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광고

[희로애락 119] #28 된장 바른 도널드 덕

광고
광주 남부소방서 이태영 | 기사입력 2025/05/02 [17:00]

[희로애락 119] #28 된장 바른 도널드 덕

광주 남부소방서 이태영 | 입력 : 2025/05/02 [17:00]

“벌집 제거 출동! 15m 높이에 말벌집이 있다는 신고!”

 

1998년 어느 무더운 여름. 광주광역시 남구에 위치한 한 수녀원에서 말벌집을 제거해 달라는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높은 것도 문제지만 말벌집이 엄청 크다니까 다들 안전사고 나지 않도록 조심해”

 

팀장의 지시를 받으며 현장에 도착한 김덕수 소방관. 높이도 높이지만 말벌집의 엄청난 크기에 압도돼 오도카니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팀장님! 태어나서 이렇게 큰 말벌집은 처음입니다. 선풍기 머리보다 더 크네요”

“농구공도 크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상상 초월이다. 일단 외부에서 제거하는 건 위험할 거 같으니… 아, 수녀님! 혹시 건물 내부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수녀님의 안내에 따라 기숙사 꼭대기 층에 있는 구석방으로 들어간 김덕수 소방관과 동료들은 욕실에 있는 작은 창문을 열고 벌집 제거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덕수가 제일 날씬하니까 창문 밖으로 나가서 벌집 제거하자. 추락사고 대비해서 로프 연결하고”

“사이즈가 크긴 한데 한방에 뜯어내겠습니다”

 

열정과 패기가 넘쳤던 김덕수 소방관. 하지만 그의 열정에 비해 한없이 모자란 장비에 선배 소방관들의 걱정은 커져만 갔다. 당시 장비는 전기사고에 대비한 절연보호복과 그물망이 설치된 모자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덕수야! 말벌집이 커서 한 번에 자루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조심해”

 

팀장의 계속되는 걱정과 다르게 김덕수 소방관의 패기는 멈출 줄 몰랐다. 그렇게 상반신이 창문 밖으로 나온 상태로 벌집 제거가 시작됐다.

 

“으악” 

“야! 김덕수! 뭐야? 무슨 일이야?”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말벌집이 원체 크다 보니 준비된 자루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하고 절반은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한순간에 집을 잃은 말벌들은 김덕수 소방관을 향해 공격하기 시작했고 머리에 쓴 그물망이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은 그 순간. 말벌들이 김덕수 소방관의 입술을 공격했다. 

 

“으아~악” 

“야! 김덕수! 또 뭐야? 무슨 일이야?” 

 

이번엔 손을 멀리 뻗어 나머지 말벌집을 제거하던 순간 상의가 올라가면서 옆구리가 노출돼 버렸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말벌들의 공격에 김덕수 소방관은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악전고투 끝에 벌집 제거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온 김덕수 소방관. 윗입술이 퉁퉁 부어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동료 소방관과 수녀님들은 웃음을 ‘꾹꾹’ 참고 있었다. 

하지만 고생한 소방관들을 위해 수녀님이 준비한 포도를 먹는데 입술이 부어 좀처럼 입을 오므리지 못하면서 포도씨를 뱉기조차 힘들어하는 김덕수 소방관을 보고 동료 소방관들과 수녀님은 결국 박장대소하며 하나둘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구리에도 벌에 쏘였다는 김덕수 소방관의 이야기에 연로하신 수녀님께서 명약이 있다며 구수한 냄새가 풍기는 약을 옆구리를 발라주셨는데 그건 바로 ‘된장’이었다. “개한테 물렸을 때 된장 바른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벌 쏘인 데 된장 바르는 건 처음 본다”며 직원들은 김덕수 소방관에게 

 

“덕수야! 너 꼭 그 뭐냐 만화 캐릭터 도널드 같다. 네 이름에 덕자도 들어가겠다. 너 앞으로 별명은 도널드 덕이다. 그런데 된장도 발랐으니 ‘된장 바른 도널드 덕’이다”

 

지금은 그때보다 보호 장비도 좋아지고 벌들의 특성이나 벌집 제거 노하우도 많이 전파됐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벌집 작업 중 동료가 사망하거나 부상 소식을 듣게 되면 마음이 안타깝다. 현장에 출동한 우리 동료가 언제나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원한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119플러스 정기 구독 신청 바로가기

119플러스 네이버스토어 구독 신청 바로가기

희로애락 119 관련기사목록
광고
포토뉴스
[릴레이 인터뷰] “현장서 생명 살릴 판단력ㆍ책임감ㆍ인성 갖춘 응급구조 전문가로 성장하길”
1/4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