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전도 공부 시작에 앞서 구급대원에게 가장 어려운 공부가 뭐냐고 물으면 심전도를 꼽는 구급대원이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어려운 정도를 떠나 심전도 공부 자체를 포기한 대원도 꽤 될 테죠.
학교에서 배울 때도 어려웠는데 이미 그마저도 대부분 기억나지 않고 심지어 간호학과에서는 깊고 자세히 심전도를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최근 유튜브에 심전도 강의들이 있지만 대부분 의사를 대상으로 한 영상들입니다. 게다가 은, 는, 이, 가 등의 조사를 제외하곤 알 수 없는 의학용어들로 강의를 진행해 한국어인데 내가 모르는 한국어인 듯한 자괴감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럼 심전도는 어떻게 공부해야 할까요?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심전도를 공부하는 한 명의 학생이고 매년 심전도 워크숍을 꾸준히 참석해 듣고 있지만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입니다.
그래도 대략 비유해 본다면 심전도는 외국어 공부와 비슷한 면이 많다고 느낍니다. 꾸준히 오랫동안 공부하고 외국인과 직접 주기적으로 대화해봐야 100%는 아니더라도 문맥과 눈치로 소통하고 입과 귀가 조금씩 뜨이는 외국어처럼 심전도 공부 역시 그러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조금씩, 꾸준히, 최대한 많은 환자의 심전도를 보는 것 말고는 답이 없지 않나 싶네요(물론 그 오랜 기간 외국어 공부에 많은 걸 투자해도 대부분은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하지 못하는 게 함정이긴 합니다).
심전도는 의사들에게도 쉬운 종목이 아니라고 합니다. 최근 한 연구(Accuracy of Physicians’ Electrocardiogram Interpretation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David A. Cook et al, 2020, JAMA.)에서는 훈련받기 전 54%, 훈련받은 후 약 67% 정도의 심전도 판독 정확도를 보이고 의대생이 약 42%, 전문의 선생님들이 68.5%, 심장내과 선생님들이 74.9%의 정확도를 나타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심전도는 누구에게든 어렵고 힘든 분야입니다. 그런데도 병원 내 선생님들은 더 많은 시간을 심전도 공부에 투자하고 더 많은 심전도를 집중력 있게 판독해 왔기에 저희보다 더 정확하게 심전도를 판독하고 환자의 많은 정보를 알아낼 수 있는 거겠죠.
저 역시 심전도에 대해 늘 어렵고 자신 없지만 앞으로 계속될 이 연재를 통해 함께 공부하고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 우리의 업무를 위해선 결국 해야 할 공부이니까요.
12유도 심전도의 구성 12유도는 사지 유도(Limb leads)와 흉부 유도(Precordial leads)로 구성됩니다. 사지 유도는 RA, LA, LL 등 3개의 전극을 붙여서 얻어내는 Ⅰ,Ⅱ,Ⅲ 유도와 마이너스(-) 단자를 중앙으로 모아 증폭시킨 aVR, aVL, aVF로 구성됩니다.
우리가 흔히 3유도라 부르는 값이 이 사지 유도 값 중 Ⅰ,Ⅱ,Ⅲ입니다. 특히 Ⅱ 유도는 심장의 전기 벡터 방향과 가장 비슷하므로 환자를 이송하면서 모니터링 시 가장 많이 활용됩니다.
심장은 정면에서 보는 2D 평면이 아닌 입체적입니다. 해부학 구조상 심장 전체를 관찰하기 위해 몸통의 여러 부위에 전극을 붙이고 관찰하는 방식들이 개발됐습니다.
흉부 유도는 6개의 전극을 심장의 오른쪽에서 중격, 왼쪽으로 붙임으로써 심장을 보다 입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도록 구성됩니다. 이외에도 후방 흉부 유도, 우측면 흉부 유도 등이 있지만 이번 호에선 다루지 않겠습니다.
전극을 붙이는 방식은 이외에도 몇 가지 종류가 더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가 가장 많이 쓰는 12유도 방식을 중심으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심전도를 공부하기에 앞서 정확히 측정하는 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잘못 측정된 심전도로는 제대로 판독이 어려우므로 처음엔 정확히 붙이는 방법부터 배워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 부분이지만 심전도를 붙이기 전 환자와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다음은 환자의 안정입니다. 심전도를 촬영해야 할 환자는 흉통이나 호흡곤란 등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벌벌 떨거나, 움직이거나, 불안정한 상태라면, 또 구급차가 움직이는 중이라면 베이스라인이 흔들리는 등 정확한 측정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한 환자를 안정시키고 구급차 출발 직전에 측정을 진행하는 게 좋습니다.
이젠 심전도를 붙일 차례입니다. 먼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12유도 심전도 측정 위치입니다.
우선 V1과 V2의 위치입니다. 빗장뼈의 중앙에서 살짝 아래로 내려가면 우리가 흔히 루이스 각이라고 부르는 복장뼈 각이 만져집니다. 그 각을 타고 옆으로 내려가면 2번 갈비뼈가 나옵니다.
그 바로 아래가 2번 갈비 사이 공간(2nd ICS)이 됩니다. 좀 더 내려가서 아래, 아래 4번 갈비 사이 공간이 V1과 V2를 붙이는 자리입니다. 양 복장뼈 끝단에 V1과 V2를 마주 보게 붙여 주시면 됩니다.
빗장중간선과 5번 갈비 사이 공간이 만나는 지점은 V4, 동일 선상으로 앞 겨드랑 선에 V5, 중간 겨드랑 선에 V6를 붙입니다. V3는 V2와 V4 사이에 붙이면 됩니다. 이게 우리가 배웠던 교과서적인 방법입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렇게 일일이 다 촉지하고 붙이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릴뿐더러 환자에게도 불편한 일입니다. 비만 환자들은 아예 갈비뼈를 촉지하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 교육자료에서는 젖꼭지를 기준점으로 삼으라고도 합니다(소방청 사이버교육 ‘심전도 이해와 응급처치’).
물론 젖꼭지는 환자의 성별과 나이에 따라 위치가 다르고 또 유방암 등의 병력으로 인해 절제 수술을 받은 환자라면 더욱 기준점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기본적인 해부학도 함께 머릿속에 그려가면서 전극을 붙이면 됩니다.
이번 호에서는 12유도 심전도를 측정하는 방법에 대해 함께 살펴봤습니다. 구급대원 중에는 ‘난 심전도를 하나도 모르는데 붙일 필요가 있는 걸까? 의미가 있는 걸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겁니다. 우리 역할은 현장에서 심전도를 진단하고 치료하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심전도는 보조적인 부분에서 참고하는 거지 환자의 주 호소, 병력 등을 무시하고 심전도로만 진단하는 건 여러 오류를 낳을 수 있습니다. 12유도 심전도 적응증이 있는 환자라면 심전도를 측정하고 의료지도를 통해 적정한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만으로도 구급대원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또 병원 이송 전 현장 상황과 중간중간 심전도 변화를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일입니다. 자주 심전도를 측정하고 눈으로 익히다 보면 잘은 모르지만 뭔가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심전도를 종종 볼 수 있을 겁니다. 그걸 의료지도를 통해 의견을 나누고 전달하는 것. 그게 우리의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ㆍ환자의 갈비뼈가 잘 촉지되지 않는 체형이라면 젖꼭지를 기준으로 붙인다. ㆍ사지 전극은 최대한 몸통 바깥으로 붙이고 RL은 LL 쪽으로 몰아서 붙여도 괜찮다. ㆍ심전도 측정을 위해 환자 상의를 제거하기 전 충분한 양해를 구하자.
어디까지나 이 글은 저도 함께 공부하며 진행하고 있다는 것. 혹시라도 이해되지 않는 내용이나 틀린 부분 있으면 언제라도 서두에 적힌 메일로 연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원 양양소방서_ 안지원 : ajwon119@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2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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