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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19] “KBS119 대상은 생사고락 같이한 동료와 함께 받은 것… 영광 돌리고파”

[인터뷰] 제29회 KBS119상 대상 수상자 임기환 대구 수성소방서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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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4/06/03 [10:00]

[Hot!119] “KBS119 대상은 생사고락 같이한 동료와 함께 받은 것… 영광 돌리고파”

[인터뷰] 제29회 KBS119상 대상 수상자 임기환 대구 수성소방서 소방장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4/06/03 [10:00]


구름 한 점 없이 높고 푸른 하늘 속 햇살이 가득했던 2020년 10월의 어느 날. 평화로웠던 119구조대에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구조 출동, 구조 출동. 

다섯 살 남아 에어컨 실외기 위로 추락했다는 신고입니다. 

119구조대는 현 시간부로 빠르게 출동해주세요”

 

출동지령을 듣는 순간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아들과 비슷한 또래 아이가 안전장치 하나 없이 10m 높이에 고립돼 있다는 신고였다. 출동 내내 속으로 ‘조금만 버텨줘, 금방 구해줄게’라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아이가 10m 높이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앉아 난간을 붙잡고 있었다. 발을 헛디디거나 실외기가 무게를 못 견뎌 무너지기라도 하면 자칫 지상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

 

장비를 챙겨 4층으로 곧장 뛰어올랐다. 발코니에서 로프를 타고 구조지점에 도착하니 맑은 눈망울의 아이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물끄러미 고개를 들었다. 즉시 아이에게 구조장비를 입혔다.

 

“많이 놀랐지?

소방관 아저씨가 안전하게 구해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믿어줘”

 

평소보다 더욱 신중하게 로프를 조작하며 아이와 함께 무사히 지상으로 내려왔다. 미리 내려와 있던 아이 아버지는 연신 감사하다며 두 손을 꼭 붙잡았다. 어찌나 긴장하셨던지 붙잡은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며칠 후 직접 소방서로 찾아온 아버지는 “소방관은 정말 슈퍼맨”이라며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하고 가셨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날만 생각하면 뿌듯함과 아찔한 감정이 동시에 든다는 임기환 소방장. 그는 대구 수성소방서 119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특전사 출신인 임 소방장은 2009년 2월 구조 경력채용으로 소방에 입직했다.

 

“전역 후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방황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머리도 식힐 겸 등산을 갔는데 우연히 군대 선배를 만났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선배가 소방공무원 준비를 한다는 걸 알게 됐죠. 평소 존경하던 선배라 저도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마침 당시 여자친구던 아내도 적극 권유해서 입직했습니다”

 

임 소방장은 임용 후부터 지금까지 119구조대에서만 근무했다. 15년간 4500여 회 구조 현장에 출동해 수많은 시민을 구했다.

 

이 공로로 그는 4월 ‘제29회 KBS119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KBS119상은 화재나 구조, 구급 등 분야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소방공무원에게 수여하는 영예로운 상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계기로 소방공무원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매년 열리고 있다.

 

 

“수많은 동료와 합심해 구조 활동을 했는데 저만 이렇게 상을 받아 얼떨떨하고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절대 저 혼자 잘해서 받은 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위험이 도사리는 현장에서 늘 서로 힘이 되고 의지하는 동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그가 이만한 업적을 낼 수 있었던 데는 물론 주변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뼈아픈 기억으로 남은 사고 현장에 출동을 나간 이후로 ‘단순 구조 활동만 펼치는 게 아닌 전문 지식도 갖춘 소방관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를 변화시킨 일생일대의 순간은 다름 아닌 2019년 경부고속도로에서 발생한 화물트럭 4중 추돌사고 현장이다. 15분 쯤 걸려 도착한 현장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대형 화물트럭들은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었고 바닥은 온통 유리 파편으로 가득했어요. 두 화물트럭 사이에 낀 윙바디 트럭 운전석은 형체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죠. 도저히 사람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디선가 희미하게 “살려주세요”라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그는 차량 범퍼 위에 겨우 발을 디뎌 구조에 전념했다. 초겨울이었지만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전개 장비를 이용해 공간을 만들자 구급대원이 합세해 약물 주입 등 응급처치를 했다. 30분이 지났을까. 드디어 밖으로 탈출시키려는 순간 구조대상자가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몇 시간 뒤 운전자가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충분히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구급대원에 물어보니 출혈이 있던 다리가 압착돼 혈류가 막혀있었는데 구조 중 공간이 생기면서 피가 급격히 쏟아진 게 사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출혈성 쇼크로 인한 심정지’였죠. 구조 활동엔 공부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 계기였습니다”

 

 

이후 그는 화재ㆍ화학사고대응능력 1급, 화재감식평가기사, 화재감식평가산업기사, 위험물기능사까지 취득했다.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지금도 출동 후 복귀하면 항상 동료들과 디브리핑을 이어간다. 최근엔 화재조사관이 되기 위한 자격증 공부에 여념이 없다.

 

“워낙 활달한 성격이라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도 좋지만 묵묵히 앉아서 무언가에 집중하며 연구하는 것도 성격에 맞더라고요. 억울한 피해자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해보니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꼭 화재조사관으로도 활동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어요”

 

그동안 무사히 현장 활동을 마친 것과 소방관으로서 다양한 전문 지식을 쌓은 것, 최근 KBS119상을 수상한 것 등 모든 걸 동료의 공으로 돌리는 임 소방관. 그는 15년간의 소방관 생활을 회상하며 “난 참 인복이 많은 사람 같다”고 소회를 전하기도 했다.

 

“훌륭한 선배님께 소방관의 기본 덕목과 자질을 배웠고 후배들에겐 선배로서 나아갈 방향을 배웠습니다. 가는 곳마다 훌륭한 지휘관을 만나 제 역량을 갈고 닦으며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었어요. 지금껏 수천 번 현장에 나가면서 시민을 구조하지 못할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아마 모든 소방관이 같은 마음일 겁니다. 앞으로도 국민만 바라보고 국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박준호 기자 pakr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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