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무기력증 벗어나게 해 준 축구, 이젠 ‘소공녀’와 함께 뜁니다”[인터뷰] 전국 소방 최초로 여성 축구동아리 만든 ‘김선희 서울 중랑소방서 소방위’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를 묻는다면 모두 입을 모아 ‘축구’를 꼽지 않을까. 국제축구연맹(FIFA)에 따르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결승전 동시 시청자 수는 15억명에 달한다.
지구인 5명 중 1명이 경기를 관람한 셈이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 역시 1위(크리스티아누 호날두, 6.5억명)와 2위(리오넬 메시, 5억명) 모두 축구선수다.
축구는 경기 중 태클 등 거친 몸싸움이 자주 발생하기에 남성 스포츠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한 축구선수는 경기장에 입장할 때 “전쟁에 나가는 심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컷 냄새가 강하지만 몇 년 전 방영된 지상파의 한 TV 프로그램으로 ‘금녀의 벽’이 깨졌다. 이젠 어느 축구장을 가더라도 ‘여성 축구 회원 모집’이란 플래카드를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 불어닥친 여자축구 신드롬이 최근 소방에도 이어지고 있다. 3월 24일 효창운동장에서 서울소방재난본부 소속 여성 소방대원으로 구성된 축구동아리, 소공녀(소방에 공차는 여자들) 발대식이 열렸다.
소방에서 여성 축구동아리가 창단한 건 소공녀가 최초다. 동아리 조직에 발 벗고 나서 주도한 인물은 바로 김선희 서울 중랑소방서 소방위다.
1999년 구급특채로 서울소방에 입직한 김 소방위는 우리나라 최초 1급 응급구조사다. 단지 사람 살리는 일을 동경해 응급구조학과에 진학한 그는 응급구조사 자격 취득 후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2년 근무한 후 소방관이 됐다.
17년간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며 심폐소생술(CPR)로 심정지 환자를 살린 대원에게 수여하는 ‘하트세이버’를 무려 10회나 수상했다.
현장을 누구보다 사랑한 그는 보호자보다 더 가족같이 환자를 대했고 동료에겐 엄마 역할을 자처했다. 그 공로로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장관상과 강동성심병원장 표창을 받기도 했다.
매사에 늘 열정적이라 에너지가 도무지 떨어질 것 같지 않던 김선희 소방위. 그런 그에게 갑자기 ‘무기력증’이란 불청객이 찾아왔다.
“구급대원은 업무 특성상 저녁과 새벽 출동이 많습니다. 밤샘 근무 후 퇴근하면 녹초가 된 채로 늦은 점심까지 잠을 잤어요.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또 근무일이 찾아오는 게 반복됐죠. 어느 순간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단 생각에 아무런 의욕도 생기지 않더라고요”
그러던 어느 날 운명처럼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왔다. TV 시청 중 채널을 돌린 그는 우연히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 경기를 시청했다. 푸르른 잔디 위에서 오직 공만 바라보며 전력 질주하는 선수들 모습에 말 그대로 매료됐다.
“이전에도 월드컵 기간이 되면 가족들과 축구 경기를 보긴 했어요. 그런데 직접 공을 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던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지금도 그 순간이 아주 강렬하게 기억납니다”
그러나 선뜻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만 하더라도 여성이 축구화를 신는 건 굉장히 생경한 일이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을까. 김 소방위는 새로 전입해 온 동료의 아내가 축구모임에 나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용기를 얻은 그는 바로 인터넷을 켰다.
“집 근처 여성 축구단을 검색했더니 이미 오래전에 창단한 ‘강동구 여성 축구단’이 있더라고요. 등잔 밑이 어두웠던 거죠. 생각보다 활발하게 운영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곧바로 축구화를 사서 경기장으로 달려갔죠”
그러나 평생 축구화를 신어본 적 없고 경기 룰도 잘 모르는 그에게 향하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공은 튕겨 나가기 일쑤였고 패스도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자주 넘어져 잘 때면 늘 파스 신세를 져야 했다. 그런데도 굴하지 않았다. 감독 지도하에 트래핑과 패스 등 기본기를 익혔다.
“퇴근하면 집이 아닌 경기장을 찾는 날이 더 많아졌습니다. 참 신기했어요. 쉬지 않고 운동하는데 오히려 몸이 더 상쾌하고 가볍더라고요.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거죠”
만년 후보였던 김 소방위는 뼈를 깎는 노력 끝에 지난해부터 어엿한 주전 자리를 꿰찼다. 오른쪽 윙백 포지션을 맡은 그는 2023년 축구단이 전국대회 준우승과 서울시대회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축구가 삶의 일부분이 된 김 소방위. 축구가 너무 좋은 나머지 외부 동아리 활동뿐 아니라 몸담은 조직에서도 마음에 맞는 동료들과 함께 공을 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꿈은 현실이 됐다.
“시도 소방본부 축구대회 때마다 남성 동료들을 응원하러 갔는데요. 좋아하는 축구를 동료와 함께한다는 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순간 ‘여자들이라고 못할 게 뭘 까’란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보다 축구를 하며 얻은 활력을 우리 여성들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컸죠. 그래서 바로 인트라넷으로 공모를 했습니다”
처음엔 “여자가 무슨 축구냐”하는 주변 시선이 많이 신경 쓰였다. 아무 반응이 없을까 봐 걱정도 됐다. 그런데 모든 게 기우였다. 모집 한 달 만에 서울소방 여성대원 38명이 지원했다. 그렇게 그들은 소공녀의 일원이 됐다.
“이렇게 반응이 뜨거울지 전혀 예상 못 했어요. 알고 보니 이들도 축구가 하고 싶었는데 감히 엄두가 안 났던 거예요. 저와 함께 해줘서 정말 고마운데 오히려 그들이 제게 감사하다고 해요. 제가 사랑하는 축구를 우리 동료들과 한다니 정말 꿈같아 코 끝이 찡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동료들의 근무시간이 전부 달라 모든 인원이 한날한시에 모여 공을 차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근무지도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한 경기장만 고수할 수 없다.
“축구를 한 지는 오래됐지만 팀을 운영하는 건 처음이라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요. 그런데 시작이 반이잖아요. 우리 소공녀는 이제 시작입니다. 서울을 기점으로 전국 시도 소방본부에 여성 축구동아리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여성 축구대회가 열리는 게 제 마지막 꿈이거든요. 물론 우승은 당연히 저희 서울이 해야겠죠?”
박준호 기자 pakr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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