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 나중에 어떠한 보직에 있더라도 처음엔 화재의 성상이나 역학에 대한 기본 이론 지식을 쌓는다. 물론 개인이 현재 맡은 업무가 진압이나 구조대원이 아닌 구급대원, 행정직이라면 초창기 배운 화재 성상 이론들이 점점 희미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린 현장으로 돌아가야 하는 순간이 오면 초심자의 자세로 변해가는 화재 성상에 대해 학습하고 연구해야 한다. 화재 성상은 IT나 현대사회 흐름처럼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화하진 않는다. 그래도 분명한 건 시간이 지날수록 화재 성상도 변화한다는 사실이다.
‘가ㆍ산ㆍ점’. 소방관이라면 들어봤을 말이다. 연소가 이뤄지기 위한 3요소로 가연물과 산소, 점화원을 뜻한다. 여기에 연쇄반응까지 합쳐지면 연소의 4요소라고 불린다. 가장 기본적이며 연소이론의 핵심이 된다.
단지 이론적으로만 이해하고 직접 현장에서 화재를 맞닥뜨렸을 때의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신기할 정도로 다양한 조건에서 연소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 기본은 가ㆍ산ㆍ점에 있다.
일상생활에서도 자연스럽게 연소 현상을 볼 수 있다. 주방에서 쓰는 가스레인지, 캠핑하면 생각나는 모닥불, 식당에서 맛있는 고기를 먹을 때 사용하는 숯 등 다양한 모습으로 불이 사용되는 걸 접한다.
이 중 이번 호에서 논할 내용은 ‘훈소 화재’다. ‘훈소 화재’는 어떤 화재인지, 어떻게 연소가 지속되는지 알아보자. 사실 훈소 화재에 대해 이해하려면 작열 연소와 표면 연소의 개념도 같이 아는 게 좋다. 하지만 너무 내용이 방대해지므로 이번 호에선 훈소 화재만 다루겠다.
아마 ‘훈소’라는 단어를 모르는 소방관은 없지 싶다. 하지만 훈소 화재를 설명해 보라고 하면 시원하게 정의하지 못할 것이다. 대부분 훈소 화재를 머릿속에 이미지로 저장해 놔서 대략 뭔지는 알 테지만 설명하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훈소를 한자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이번엔 훈소 화재에 대한 국내ㆍ외 정의를 살펴보자.
이처럼 훈소 화재 정의 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은 ‘불꽃 없이’다. 각종 미디어 자료에서 훈소 화재를 검색해 보면 시각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인 화재 성상은 가연물에 불이 붙으면 눈에 보이는 화염을 일으키고 열전도 과정을 통해 연소확대가 이뤄진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화재’라는 단어를 들으면 불꽃이나 화염의 이미지를 인식하곤 한다. 하지만 훈소 화재는 화염이 없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화염은 없는데 연소는 계속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화재 성상을 모르는 일반인이 들었을 땐 약간 모순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화재라고 하면 불꽃과 연기가 당연한데 불꽃은 없고 연기만 생성된다고 하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화재 성상을 공부했다면 훈소 과정이 너무나도 신기한 현상임을 알게 된다. 훈소는 산화 과정이라는 연소 정의의 범위를 포함하면 연소 화재 성상이 하루나 이틀이 아닌 며칠까지도 진행될 수 있어서다.
그러면 훈소 화재의 점화원은 화염이 없고 산소가 부족한 상황에서 어떻게 미약하게나마 열을 계속 유지하게 되는 걸까? 그리고 왜 화염 연소는 일어나지 않을까? 평소 머릿속에 이미지로 명확하게 인식되는 화재 성상과는 달리 어딘가 명확하지 않은 의문점들이 자리한다.
우리가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담배를 생각해보자. 혹시 담배가 연소하는 과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왜 담배는 라이터나 성냥으로 불을 붙였을 때 화염 연소가 일어나지 않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할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연물과 산소, 점화원 관점에서 보면 담배라는 가연물과 라이터라는 점화원, 외부엔 산소가 있다. 그런데 왜 화염 연소가 일어나지 않을까?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다가 담배를 피우는 동료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중 문득 궁금해졌다.
담배는 크게 담뱃잎(연소부)과 종이(래핑), 필터로 구성된다. 담뱃잎(심지)은 고체 연료(셀룰로스 기반)다. 여기까지 보면 담배는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종이, 나무, 소파 같은 고체 연료의 한가지일 뿐이다.
물론 나무는 나중에 숯이 되면 훈소 화재 형식으로 연소하긴 한다. 그러나 고체 가연물이라면 대부분 화염 연소가 이뤄지는데 담배는 왜 아닐까?
이유는 몇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로 연소 과정에서 휘발성 연소 가스(VOCs)가 많이 발생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체 가연물에 화염 연소가 일어날 확률이 높은 점화원을 가하면 쉽게 말해 불이 붙기 시작한다.
이때 가연물 자체에 불이 붙는 게 아니라 가연물이 열분해 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가연성 기체에 불이 붙는다. 하지만 담배는 가연성이 높은 휘발성 가스가 많이 생성되지 않아 화염 연소가 이뤄지지 않는다.
두 번째로 담배회사들은 연소속도를 조절하고자 질산칼륨(KNO3) 같은 첨가제를 추가해 훈소를 유지하도록 설계한다. 담배는 일반 종이와 달리 연소억제제를 포함하는 등 특수 설계된 종이를 사용한다. 따라서 천천히 타들어 갈 뿐 아니라 미세한 구멍이 많아 연소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
필터는 셀룰로스 아세테이트 섬유로 구성돼 연소 중 발생하는 연기와 미세입자를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연소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담배를 빨아들이면 담배 안에 산소가 순간적으로 빨려 들어와 연소속도는 증가한다. 그러나 빨아들이지 않을 땐 자체적으로 산소공급이 제한적이라 훈소 상태로 천천히 산소를 소모하며 연소하는 과정을 거친다.
결론적으로 담배가 화염 연소하지 않는 이유는 제작 시 연소 억제 과정이 들어가지만 화재 성상 관점에서 보면 충분한 산소공급이 어렵고 가연성 기체가 많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또 화염 연소가 일어나는 온도까지 올라가지 않아 담배 자체만 산소를 소모하며 연소하게 된다.
우린 여기서 훈소 화재가 발생하거나 훈소 상태가 되는 조건을 유추할 수 있다. 훈소 화재가 일어나기 위해선 산소공급이 제한적이어야 한다. 산소공급이 제한적이라는 건 불완전연소가 일어나고 매우 위험성이 큰 연기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다음으로는 발화점 이하의 가열이다. 나무나 종이, 직물 등 고체 가연물이 저온에서 오랜 시간 화염 연소 온도 이하로 가열되거나 타들어 가야 한다. 화염 연소가 일어나기 위해선 대략 16~21%의 산소농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온도가 1000~1500°C 이상까지 올라가야 한다.
이번엔 반대로 생각해보자.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나면 담배 끝에는 화염이 없는데 빨갛게 타들어 간다. 그런데 왜 쉽게 꺼지지 않을까?
종이나 나무 등에 불을 붙여보면 불이 붙다가도 꺼지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땐 화려한 화염이 발생하진 않지만 담배 끝에는 회색빛의 담뱃재가 생기며 계속 타들어 가는 걸 볼 수 있다. 화염 연소가 발생하는 높은 온도를 유지하지 못하는데도 쉽게 꺼지지 않는다.
그 이유를 알아보자. 불이 붙은 담배가 쉽게 꺼지지 않는 건 앞서 얘기한 훈소 화재의 특성에서 알아볼 수 있다.
담배는 구조상 산소가 들어올 수 있는 다공성 구조로 형성돼 겉 부분이 타더라도 내부구멍으로 산소가 유입된다. 화염 연소가 이뤄지진 않으나 가연물과 적절한 산소가 공급되고 있어 계속 연소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유지하게 된다.
이런 구조는 한 번에 빠르게 타진 않지만 지속해서 연소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담배 종이는 연소조절용으로 설계돼 산소 투과도가 조절된다. 필터 또한 공기 유입을 조절하면서 연소 안정성에 도움을 주고 지속적인 연소로 이어진다.
담배를 통해 몇 가지 실험을 하면서 담배 연기도 궁금해졌다. 이전에 개인적으로 열분해 플라스크 실험을 통해 열분해 가스가 가연성이 있다는 걸 확인한 적이 있다.
담배 연기는 산소가 제한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불완전연소로 인한 연기에 해당한다. 과연 담배 연기의 열분해 가스를 포집해서 열분해 실험처럼 불을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 가연성이 높을까? 그렇다면 우리 건강에만 해로운 게 아니라 물리학적으로도 위험하지 않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담배 연기의 가연성은 높지 않다. 따라서 포집해 불을 붙여도 불이 붙을 확률이 매우 낮다. 담배 연기는 CO, CO2, 수증기, 타르 등 유기물과 니코틴, 기타 유기물로 구성된다. 연기성분은 이미 산화됐거나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로 재연소될 수 있는 가연성 기체가 매우 적다.
또 담배 연기에 포함된 타르성분은 끈적하고 무거워 공기 중에 연표처럼 퍼지지 못하고 고체처럼 그을리는 식의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다만 예외로 공기와 아주 잘 혼합된 상태에서 특정 연기성분만 혼합하고 높은 점화원을 주면 가연성 기체의 혼합으로 불이 붙을 수 있다.
훈소라는 연소 현상은 오래전부터 우리가 봤고 아는 모습이다. 오래전부터 숯이라는 걸 일상생활에서 사용했고 어떻게 만드는지도 안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굳이 궁금해할 필요가 없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만 다가가 생각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담배를 비롯해 숯을 만드는 과정, 같은 양의 톳밥을 뭉쳐놨을 때와 분진형태일 때의 다른 화재 성상 등 다양한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번 호를 통해 많은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연소 현상에 대해 흥미를 갖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서울 강남소방서_ 이동철 : huruku79@seoul.g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5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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