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은 강의 중 최고였습니다. 고급 강의를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커피 쿠폰과 함께 도착한 메시지. 심장이 터질 듯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2023년 스스로 내뱉었던 약속에 보상이라도 받은 양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
2013년 5월, ‘소방홍보’라는 업무를 처음 맡게 되면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연락공보담당의 역할이 무엇인가. 아니 역할(役割)보다는 자질(資質)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모두가 연락공보담당이란 자리는 소방조직을 대변하는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하지만 그 역할에 필요한 연락공보담당자의 자질은 판단하지 않았다. 즉 자질 있는 소방관에게 그 역할을 맡기는 게 아닌 역할을 먼저 주고 자질은 차후에 소방관 개인이 만들어야 하는 구조였다.
쉴 새 없이 물음표가 던져졌다. 그도 그럴 것이 소방학교에서 진행되는 소방(언론)홍보 또는 언론브리핑 교육과정 대부분이 발성과 발음, 자세와 같은 스피치 교육에 집중돼 있었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이 내겐 자질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만 비춰졌다.
“자질이 수업 한 번 듣는다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저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렇게 자질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니 재난 현장 브리핑 시 쩔쩔매는 소방관을 볼 때마다 세 치 혀를 차며 깊은 한숨을 쉬곤 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과 행동을 했던 건 ‘나는 너보다 잘할 수 있다’는 시건방 때문이었다. 그땐 겸손이 힘들었다.
이런 생각의 변화가 시작된 건 2022년 1월 11일 신축 중인 건물이 무너진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붕괴사고 현장에서다. 매일 두 차례 진행되는 정례브리핑, 구조대상자 발견과 같은 특이사항 발생 시 실시되는 긴급브리핑, 그리고 최대 290여 명까지 채워진 언론 채널 운영까지…. 숨 막히는 하루하루가 31일간 지속됐다.
관할 소방서장이던 문희준 서장은 정돈되지 않은 말투와 다소 부정확한 발음 등 브리핑을 진행하는 브리퍼로서의 자질이 부족해 보였다. 하지만 형식이 아닌 내용을 전달하는 데 힘을 실었고 언론과 국민이 궁금한 사항에 대해선 본인이 미리 손글씨로 준비한 자료를 활용하는 등 꼼꼼한 면면을 지켜봤다.
어쩌면 연락공보담당의 역할이 바로 문희준 서장의 모습이지 않을까.
31일간의 재난 현장을 통해 이제는 개인의 자질보다는 그 역할에 충실할 수 있는 언론브리핑 방법론에 집중하게 됐다.
브리핑 시간과 언어적ㆍ비언어적 태도, 방송시스템, 질의응답, 언론의 요구사항 등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경험한 내용을 정리했고 2023년 하반기 호남권역 소방경을 대상으로 재난 현장 언론브리핑 과정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
“쉽게 지나쳤던 내용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봤습니다. 소방서로 복귀하면 직원들에게 내용 공유하겠습니다. 좋은 강의였습니다”
“이 강의는 진짜 모든 간부 소방관이 한 번쯤 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첫 강의가 부족했겠지만 조용히 찾아와 인사를 건넨 선배 소방관의 애정 어린 말씀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불러주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산 넘어 강원부터 바다 건너 제주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소방학교와 교육대를 오갔다. 강의비가 있건 없건 말이다.
그간 소방홍보 또는 언론브리핑 과정의 큰 축은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아나운서 또는 리포터 출신 스피치 강사들의 발성과 발음, 그리고 비언어적 자세에 대한 커리큘럼이다.
꼭 필요한 강의지만 단시간에 소방관을 아나운서로 만들 수는 없지 않은가. 또 기자 출신 강사들의 커리큘럼은 언론사 입장으로 기울어진 강의가 많을 수밖에 없다.
결국 표준작전절차(SOP) 등의 이해와 함께 조직의 위상과 언론, 그리고 국민이 원하는 방법으로의 브리핑을 실현하기 위해선 내부적인 시각에서 실제 현장을 바라보고 경험한 강사가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변화가 소방학교와 교육대 등에서 인지되고 있음을 느낀다.
재난이 발생하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출동하는 소방관처럼 언론브리핑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 없이 브리핑 현장으로 출동하겠다는 다짐을 다시 한번 이 글을 통해 각인시켜본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6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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