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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 119] #17 불났어요. 불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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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소방학교 이태영 | 기사입력 2024/06/03 [10:00]

[희로애락 119] #17 불났어요. 불났어!

광주소방학교 이태영 | 입력 : 2024/06/03 [10:00]

119종합상황실(이하 상황실)은 신고접수 1분 안에 신고자의 정확한 위치와 내용을 파악해 소방차를 출동시켜야 하는 평가지표가 있다. 노련한 상황실 소방관들은 대부분 3~40초 만에 위치와 내용을 파악하지만 노인이나 아이와의 통화는 정확한 내용 파악이 어려워 진땀 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소방서에 가장 어수선한 시기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교대 근무시간이라고 얘기한다. 

 

ㆍ오늘 근무 중에는 무슨 출동이 있었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ㆍ소방차, 구급차 등 차량 상태가 어땠고 뭐가 문제인지?

ㆍ서무들은 상급부서에 보고해야 할 내용과 특이사항 인수인계까지…

 

그날도 어수선했던 교대근무 시간이었다. 근무자 간 인수인계가 이뤄지다 보니 상황실 데시벨 수치가 최고치에 다다랐다.

 

신고접수와 출동 관제가 중앙방송이라 치면 담당자별 인수인계는 지방방송이라고 해야 할까? 두 방송이 버무려지는 상황에 현장출동대의 무전 소리까지 화룡점정이 더해지면 상황실은 마치 도떼기시장과 같다(누군가는 오락실이란 표현을 쓰기도 한다. 피시방 말고 조이스틱과 버튼을 눌러 철권을 했던 그 시절 오락실 말이다).

 

그때 한 통의 신고벨이 울리고 A 소방관은 헤드셋으로 통화를 이어나간다.

 

“불났어요! 불났어! 불!”

“신고자분 침착하시고 어디서 불났어요? 뭐가 타고 있어요?”

 

불이 났다는 A 소방관의 통화 내용이 흘러나오자 지방방송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음소거가 됐다. 직원 모두가 신고내용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신고자의 정확한 위치 파악이 안 됐는지 얼굴에선 답답함이 묻어 나왔다. 노련한 A 소방관이라도 늘 완벽할 수 없는 법. 속절없이 1분에 다다르고 있었고 신고자는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화재 출동! 00동 00 인근 화재 출동!”

“정확한 위치가 파악되지 않은 상태. 

신고자와 통화 중 전화 끊김”

 

평가지표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보니 A 소방관은 기지국 기반을 중심으로 소방차를 출동시켰다. 지휘차와 펌프소방차, 구급차에선 출동한다는 무전이 계속 전달됐고 지휘팀장은 상황실에 추가정보를 요청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기 위해서 신고자와 통화(역 걸기)가 이뤄져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A 소방관은 ‘큰불이라면 다른 곳에서도 신고가 들어올 텐데… 들어오지 않은 걸 보면 큰불은 아닐 거야’라며 애써 긴장된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또다시 신고자와 통화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통화가 이뤄졌다.

 

“선생님, 정확한 위치가 어디죠? 어디서 불났어요?”

“어디서 불나꺼써? 내 맘속에 천불이 나쏘! 천불이!”

 

흐느끼며 ‘천불’이 났다는 할머니의 얘기에 A 소방관은 허탈한 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한편으론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미 현장에 도착한 지휘팀에서는 “현장 인근에 도착했는데 화염이 보이지 않는다”는 무전이 날아왔다. 

 

“불이 할머니 마음속에 났다는 신고입니다. 

귀소하십시오”

 

어떠한 한(恨) 맺힌 사연인지 몰라도 할머니의 답답한 마음 속 불을 소방관이 꺼드릴 순 없다. 한바탕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 또한 엄연히 장난 전화 혹은 거짓신고가 될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아야겠다.

 

<익명을 요청한 광주소방 소속 A 소방관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광주소방학교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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