 매우 분주하게 움직이며 발전기를 초기화시킨 후 다시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우렁찬 소리를 내며 발전기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안정적으로 전력이 공급되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여기저기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 신고식을 이렇게 하네”

 

누군가는 자조 섞인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신고식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며 남극의 여름을 알렸다.

 

기온이 올라가니 지붕 위의 눈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지붕 틈 사이에서 눈이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천장의 벌어진 부분 여기저기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눈 녹은 물이 화재감지기로 떨어지면서 오작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야 말았다.

 

▲ 누수로 인한 감지기 오작동

▲ 누수 부위 긴급보수작업

 

이제 더 이상의 신고식은 없을 거로 생각했지만 그건 우리만의 바람이었던 것 같다. 본격적으로 남극의 여름이 시작되면서 해빙이 깨져나간 조각들이 늘었다.

 

그 유빙들이 기지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바닷물을 끌어 올리는 취수 펌프를 밀어내면서 펌프에 문제가 생겼다. 결국 우린 날 밝은 새벽에 자다 말고 모두 나와 펌프를 끌어 올리고 교체하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 취수펌프 주변 유빙

▲ 오전 4시 취수펌프 교체작업

 

이렇게 달밤의 체조가 아닌 해 뜬 밤의 작업을 마치면서 우리의 신고식도 마무리됐다.

 

남극의 연말연시

3주간 적응하느라 휴일도 없이 바쁘게 시간을 보낸 후 크리스마스를 맞았다. 하지만 남극의 크리스마스라고 해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식당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설치되긴 했지만 내 눈을 사로잡진 못했다.

 

요즘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거리에서 캐럴을 듣기란 쉽지 않지만 그래도 간간이 캐럴을 들으면 크리스마스 기분이 나곤 했었다. 하지만 남극에서는 캐럴도 들을 수 없었다.

 

토요일이었던 크리스마스이브에 일직 근무라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를 서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4번의 순찰과 CCTV로 기지 시설 살피기 등 일직 근무를 마친 후 크리스마스이브 행사가 준비된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는 조리대원이 고생해서 만든 스테이크가 준비돼 있었다. 대장님의 간단한 인사와 함께 우린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크리스마스 만찬을 시작했다.

 

▲ 크리스마스이브 만찬

 

헬기팀 선임 조종사인 뉴질랜드 출신의 ‘칼’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회사 마크가 들어간 모자를 선물했다. 우린 그렇게 각자 선물을 나누고 스테이크와 맥주가 곁들여진 저녁 식사를 하며 해가 지지 않는 크리스마스이브를 보냈다. 

 

▲ 크리스마스 선물 증정식

 

별다른 감흥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여러 하계 연구대원, 특히 헬기팀을 포함한 외국인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는 처음 경험한지라 평생 기억에 남는 크리스마스이브가 됐다.

 

‘한여름에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경험을 한 사람들은 많이 있어도 해가 지지 않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본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니 더욱 값진 경험이라 여겨졌다.

 

연말인 12월 30일 오전 근무를 마치고 오후 종무식 행사를 하면서 한 달간의 남극 생활을 마무리했다. 한국에서도 12월 31일 산 또는 바다에서 일몰을 보거나 1월 1일 일출을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이동하고 있어 교통체증이 예상된다는 인터넷 뉴스를 접했다.

 

▲ 송년회 겸 생일파티

 

우린 많은 인파도, 교통체증도 없는 이곳에서 등반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장보고 과학기지 뒤편에 장보고 봉이라는 봉우리가 있어 등반을 계획했다. 등반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정상까지 오르는데 4시간가량이나 걸렸다. 

 

▲ 장보고 등반

 

하지만 경사가 심해지고 장보고 봉에 가까워질수록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를 반겨줬다. 정상에 오르면 바람이 거세다는 정보를 갖고 올랐는데 생각보다 바람이 불지 않아 등반하기엔 최고의 날씨였다.

 

이렇게 좋은 날씨는 남극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우리 대원들에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었다.

 

 

힘들게 정상에 도착한 우린 단체 사진을 찍고 준비해 온 주먹밥과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산에서 컵라면을 먹어본 사람들은 누구나 아는 그런 맛이 절대 아니었다. 저 멀리 보이는 남극해와 이름 모를 산봉우리들을 찬 삼아 먹는 라면의 맛은 분명 또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해가 지지 않는 백야 기간이라 일몰을 감상할 순 없었지만 대신 우린 지지 않는 태양을 봤다. 그리고 2022년을 하산과 함께 보내줬다.

 

 

영상통화 어디까지 해봤니?

새해가 밝았다. 아니 지난밤은 계속 밝은 상태였다. 해가 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새해 기념으로 조리대원이 맛있게 해 준 떡국을 먹고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KT 위성을 통해 인터넷망을 사용하는 장보고 과학기지는 인터넷 검색이나 영상통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한 환경이다. 덕분에 가족들이 보고 싶을 때마다 영상통화를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물론 매번 인터넷 환경이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크게 부족함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마친 후 조금 더 특별한 영상통화를 준비해야 했다. 바로 대통령님과 하는 신년맞이 격려 영상통화가 준비돼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과의 영상통화는 기지 대장님과 나, 그리고 룸메이트인 전기대원 이렇게 세 명이 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 대통령과 영상통화

 

최초 계획은 한국 시각으로 오전 7시 장보고 기지 시간으로 오전 11시에 준비됐는데 갑자기 한국 시각 오전 11시로 변경돼 현지 시각 오후 3시에 대통령님과 영상통화를 통해 신년맞이 격려 인사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리허설을 여러 번 하며 많이 준비했지만 2~3분 만에 끝나버렸다. 약간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이로써 난 남극에서 대통령과 영상통화를 한 최초의 소방관이 됐다. 이런 경험 또한 남극에 와 있어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다.

 

경기 파주소방서_ 김성한 : sunghan21@gg.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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