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남극 연구원들의 374일간 기록… ‘남극 일 년 살기’[인터뷰] 장보고과학기지 월동연구대원으로 일 년간 남극살이한 김성한 경기 고양소방서 소방장
대한민국이 세종과학기지에 이어 남극에 두 번째(2014년)로 세운 상주 기지인 장보고과학기지. 정부는 매년 이곳으로 월동연구대를 파견한다. 이들은 수십만 년간 인류의 손길이 닿지 않은 빙하, 운석을 분석해 지구와 우주의 과거를 밝혀내는 연구를 수행한다. 또 빙하 상태를 조사해 기후변화를 파악하는 역할을 한다.
이 월동연구대 명단엔 매년 소방대원도 포함된다. 1년 넘게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생활하는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다. 지난 2022년 9월 결성된 장보고과학기지 제10차 월동연구대엔 김성한 경기 고양소방서 소방장이 함께했다.
김성한 소방장은 2012년 구급 특별채용으로 소방에 입직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2005년부터 명지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이력이 있다.
소방관이 된 후 심정지 환자를 소생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하트세이버’를 일곱 번이나 받을 정도로 언제나 생명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해 온 김 소방장. 그는 입직 당시부터 남극에서 월동연구대원으로 근무하는 꿈을 품어왔다.
“강원도 정선에서 학교를 다녔는데요. 가까운 영월에 공부를 엄청나게 잘해서 유명한 전재규 씨가 있었어요. 서울대학교에 진학하고 세종과학기지에 월동연구대원으로 파견도 갔죠. 그런데 남극에서 조난사고로 실종된 동료 대원을 구조하던 중 순직하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이 뇌리에 박혔나 봐요. 그래서 인지 소방공무원이 되면 꼭 남극에 가야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월동연구대원 명단에 포함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지원 자격 자체가 까다롭다.
1급 응급구조사 또는 간호사 자격을 갖고 5년 이상 현장에서 활동한 대원 중 토익점수가 600점 이상이어야만 지원할 수 있다. 여기에 각종 면허나 자격증을 소지하면 가점을 받는다. 소방청이 각 시도 소방본부에서 지원한 수십명의 대원 중 세 명을 추리고 극지연구소가 최종 인원을 선발한다. 김 소방장은 3전 4기 끝에 최종 합격했다.
“남극에 가기 위해 동력수상레저기구와 소형선박, 초경량비행장치 조종면허까지 취득했습니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의료ㆍ구급 현장에 있던 제가 선박 조종면허를 갖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지금 와 생각해보면 어떻게 다 했나 싶습니다. 그만큼 월동연구대원 되는 게 간절했던 것 같아요”
김성한 소방장은 건강검진과 심리검사, 극지 적응 안전훈련, 소양 교육을 받고 정식 월동연구대원이 됐다. 출국 날짜는 2022년 10월 22일로 정해졌다. 하지만 비행기 활주로로 사용하는 기지 앞 해빙이 충분히 얼지 않으면서 출국이 한 달이나 미뤄졌다. 한 달 뒤, 가까스로 출국하게 됐지만 남극 땅을 밟기까진 13일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영상이나 책으로만 보던 남극에 도착하니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감동해 눈물도 살짝 났죠. 그런데 감동만 하고 있을 순 없었습니다. 바로 9차 선배 대원들로부터 인계를 받아야 했거든요”
김 소방장은 동료 대원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업무를 맡았다. 아플 때 진통제를 놓아주는 건 물론 헬기 이ㆍ착륙이나 중장비 작업 시 안전 확보 등이 그의 주된 임무였다.
“외부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동료 대원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에 압박과 부담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24시간 해가 뜨지 않는 5월에서 8월까지의 극야기간엔 더욱 그랬죠. 그런데 모두 너무나 건강히 잘 지내줘서 구급과 관련해선 거의 할 게 없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마음입니다”
김 소방장은 2022년 12월 2일부터 2023년 12월 10일까지 374일간의 남극 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귀국했다. 그리곤 곧바로 펜을 들었다. 남극에서의 기록들을 정리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그의 남극 체험기는 2024년 4월부터 2025년 4월까지 1년 동안 <119플러스>에 연재됐다. 백야와 극야가 주는 신비로움, 눈보라로 8시간 동안 고립됐다가 겨우 구조된 경험, 이탈리아 대원과 기지에서 저녁 파티한 에피소드 등 극한 환경 속에서 18명의 대원이 함께 나눈 소중한 경험들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남극 일 년 살기’라는 책으로 태어났다.
이 책엔 연재 내용뿐 아니라 남극 파견을 꿈꾸는 소방공무원들을 위한 선발 심사 고득점 비법과 면접 필승 전략 등 다양한 팁이 수록됐다. 또 남극 생활을 통해서만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를 별도의 지면에 담았다.
“남극에서의 일 년 살이는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잖아요. 사람들에게 남극의 황홀함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당시 시간이 잘 안 갈 때도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정말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아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간 다시 가고 싶기도 해요. 그날이 오겠죠?”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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