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가스폭발로 인한 붕괴현장에서 살신성인으로 인명구조를 위해 주검을 무릅쓰고 뛰어든 서병길 소방장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없지만 그의 숭고한 희생정신은 남아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안타까움으로 적시고 있다.
그는 건물 2층에 남아 있던 할머니를 안전하게 구조해낸 뒤 대원들을 건물입구에 대기시키고 미처 나오지 못한 주민들이 더 있을 것으로 판단해 혼자 내부를 살피던 중 갑자기 건물 전체가 무너지면서 매몰되어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특히 故 서병길 소방장은 정년퇴직을 한 달여 남겨놓고 있었지만 각종 재난 현장에서 대원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며 항상 먼저 앞장서 왔던 그였기에 이번 주택붕괴 사고현장도 직접 출동한 것이어서 동료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이날 한 동료직원은 정년이 코앞인데 몸사려가며 일하시라고 말했지만 서병길 소방장은 사고난 줄 알면서 소방관이 출동하지 않으면 누가 가느냐며 만류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펌프차에 맨 먼저 올라탔다고 한다. 故 서병길 소방장은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2살 때 피란을 내려와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지난 1973년 부산소방악대 요원으로 소방공무원 발령을 받았다가 80년 소방악대가 해체되면서 소방관의 길을 도중하차했다. 이후 90년 특별채용의 길이 열려 다시 소방에 복귀하였고 특별채용 이후엔 주로 화재 진압요원과 구급대원으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해왔고 주위로부터 모범된 소방공무원으로 통했다. 한편 소방방재청은 故 서병길 소방장에게 1계급 특진과 함께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으며 지난 17일에는 부산 금정소방서에서 영결식이 엄수됐다.
永訣辭
형님이 돌아가신 다음날 사오차 마을에서 우리 파출소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통·반장 화재예방교육을 한다고해 동진 경로당에 사람들이 다 모였는데 서병길 부소장님이 왜 오시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그랬습니다. 형님은 항상 부산 금정구 서동 사오차 마을을 걱정하셨죠. 길이 좁고 건물이 낡아 불이 나면 큰일이라고. 그리고 결국 형님은 그렇게도 걱정하던 사오차 마을에 불 끄러 출동했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로 떠나셨군요.
“탈출해. 탈출해.” 형님 마지막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건물이 무너지던 순간 형님은 함께 인명구조작업을 하던 후배들에게 소리치셨습니다. 하지만 형님만 탈출하지 못하셨습니다. 만약 형님이 없었다면 제가 제일 앞장서서 들어갔을테고, 만약 형님이 없었다면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깔렸을 사람은 바로 저였을 것입니다.
서병길 부소장님. 지금이라도 웃음 띤 모습으로 힘차게 달려올 것만 같은데, 목 놓아 불러도 왜 대답이 없으십니까? 수없이 많은 날들을 화마와 싸워 이겨야 하는 긴장 속에서도 미소와 사랑과 용기를 잃지 않으시던 부소장님이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먼 곳 사람이 되셨다니 너무도 애석합니다.
항상 스포츠형 짧은 머리에, 후배들 위해 파출소 옥상에서 트럼펫으로 나훈아의 노래를 멋들어지게 연주해주시던 형님. “대포 한잔 하자”고 해 따라가면 항상 막걸리뿐이었죠. 형님은 그러셨습니다. “어릴 때 이북에서 업혀 내려와 친척이라고는 한명도 없지만, 그래도 즐겁고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았다”고.
그런 형님께 저희들은 현장에 그만 나가고 쉬시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출동할 때면 펌프카에 제일 먼저 오르는 사람은 항상 형님이셨습니다. 장비 정리조차 후배들에게 맡기는 일이 없으셨죠.
“퇴직하면 실컷 쉴 텐데 지금부터 벌써 뭐하러 쉬겠느냐”고 하셨습니다. 퇴직하면 외국여행 가려고 얼마 전 여권을 만들었다고 자랑하셨죠. 만년에는 채소 키우며 살 거라고 양산시 물금에 50평쯤 되는 밭도 장만하셨다고 했죠. 많아야 열 번만 더 출근하면 퇴직하실 텐데, 그걸 넘기지 못하다니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하늘나라 가는 데 여권이 필요했던 것입니까? 태산마저도 녹일 것 같은 울분과 슬픔이 치밀어 오릅니다. 어느 누가 있어 부소장님만한 용기가 있고, 어느 누가 있어 당신만한 깊은 사랑이 있겠습니까. 인고의 세월, 정년을 1개월 남겨둔 채 자신을 불태워버린 서병길 부소장님 이름을 다시 한 번 목 놓아 불러봅니다.
온갖 화재·재난 현장에서 새까맣게 얼룩져도 후배들에게 환한 웃음 던져주시며, 지친 몸을 한 이불 속에서 녹이며 보내던 시간들이 즐겁기만 했는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에 누구보다 자랑스럽고 보람스럽다 하시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신 부소장님이 가시다니. 아직도 이 세상 많은 곳에서 부소장님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우리가 함께 지켜나가야 할 날들이 많기만 한데….
부소장님은 그렇게 가셨지만 이제 형님이 못다 한 일은 남아있는 저희 후배들이 하겠습니다. 형님 뒤를 기꺼이 따르겠습니다. 모든 설움 다 잊으시고 못다 핀 불꽃같은 삶, 형님 보금자리 저 하늘나라에서 영원히 활짝 피우소서!
지난달 16일 소방방재청 국감현장에서 심재덕 국회의원이 낭독한 ‘ 소방관의 기도’가 바로 이 노래 가사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무거웠던 국감장을 잠시 숙연하게 했던 그 순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늘 소중한 생명 하나라도 더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는 그들만의 알 수 없는 그 무엇에 신비스러움까지 느껴지는 것은 왠일일까?
소방방재청장으로서 누구보다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입장에서 ‘제44주년 소방의 날’을 맞아 무엇인가 그들을 위해하고 싶은 소박한 바램에서 시 한편을 써서 바치기로 했다. 소방관들은 화재진압과 구조·구급 현장의 절박함에서 단지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행복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무한헌신의 국민안전수호자로서 묵묵히 자기의 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존경받아야 할 소리없는 영웅들이다.
진심으로 그들의 숭고한 생명존중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위로하는 한편의 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전국의 3만 소방가족들에게 이 시를 바친다. 소리없는 영웅들 2006. 11. 9. 소방의 날 소방가족에 바치는 헌시 -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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