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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119]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건넨 도움의 손길, 튀르키예 국민께 위로됐길”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대한 기억과 기록… ‘튀르키예 지진 7.8’ 집필
[인터뷰] 김상호 중앙119구조본부 충청ㆍ강원119특수구조대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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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윤 기자 | 기사입력 2024/09/02 [11:00]

[Hot!119]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가 건넨 도움의 손길, 튀르키예 국민께 위로됐길”

튀르키예 지진 현장에 대한 기억과 기록… ‘튀르키예 지진 7.8’ 집필
[인터뷰] 김상호 중앙119구조본부 충청ㆍ강원119특수구조대 소방장

김태윤 기자 | 입력 : 2024/09/02 [11:00]

 

“대지진으로 아비규환이 된 튀르키예에서 9일간 8명을 구조하고 19명의 희생자를 가족 품에 안겨줬습니다. 이번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활동이 6.25 전쟁 때 우리를 위해 달려와 준 튀르키예에 조금이나마 보답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현지 시각 2023년 2월 6일 오전 4시 17분. 규모 7.8의 대지진이 튀르키예 동남부 가지안테프 인근을 강타했다. 뉴스에선 튀르키예 관련 소식을 앞다퉈 전했다. 보수적인 예측으로도 수천, 많게는 수만에서 수십만의 사상자 발생이 우려되는 상황. 

 

당시 중앙119구조본부 충주119화학구조센터에서 근무하던 김상호 소방장 역시 뉴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국제구조대 인력풀이 소집될 수도 있다는 긴급공지 문자를 받았기 때문이다.

 

“국제구조대 인력풀에 지원할 때만 해도 진짜 파견을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소집 후 대기만 하다가 결국 취소된 얘기를 선배들에게 여러 번 들었거든요. 집결지에 도착하고 나서야 실감이 났습니다”

 

김 소방장이 태극기 마크를 달고 타국 땅을 밟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특전사 부사관을 거쳐 육군 헌병(현 군사경찰) 장교로 복무하던 2006년 이라크평화재건사단(자이툰 부대) 5진으로 파병돼 주한 이라크 대사 경호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소령까지 진급한 그가 왜 갑자기 소방제복을 입기로 결심했을까. 다름 아닌 ‘가족’ 때문이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말단 소방사가 되겠다는 그의 결정을 주변에선 의아해했다.

 

“그런데도 확신이 있었어요. 국민을 위한다는 대의는 같으니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딸과 함께할 시간이 많아져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튀르키예 파견 때도 가족은 제가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고 복귀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였죠”

 

튀르키예 지진 피해 대응 해외긴급구호대는 역대 가장 많은 인원인 121명으로 꾸려졌다. 파견 결정 역시 역대 최단 시간으로 이뤄졌다. 72시간의 골든타임 내에 튀르키예에서 성과를 올린다면 앞으로 해외긴급구호대 파견 시 좋은 선례가 될 게 분명한 상황이었다.

 

“출국 행사에서 주한 튀르키예 대사는 ‘한 사람을 구하는 건 전 인류를 구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시신 수습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보다도 빨리 현장으로 가 반드시 생존자를 구하고 돌아와야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죠. 대원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현지 시각 2월 8일 오전 6시 57분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대원들은 튀르키예 가지안테프 공항에 착륙했다. 조급한 마음이 컸지만 공항 상황이 혼잡해 하역 작업부터 난항을 겪었다.

 

“매 순간 골든타임이 흐르고 있었기에 빨리 인명구조를 시작하고 싶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았어요. 우여곡절이 많았죠. 특히 이스켄데룬에 갔다가 지역 정부 요청으로 안타키아까지 이동했는데 도로가 주차장과 같아서 많은 시간을 소모한 게 너무 아까웠어요”

 

물자도 부족했다. 튀르키예로 출발하기 직전 특전사 대원들의 물자가 추가돼 수송기에 기적재한 물자를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현장 지휘소로 사용할 텐트마저 대원들의 숙소로 전환하고 나무 정자와 축구장 골대에 비닐을 둘러 현장 지휘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열악한 여건이었지만 대원들은 맡은 임무를 잊지 않았다. 운영반 소속이던 김 소방장은 홍보와 안전, 상황ㆍ자원관리, 관계기관 협조 업무 등 구조대원 지원 업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운영반은 구호대 활동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했어요. 운영반원으로서 구호대의 전반적인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죠. 그 덕에 경험하고 들은 이야기를 훗날 글로 정리해 국민과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첫 생존자 구조 소식은 가지안테프 공항에 도착한 이튿날 전해졌다. 무너진 건물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는 신고가 접수된 것.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의 첫 번째 공식 구조 출동이었다.

 

“급박한 상황을 눈치챈 현지 운전기사는 장애물이 있어도 무시하면서 거침없이 현장으로 향했어요. 차량의 사이드미러가 파손됐지만 속력을 늦추진 않았죠. 현장 수색 결과 아기는 없었지만 70대 남성을 발견해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사흘간 아무것도 드시지 못한 상태였죠. 구호대가 조금만 늦었다면 다시는 세상의 밝은 빛을 보지 못하셨을 겁니다”

 

이후로도 구호대의 활약은 계속됐다. 9일간 활동하면서 총 8명의 생존자를 구하고 19명의 희생자를 수습했다. 대한민국 해외긴급구호대 역사상 유례없는 성과였다. 튀르키예 이전 이뤄진 17번의 파견을 통해 구조된 생존자는 1999년 대만 대지진 당시 6살이었던 장징훙 군이 유일하다.

 

“튀르키예 정부는 국민에게 당국이 비상 상황을 성공적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려고 해외 구조대의 활약을 잘 보도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대한민국 구호대의 활약은 이례적으로 국영방송 전파를 탔습니다. 우리의 활동이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국민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 것 같아 매우 기뻤어요”

 

대한민국 구호대의 활동이 한 줄기 빛이 된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지만 튀르키예 전역에 짙게 깔린 어둠을 완전히 걷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김 소방장. 그만큼 그가 튀르키예에서 마주한 현실은 참담했다. 튀르키예 인구의 약 27%가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다.

 

그는 귀국과 동시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간의 기록을 토대로 함께 파견을 나갔던 동료 구조대원들의 기억을 더했다. 우리 국민과 후배 소방관들에게 튀르키예 지진 현장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우리 구호대가 보여준 헌신과 열정은 물론 튀르키예의 참상을 담아내기에 정부 주도의 백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어요. 집필을 마친 후 출간을 위해 여러 출판사에 연락을 취했지만 성사되지 않았어요. 그러다 <119플러스>를 통해 연재할 기회가 주어졌고 출간까지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김 소방장은 2023년 10월호 <119플러스> 매거진을 통해 ‘튀르키예 지진 7.8’ 연재를 시작했다. 최근엔 같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절망적인 지진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생존자를 구조해 전 세계에 ‘KOREA’를 각인시킨 해외긴급구호대의 드라마 같은 이야기를 문학적 기법으로 재구성한 책이다.

 

“책 판매를 통해 거둔 수익금 전액은 튀르키예 안타키아의 셀림 아나돌루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도서 구매 비용으로 기부할 생각이에요. 우리 구호대가 숙영지로 사용했던 곳이죠. 많은 학생이 학교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거란 생각에 마음이 내내 무거웠어요. 기부금은 3주년 추모식에 맞춰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을 통해 전달할 계획입니다”

 

국민이 보내는 신뢰에는 특별한 에너지가 있어 소방관을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직업으로 생각한다는 김상호 소방장. 

 

“위급 상황에서 희망을 주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소방관으로 남고 싶어요. 앞으로 소방관으로서 울고 웃는 순간들을 계속 기록해 나갈 생각입니다. 국민과 동료들이 언젠가 저를 ‘글 쓰는 소방관’으로 불러 줬으면 좋겠어요.”

 

 

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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