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4년 4개월이나?”… 중ㆍ소병원 소방시설 소급 기간 연장 논란

소급 유예기간 4개월 남기고 2026년까지 연장 법 입법 예고
“코로나19로 불가피하다”는 정부… “대형 참사 또 빚을라”
유예 법 개정 추진되자 공사 중단하고 설치 미루는 병원들
“유예조치 지나치게 길어, 화재 나면 피해는 결국 환자 몫”

박준호 기자 | 기사입력 2022/05/10 [12:33]

“4년 4개월이나?”… 중ㆍ소병원 소방시설 소급 기간 연장 논란

소급 유예기간 4개월 남기고 2026년까지 연장 법 입법 예고
“코로나19로 불가피하다”는 정부… “대형 참사 또 빚을라”
유예 법 개정 추진되자 공사 중단하고 설치 미루는 병원들
“유예조치 지나치게 길어, 화재 나면 피해는 결국 환자 몫”

박준호 기자 | 입력 : 2022/05/10 [12:33]

▲ 2018년 1월 불이 나 39명이 숨지고 153명이 다친 밀양세종병원 내부 모습. 당시 이 건물엔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 FPN


[FPN 박준호 기자] = 중ㆍ소병원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소급 설치 의무를 연장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의무 설치 시기가 기존보다 무려 4년 4개월이나 늘어나기 때문이다. 정부는 코로나19 상황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하지만 이로 인해 밀양세종병원과 같은 참사가 재발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2018년 1월 39명이 숨지고 153명이 다친 밀양세종병원 화재. 이후 정부는 바닥면적 합계가 600㎡ 이상인 병원급 의료기관(종합병원, 병원, 치과병원, 한방병원 등)은 스프링클러설비, 600㎡ 미만인 병원급과 입원실을 갖춘 의원급 의료기관(의원, 치과의원, 한의원)은 간이스프링클러설비와 자동화재속보설비를 오는 8월까지 소급 설치토록 관련 법을 강화했다.


그러나 설치 기한을 불과 4개월 앞둔 지난 4월 소방청은 2026년 12월 31일까지로 법 적용을 유예하는 내용의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연장 이유는 코로나19다.


지난 3월 회의를 한 소방청은 “국가적 재난 상황임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설치기간을 연장하는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소방청은 관련 기관들의 지속적인 유예 요구에 총 두 차례 회의를 진행했던 것으로 <FPN/소방방재신문>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해 12월 14일 열린 회의에는 보건복지부와 국방부, 대한병원협회, 대한의사협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방부는 “국군수도병원 등에서 코로나19 확진자를 치료 중이라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다”며 “법정 설치 기한 연장을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병원협회와 대한의사협회도 코로나19로 인해 ▲병원 경영 악화 ▲감염 우려로 공사 지연 ▲공사 시 대체병상 확보 어려움 ▲환자 감염 확산 방지 등의 이유로 설치기간을 유예해 달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유예 소식에 하던 공사까지 멈춰
정부의 소방시설 설치기간 연장 방침이 나오자 병ㆍ의원들의 움직임이 심상치가 않다. 진행하던 공사를 멈추는가 하면 정부 지원금이 투입되는 병원들조차 뒷걸음을 치고 있다.


지난 2월 28일 간이스프링클러설비 착공신고를 한 전북의 한 병원은 4월 15일 공사를 취소한 것으로 확인된다. 사유는 ‘발주자 예산 부족’을 들고 있지만 공교롭게도 착공 취소일은  소방청이 유예 조치 법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다음 날이었다.


스프링클러설비 공사 계약의 취소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A 소방공사업체 관계자는 “올해 중 스프링클러 설치 계약을 한 곳이 더러 있지만 유예기간 연장 소식에 병원으로부터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 당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정부가 소방시설 설치비를 지원하는 곳조차 공사를 미루는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올해 설치 지원을 받기로 한 병원에서 공사를 연기한다고 전해왔다”며 “50개소를 지원하고 있지만 대상을 선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고 설명했다.


소방청에 따르면 소방시설 소급 설치를 완료한 중ㆍ소병원은 전체 대상 2413개소 중 35%인 853개소에 불과하다. 정부가 소방시설 강화 법규를 만든 지 4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결과적으론 절반도 바뀌지 않은 셈이다.

 

소급 설치 연장 이유… 결국 돈?
병ㆍ의원계는 소방시설 소급 설치 연장 필요성으로 코로나19 펜데믹을 꼽는다. 그러나 ‘결국 돈 때문이 아니냐’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중ㆍ소병원의 소방시설 소급 설치 관련법은 2019년 8월 6일 시행됐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이었지만 병ㆍ의원계는 당시부터 거세게 반발했다. 설치비 부담 때문이었다.


당시 병ㆍ의원계는 “정부가 일부 지원해준다면 따를 것”, “5년 이상의 유예기간과 재정지원 시 법규 강화 찬성”, “정부의 추후 보전 약속 시 설치” 등의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지난해와 올해 각각 예산 8억7천만원을 편성해 농ㆍ어촌 지역이나 중ㆍ소도시에 위치한 병원 50개소에 설치비용 일부(국비 30, 지방비 30, 자부담 40%)를 지원했거나 할 예정이다.


2014년 전남 장성 효사랑 요양병원 화재 후 같은 규제를 적용받은 요양병원의 경우 정부 지원 없이 모두 자비로 소방시설을 소급 설치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런데도 병ㆍ의원계는 지속해서 설치비용 지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가 입법 예고 전 각 병원에 보낸 공문에 따르면 연장 사유에 ‘코로나19 이후 정상진료 회복 기간 및 소급 예산지원 확대 등을 고려’라는 문구가 명시돼 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한 병원이 많다”며 “최근 원자재 가격이 오르는 등 많이 힘든 상황이라 재정지원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코로나19 특수성 이해는 되지만… 사고 우려도
소방시설 소급 설치기간 연장을 두고 소방 분야 전문가들은 병ㆍ의원계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한다. 자칫 연장 시기에 큰 화재라도 나면 결국 피해는 병원을 이용하는 국민이 떠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재성 숭실사이버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한 건 2년인데 2026년까지면 유예기간이 거의 두 배가량 늘어나는 셈”이라며 “병원의 여러 어려움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연장 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중ㆍ소병원이 코로나전담병원으로 지정됐거나 경영이 악화한 건 아닐 것”이라며 “공사를 정말 물리적으로 할 수 없는 곳만 선별적으로 유예하고 아닌 곳은 빠르게 설치할 수 있도록 독려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급 적용 법안이 시행된 건 그만큼 사안이 중요하고 시급했기 때문”이라며 “코로나19로 인한 병원의 어려움은 있지만 유예기간은 최소한으로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설치 연장에 따른 중ㆍ소병원의 참사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성한 한국소방기술사회 부회장은 “설치유예로 밀양세종병원과 같은 참사가 또다시 발생한다면 결국 피해는 환자가 짊어지게 될 것”이라며 “법 시행 당시 유예기간을 3년이나 줬기 때문에 연장되더라도 코로나19 창궐 기간인 2년 정도만 주는 게 합리적이지 않겠나”고 했다.

 

박준호 기자 parkjh@fpn119.co.kr

[기획]
[기획] 24년 소방시설 점검 외길… 최고로 거듭난 (주)유일이엔지
1/6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