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니 자주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 모르겠다. 소방관은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던 일들을 경험하곤 한다. 그날도 그랬다.
“119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그러니깐… 아파트 창문에 사람이 있어요. 사람이 매달려 있다고요”
“침착하시고, 차분하게 말씀해 주세요. 위치가 어디예요? 몇 층에 매달려 있죠?”
“하나 둘 셋 넷… 제가 세어보니까 아파트 10층에 사람이 매달려 있어요. 어른은 아닌 것 같고 체구가 작은 게 초등학생처럼 보여요”
“알겠습니다. 전화 끊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코끝 가득 향긋한 내음이 퍼지던 2016년 어느 봄날, 광주의 한 아파트를 지나던 시민의 신고가 119상황실에 접수됐다. 119상황실에선 관할 안전센터 펌프차와 구급차, 그리고 구조대를 현장으로 출동시킨다.
“팔에 힘이 빠지면 금방 추락할 거야. 구조대보다 우리가 먼저 도착하니까 일단 1층에서 2명은 매트리스를 펼치고 나머지 2명은 10층으로 올라가자”
출동 지령을 받은 탁양언 소방관은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대원들에게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것을 당부했다. 탁 소방관은 도착하자마자 10층으로 올라갔다. 현관문을 파괴하고 내부로 진입하기 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걸까? 현관문이 열리고 중년의 남성이 황당한 표정으로 탁 소방관을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대체 소방관들이 여긴 무슨 일로? 어디 불이라도 났어요?”
“아버님, 지금 창문밖에 아이가 매달려 있는데 모르셨어요?”
“네? 뭐라고요? 누…누가? 누가? 어디에 매달려 있다고요?”
“아버님! 진정하시고 지금 급하니까 방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중년의 남성은 창문 밖에 매달려 있는 아이의 아빠로 탁 소방관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이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방 창가에 아이가 매달려 있고 아빠는 거실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랫집 난간에 발을 밟고 버티고 있으니까 지금 위치보단 아랫집으로 들어가서 구조하는 게 더 낫겠습니다. 지상에 있는 대원들 아랫집으로 진입하세요”
탁 소방관의 무전을 듣고 119구조대가 아랫집인 9층으로 향했지만 9층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현재, 구조대 9층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없는 것 같아서 현관문 파괴 후 진입하겠음”
119구조대는 아래층 현관문을 강제로 개방한 뒤 내부로 진입해 무사히 아이를 구조했다. 이 모든 상황에 놀람과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아빠를 진정시키는 역할까지 탁 소방관의 몫이었다. 잠시 뒤 탁 소방관은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다가가 물었다.
“어디 아픈데 없지?”
“네... 괜찮아요”
“왜 밖에 매달려 있었던 거야? 아빠도, 그리고 밖에 있던 아줌마, 아저씨들도 많이 놀랐잖아”
“아니... 그게 형이랑 번갈아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로 했는데 형이 폰을 안 주니까 겁주려고 난간에 올라갔는데 저도 모르게 미끄러져서 그렇게 된 거예요”
탁 소방관은 아이의 답변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랐다. 인명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상황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소방차에 올라 복귀하는 길, 탁양언 소방관은 동료 대원에게 물었다.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바로 스마트폰이야. 안 그래? 무섭다, 무서워”
<광주소방학교 탁양언 소방위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광주소방학교_ 이태영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4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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