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형 화재 사고에선 언제나 소방 예방행정의 부실이 드러난다. 화재안전조사를 나갔지만 위험을 알아채지 못했다거나 민간에서 이뤄지는 소방시설 자체점검이 부실했다는 내용 등은 어느새 사고 뒤 흘러나오는 당연한 소식이 됐다.
올해 일어난 두 건의 대형 화재도 마찬가지다. 지난 8월 22일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와 관련한 경찰 조사에선 객실에 설치된 간이완강기가 층수와 길이가 맞지 않은 채로 방치됐고 어떤 객실에는 아예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 전기차 사고 역시 소방시설의 불량 방치 문제가 뒤늦게 드러나며 후퇴한 예방행정의 사각지대를 여실히 노출했다.
10월 10일 열린 소방청 국정감사에선 소방시설 자체점검 이후 현장을 나가지 않은 채 모든 대상물의 불량 소방시설 수리를 확인해주는 소방 행정까지 지적됐다.
소방 예방행정은 화재 시 그 피해를 줄이기 위한 필수 분야다. 소방 관련 법이 정한 의무를 지키고 이를 유지해 법 취지에 상응하도록 안전성을 지키는 데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소방용품의 품질관리와 소방 대상물의 인허가, 소방시설업에 대한 관리ㆍ감독은 물론 특정 소방 대상물의 허가동의 이후 성능 유지를 위한 소방시설 관리 등을 아우르는 예방행정. 화재 시 필수 설치되는 소방시설의 총체적인 안정성을 좌우하는 마스터키라는 사실은 틀림이 없다.
하지만 현실에선 여기저기서 문제가 부상한다. 소방 조직 내에선 기피 보직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잘해도, 못해도 욕먹는 보직, 피곤하기만 한 자리”라는 인식이 꾸준히 쌓인 결과다. 이어지는 대민 업무에 더해 자칫 오류나 실수라도 생기면 악성 민원은 물론 자신의 공무원 신분에도 타격을 입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래서일까. 2012년 소방 대상물을 전수 검사하고 관리하던 소방검사 제도가 소방특별조사로 바뀌었다. 최근엔 화재 안전조사로 변경되며 소방 대상물에 대한 직접적인 대면식 관리와 감독 체계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대민과 맞닿는 거리를 최대한 이격해야만 민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회피성 행정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좀 더 들여다보면 소방 대상물과 맞닿는 부분이 많을수록 사고 시 자신들의 책임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더욱 소극적인 체계로 변해가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더 큰 문제는 민간 영역과의 부조화다. 소방 대상물의 건전성은 기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소방공무원의 기술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여기엔 전문성 축적을 제한하는 순환식 공무원 보직 체계와 계급 그리고 기피 영역 직무라는 현실이 깔려 있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쳐 민간 영역의 기술자를 양성하고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온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관련 기술자와 산업 영역에 건전한 생태계를 만들고 이들이 법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행정을 펼치고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라진 소방검사의 공백을 소방시설관리업체가 메우고 소방의 인허가 중 가장 핵심 단계인 소방공사감리 결과를 보고서로 갈음하는 지금의 소방 예방행정 체계. 과연 잘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가.
결국 국가의 책무라는 틀 속에서 만들어진 대행적 성격의 기술 산업 생태계를 소방 스스로 잘 지키고 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소방 예방행정은 민간과의 조화와 협력이 없다면 소방안전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 ‘소방법’에서 민간의 산업 영역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이들을 감시 대상자로만 봐서도 안 된다. 기술 영역이 온전하게 돌아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예방행정을 바로 세우기 위해선 소방 조직 내 예방 직무 자체의 전문성뿐 아니라 구성원들의 직무 선호도를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 나아가 민간 영역과 유기적 협력이 가능한 환경도 조성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소방 예방행정의 기틀과 개념을 바로 세워야 한다.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11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플러스 칼럼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