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출동! 구조출동! 아파트 발코니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신고”
봄을 지나 선명한 여름 날씨로 변해가는 2022년 6월의 어느 날이었다. 아파트 난간에 사람이 매달려 있다는 출동지령이 서부소방서를 뒤흔들었다. 구조차는 물론이고 고가사다리차와 지휘차, 구급차, 펌프차까지…. 저마다의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고 문을 박차고 현장으로 출동했다.
구조대 박성관 소방관은 지령서를 확인할 틈도 없이 서둘러 구조차에 몸을 싣고 하강을 위한 벨트 착용에 여념이 없었다. 출발한 구조차는 좌우로 몇 번 움직이더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멈춰 섰다.
“팀장님, 차가 많이 막히네요. 현장까지 얼마나 남았어요? 빨리 가야 할 텐데요” “무슨 소리야. 현장 도착했어. 장비 챙겨서 내리자!”
그도 그럴 것이 사고 발생 장소는 서부소방서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있던 아파트였다. 지령서에 나와 있던 위치를 확인할 틈도 없었던 박 소방관은 오로지 빠르게 구조할 생각에 사고 위치가 소방서 바로 앞이란 걸 전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장비를 둘러메고 고개를 들어 14층 현장을 바라보니 난간에 매달린 여성의 손목을 누군가가 붙잡고 있는 게 보였다.
‘다행이네. 조금만 버텨주세요’
박성관 소방관은 혼잣말을 하며 내부로 이동했지만 다급한 마음과는 다르게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공동현관문은 굳게 닫혀 한참 동안 열리지 않았고 층마다 멈춰 더디게 내려오는 엘리베이터에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성관이랑 막내는 15층으로 올라가서 하강 준비하고 나랑 나머지는 14층에서 내부로 진입하자”
박 소방관은 여성이 매달려 있던 14층 바로 위층인 15층으로 이동해 로프를 타고 하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15층은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결국 한 층을 더 올라 16층으로 이동한 뒤에야 14층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그렇게 14층에서 마주한 여성에게 다가갔다.
“119구조대입니다. 이제 안심하세요”
박 소방관은 현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가장 안전한 구조 방법을 머릿속에 그렸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쉬운 방법… 바로 아래층인 13층 창문만 열려 있다면…’
매달린 여성을 뒤에서 흥분하지 않도록 안심시키는 한편, 사고 장소 바로 아래층인 13층 창문을 살짝 밀어 봤다. “드르륵”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렸다. 박 소방관은 여성을 안전하게 창문을 통해 내부로 이동시킨 뒤 무사히 구조를 마쳤다.
“죄송해요. 저 때문에…”
구조를 마친 뒤 14층에 매달린 여성이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아닙니다. 괜찮으세요? 구급대원이 올라오고 있으니까 걱정 마세요”
박 소방관을 잡아주던 벨트와 로프를 풀자 긴장된 마음도 함께 풀렸는지 들리지 않던 심장 소리가 더 크고 빠르게 들렸다.
사무실에 도착해 사고 경위가 정리된 보고서와 촬영된 영상을 통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었다. 술을 마신 뒤 부부싸움으로 번져 발코니 밖으로 뛰어내리다가 난간에 매달린 상황이었다는 것과 아무도 없는 줄만 알았던 15층 창문에 사람의 움직임이 보였다는 것이었다.
박성관 소방관은 이내 씁쓸한 미소와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세상이 너무 각박하네. 각박해’
<광주 서부소방서 박성관 소방장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광주 남부소방서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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