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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기고] 키 큰 양귀비를 자르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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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기사입력 2026/04/22 [18:42]

[전문가 기고] 키 큰 양귀비를 자르지 말라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입력 : 2026/04/22 [18:42]

▲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FPN

 

한국 사회에는 묘한 규칙이 하나 있다. 너무 튀지 말라는 것이다. 성공해도 조용히 성공해야 하고 성과를 내도 과하게 드러내지 않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어느 정도의 성취는 용납되지만 일정 수준을 넘는 순간 분위기는 급격히 전환된다. 질문이 시작된다. 정말 실력인가. 운이 작용한 것 아닌가. 누군가 뒤에 있었던 것은 아닌가. 성과를 설명하는 방식이 축하에서 검증으로 인정에서 의심으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키 큰 양귀비 증후군(Tall Poppy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양귀비밭에서 유난히 크게 자란 꽃을 잘라버리는 것처럼 집단이 두드러진 개인을 끌어내리려는 사회적 심리다. 

 

고대 로마의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Lucius Tarquinius) 기록에서 유래한 이 개념은 오늘날 조직과 사회가 성공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설명하는 핵심 프레임이 됐다.

 

그러나 이 현상을 단순히 질투나 공평성 선호로 설명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거다. 한국 사회에서 뛰어난 개인이 불편하게 인식되는 이유는 훨씬 구조적이다. 핵심은 ‘공평성’이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불신’ 그리고 그 위에 형성된 집단의 안정 유지 메커니즘이다.

 

한국 사회에서 공평성은 기회의 평등이라기보다 결과의 격차를 억제하려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강하다. 일정 수준까지의 성취는 노력의 결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 임계점을 넘는 순간 성취는 불균형으로 해석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평가 기준이 바뀐다는 점이다. 능력 중심의 평가가 관계와 배경에 대한 의심으로 전환된다. 뛰어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뛰어남이 정당하게 형성됐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이 불신 구조는 조직 내에서 더 강하게 작동한다. 뛰어난 개인은 단순한 고성과자가 아니라 ‘조직의 균형을 흔드는 변수’로 인식된다. 한 사람의 성과는 기준을 끌어올리고 비교를 유발하며 다른 구성원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조직은 본능적으로 이를 조정하려 한다. 빠른 사람에게는 속도 조절을 요구하고 높은 기준은 현실화라는 이름으로 낮춘다. 표면적으로는 조화를 위한 선택이지만 실제로는 집단 리스크를 관리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의사결정의 방향이 바뀐다. 사람들은 성과를 만드는 선택보다 비난을 피하는 선택을 한다. 도전은 줄어들고 관리가 늘어난다. 새로운 시도는 리스크로 분류되고 기존 방식의 유지가 합리적 전략이 된다. 조직은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그 안정은 정체와 교환된 결과다.

 

이러한 구조는 특정한 사회적 조건과 결합될 때 더욱 강화된다. 평등이 성취의 차이까지 억제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때 사회는 격차 자체를 문제로 인식한다.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낮을수록 성공은 능력보다 배경의 산물로 해석되며 사회적 이동성이 낮다고 인식될수록 타인의 성공은 기회가 아니라 경쟁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 사회와 같이 관계 중심의 문화에서는 무엇을 했는가보다 누가 했는가가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된다.

 

이 네 가지 조건이 결합하면 사회는 자연스럽게 두드러진 개인을 경계하게 된다. 성공은 축하의 대상이 아니라 검증과 조정의 대상이 된다. 뛰어난 성취는 존경이 아니라 불편함을 유발하는 사건이 된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왜 한국에서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인물이 나오기 어려운가. 이 질문의 답도 동일한 구조 안에 있다.

 

머스크와 같은 인물은 단순히 기술을 잘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기존 질서를 깨고 과도한 목표를 설정하며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기준을 끌어올리는 존재다. 다시 말해 조직과 사회의 평균을 의도적으로 붕괴시키는 사람이다.

 

한국 사회와 조직은 이러한 사람을 견디지 못한다. 조직은 평균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설계돼 실패는 학습이 아닌 위험으로 기록되고 과도한 목표는 무리한 시도로 평가된다. 

 

튀는 선택은 혁신이 아니라 조직 안정성을 해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런 구조에서는 머스크형 인재가 나오기 어렵다. 성장 이전에 조정되거나 스스로 속도를 낮추거나 결국 그 시스템을 떠나게 된다.

 

결국 문제는 인재의 부재가 아니다. 조직의 문제는 뛰어난 인재를 견디지 못하는 구조다. 모든 혁신은 처음에는 기존 질서를 벗어난 ‘비정상’으로 시작된다. 

 

새로운 기술도, 새로운 전략도, 새로운 사업도 처음에는 조직의 평균에서 벗어난 선택이다. 다시 말해 모든 혁신은 처음에는 키 큰 양귀비다.

 

따라서 남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왜 뛰어난 사람을 불편해하는가가 아니라 왜 뛰어난 사람이 ‘안전하지 않은 존재’로 인식되는가이다. 

 

그리고 그다음 질문은 더 중요하다. 우리 사회와 조직은 키 큰 양귀비를 잘라내는 시스템인가 아니면 그 양귀비가 더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설계하는 시스템인가 그 선택이 결국 조직의 혁신밀도와 미래의 방향을 결정한다.

 

김훈 리스크랩 연구소장(공학박사/기술사)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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