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교통사고 현장에서 가장 자주 듣는 말 중 하나가 있다.
“길이 얼어 있는 줄 몰랐다”는 말이다.
눈도, 비도 보이지 않았던 도로에서 차량은 한순간에 제어력을 잃고 사고는 연쇄적으로 번진다. 이때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블랙 아이스(Black Ice)’다.
블랙 아이스는 도로 위에 얇게 형성된 투명한 얼음층이다. 아스팔트 색이 그대로 비쳐 보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육안으로 인지하기 어렵고 제동을 시도하는 순간 이미 늦는 경우가 많다. 겨울철 교통사고가 유독 참혹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1월 경기 고양시 자유로와 서울문산고속도로 일대에서는 출근 시간대에 100대가 넘는 차량이 연쇄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밤사이 내린 눈과 낮은 기온으로 도로 표면에 블랙 아이스가 형성된 것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 사고로 수십 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고 도로는 장시간 통제됐다.
지난 2024년 11월에도 강원 원주시 국도에서 50여 대의 차량이 연속적으로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에도 가을비와 눈이 내린 뒤 급격히 기온이 떨어지며 도로가 얼어붙은 상황이었다. 사고 당시 운전자 대부분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도로로 보였다”고 진술했다.
이 두 사고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운전자가 위험을 인식했을 때는 이미 차량 제어가 어려운 상태였다는 점이다.
블랙 아이스가 위험한 이유는 단순히 미끄럽기 때문이 아니다. 첫째 인지 자체가 어렵다. 눈길처럼 경계할 시간이 없다.
둘째 발생 위치가 일정하다. 교량 위, 터널 출입구, 그늘진 커브 구간, 하천 인접 도로처럼 냉기가 머무는 곳에서 반복된다.
셋째 연쇄 사고로 이어지기 쉽다. 선두 차량이 미끄러지는 순간, 뒤따르던 차량들이 피할 여유 없이 충돌하게 된다.
이 때문에 블랙 아이스 사고는 단독 사고보다 다중 추돌 사고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고, 구조·구급 현장에서는 대응 난도가 급격히 올라간다.
블랙 아이스로 인한 교통사고 현장은 구조대원에게도 위험한 공간이다. 사고 지점 자체가 여전히 미끄러운 상태이기 때문에 2ㆍ3차 사고 가능성이 상존한다. 실제로 구조 활동 중 추가 충돌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장에서는 신속한 도로 통제, 사고 차량 간 거리 확보, 구조대원 안전 확보가 무엇보다 우선된다.
한 명의 생명을 구하는 일과 동시에 더 이상의 피해를 막는 조치가 병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블랙 아이스는 완전히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 첫째 기온이 영상이라도 방심하지 말아야 한다. 밤사이 기온이 떨어졌다면 아침 도로는 이미 얼어 있을 수 있다.
둘째 속도는 줄이고 거리는 늘려야 한다. 평소보다 한 박자 느린 운전이 연쇄 사고를 막는다. 셋째 급제동과 급조향은 금물이다. 미끄러짐을 느낄 경우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조작하고 핸들 조향을 최소화해야 한다.
넷째 겨울용 타이어는 선택이 아니라 대비다. 제동력 차이는 위기 순간에 분명한 차이를 만든다.
블랙 아이스는 눈처럼 경고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 그러나 사고 사례가 반복해서 말해주듯, 작은 대비가 큰 참사를 막는다.
겨울철 도로 위 안전은 개인의 운전 습관에서 시작되지만 그 결과는 사회 전체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출근길에 10분 늦어지는 것보다 사고 현장에서 몇 시간을 멈춰 서는 대가는 훨씬 크다.
보이지 않는 얼음 위에서도 지켜야 할 원칙은 분명하다. 속도를 낮추고, 거리를 확보하는 것. 그 단순한 선택이 겨울 도로 위에서 생명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대응이다.
계양소방서 작전119안전센터 소방위 김동석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