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바다를 향한 도전 ‘Rescue Swimmer Story’부산소방학교 제4기 해난구조구급과정 치열한 시간의 기록
새로운 시작, 해난구조구급과정 최초의 여자 교육생 “여자? 안 될 게 뭐가 있어?”
지난 5월 말, 곧 시작될 부산소방학교 특성화 전문 교육 과정 ‘제4기 해난구조구급과정’을 준비할 때 즈음 후배로부터 한 여직원이 이 교육에 꼭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14년 교육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조건은 단 하나. 남자 교육생과 똑같이 훈련을 소화할 수 있을 것. 그뿐이었다.
후배 교수들과 교육을 준비하는 지원 부서에서 기대와 우려가 쏟아졌다. “그래도 교육에 스스로 지원할 정도라면 그만한 실력이나 각오가 있었을 테니 무언가를 예상하지 말자”고 했다.
2009년 해양도시 부산의 특성에 맞춰 시작된 이 교육 과정은 ‘해난구조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모든 게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열정으로 뭉친 부산소방의 구조 교수들은 훌륭히 첫 기수를 배출해냈다.
당시 난 막내 교관이었다. 입사 1년 차의 새내기 소방사였던 내가 수난구조라는 분야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것도 이 과정 덕분이었다. 그러다 2011년 부산소방학교는 이 과정을 전면 개편했다. 외국의 우수한 수난구조기관과 협업을 하면서 재탄생시켰다.
미국 Ocean Rescue System 사, 미 해군 레스큐 스위머, LA 소방국 항공대 소속 파라메딕 등 3명의 강사를 초청해 13명의 Rescue Swimmer(이하 RS) 강사를 양성했다. 이는 국내 수난구조 교육에 큰 전환점을 가져왔다.
그 후 많은 수정ㆍ보완을 거치면서 수난구조 현장에서 응급처치 교육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이후 구급 파트를 추가해 2022년부터는 ‘해난구조구급과정’이라는 이름으로 최종 확정돼 운영 중이다.
현재 이 교육은 전국 구조대원이 ‘지원하고 싶은 훈련 1순위’로 손꼽는 인기 프로그램이자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교육으로 정평이 나 있다(2025년 제4기 해난구조구급과정 지원 경쟁률은 3:1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교육 첫날. 전국에서 모인 16명의 교육생을 강의실에서 만났다. 그 안에는 작고 어려 보이는 여자 교육생이 있었다. 모든 교육생은 앞선 기수와 다를 바 없이 눈빛이 살아있었고 체격이 탄탄했다.
이 교육에 지원하는 직원들은 이미 자신이 과정을 수행할 만한 자격을 스스로 갖추고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사람씩 자기소개를 시키며 각오를 들었다. 그러다 소방 임용 2년 차의 어린 여직원 차례가 왔다. 바로 최자윤 교육생이었다.
“반갑습니다. 최자윤입니다. 다른 동기들의 짐이 되지 않고 모든 과정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내겠습니다”
박수가 이어졌고 내심 기특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속으로 말했다. ‘넌 누구의 짐도 되지 않을 것이고 반드시 스스로 모든 걸 해낼 거야’라고…. 그렇게 시작된 첫날.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팀을 만들었다.
RS 교육은 철저한 팀플레이다. 특출한 체력과 경험을 가진 한 명의 에이스보다 각자의 능력이 조화된 팀이 현장에서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철학을 알려주기 위해 교육생 스스로 팀을 구성하게 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4개의 팀. 그럼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우린 곧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한계? 그것은 스스로 정하는 것 훈련은 3주간 이뤄지는데 첫 주는 수영장에서만 진행된다. 고백하건대 실내 교육이 전체 과정 중 가장 힘들고 고통스럽다. 구조 수영과 장비 수영, 입영, 잠영, 호이스트 사용, HUET(Helicopter Underwater Escape Training), 응급처치 훈련 등이 매일 반복된다.
이런 와중에도 최자윤 교육생은 묵묵히 모든 교육 훈련을 잘 따라줬다. 어떤 분야에서는 남자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그녀의 입영은 완벽했다.
문제가 없진 않았다. 작은 발 때문에 큰 오리발이 자꾸 벗겨지자 부츠 두 개를 겹쳐 신었다. 수영하면서 덩치가 두 배 이상 큰 남자 동기를 온몸으로 버티며 끌고 인양하기도 했다.
숨이 꺽꺽 넘어가는 소리가 온 수영장에 들렸다. 그뿐이랴. 순식간에 올라온 근육 경련에는 이를 더 악물었다. 멍들고 까진 것쯤은 티도 안 냈다.
특히 4일 차에 실시되는 ‘RS All Out Test’는 육체ㆍ정신적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훈련이다. 2인 1조로 시작해 5m 높이에서의 다이빙과 수중 인양, CPR, 바스켓 구조, 줄사다리 등반, 하라스먼트 상황 등 다양한 과제가 10분 안에 연속적으로 주어진다.
이 미션을 수행하는 동안 교수들은 교육생들에게 강한 수압의 물을 마구 뿌려대고 수영장 전체에 스모그를 피워 시야를 제한한다. 시끄러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정신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CPR을 실시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정확도가 요구되는데 교육생들이 이 지점에서 정신과 육체의 어려움을 동시에 호소하곤 한다.
테스트 전에 최자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과연 남자들도 힘들어하는 이 프로그램을 끝까지 해낼 수 있겠냐’는 의문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를 배제한다거나 특별한 혜택을 준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오히려 후배 교관들한테 그녀에게 더 가혹한 스트레스를 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드디어 시작. 우려는 기우였다. 그녀는 모든 과정을 자신의 파트너와 완벽히 수행했다. 하나하나의 미션을 수행할 때마다 그녀는 마치 더 강해지는 듯 보였다. 줄 사다리 등반 때 교관들에게 지시했다.
“물을 더 강하게 쏴라”
다른 뜻이 아니라 그녀의 한계, 그녀의 힘이 어디까지 미칠 것인가를 가늠해보고 싶어서였다. 곧 호스에서 뿜어나오는 물줄기가 더 강해지며 최자윤 교육생의 몸을 강하게 타격했다.
결과는? 그녀는 아무리 강한 물이 자신의 몸을 때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사다리를 올랐다. 마지막에는 패닉에 빠진 덩치 큰 남자 교육생을 완벽히 제압하며 한계 테스트를 마무리했다. 모두의 박수가 이어졌고 그녀는 힘들어하면서도 웃었다.
2, 3주 차는 해상 훈련이 이어진다. 해상 훈련은 동쪽의 송정해수욕장부터 광안대교를 지나 서쪽의 송도해수욕장까지 부산 연안을 2주간 횡단하며 진행된다.
테트라포드와 암반, 갯바위, 해식동굴, 절벽 등 고난도 지형에서 구조대상자를 인양하는 훈련을 반복하고 다양한 조류와 파도 조건 속에서 실제 상황을 시뮬레이션한다. 특히 서프존 진입과 이탈, 야간 구조, 항공구조 등 현장에서 바로 투입 가능한 전술적 훈련으로 구성된다.
그래도 해야 한다. 고기파대(High Surf Zone)을 뚫고 나가거나 그 안에 고립된 구조대상자를 데리고 나오는 게 RS의 궁극적인 역할이다. 오늘을 위해 지난 1주일간 실내에서 죽을힘을 다해 훈련하지 않았던가.
입수를 지시하는 호각을 불었다. 교육생들은 일제히 바다로 뛰어들며 서프존을 뚫고 먼바다로 수영해 나갔다. 뒤이어 테트라포드로 갔다. 낚시꾼이나 관광객들이 추락해 사고를 자주 당하는 실제 현장이다.
우린 그곳에서 테트라포드를 극복하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테트라포드 안쪽으로 이동하면 체력과 기술은 물론 담력까지 갖춰야 한다. 당연하게도 이 모든 건 팀플레이로 이뤄지기에 끊임없이 팀과의 조화, 협력을 강조했다.
광안대교 아래를 지나는 장거리 수영도 대단했다. 뜨거운 햇빛, 그와 대비되는 차가운 바다에서 기약 없이 앞으로만 수영해 나가야 하는 장거리 수영에서 누구 하나 이탈이나 탈락 없이 코스를 완주했다. 해안절벽과 방파제에서의 로프 구조도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훈련이다.
마지막 주에는 항공구조가 대미를 장식했다. 부산소방항공대는 이미 수년간 이 교육을 위해 소방학교와 협업을 해왔다. 베테랑 기장님과 정비사, 구조대원들은 최고의 교육을 지원할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기본적인 항공 안전 교육을 받은 교육생들은 송정해수욕장과 서구 암남공원 절벽 해안을 날아가 헬기에서 이탈함과 동시에 해안절벽과 해식동굴로 진입하는 훈련을 진행했다.
이때 교육생들에게 어떠한 시나리오를 던져준다. 실제 위험에 처한 구조대상자를 정해지지 않은 위치에 놓고 구조해 오라는 것이다. 형식, 절차,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실제와 가까운 구조 작업을 하길 원했다.
파도는 거칠었고 사리 때의 물살은 급류처럼 빨랐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씩 떠내려갔다. 하지만 교육생들은 암반에 고립돼 있거나 바다에 떠 구조를 기다리는 구조대상자들을 모두 무사히 구조해냈다.
그렇게 3주간의 모든 현장 훈련이 마무리됐다. 모든 해상 훈련을 마치고 교육생 모르게 준비한 무알코올 맥주를 모두의 수경에 따라 주며 우리만의 셀레브레이션을 했다. 이 의식(?)은 2022년부터 생각해 낸 나름의 자축파티인데 3주간 죽을 만큼 고생한 교육생들과 교수진들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기도 하다.
We are Rescue Swimmer! “연안 구조환경은 매우 복잡하다. 단순히 혼자서 잘한다고 되지 않는다. 구조대원이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고립자와 구조자를 모두 안전하게 이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틀에 박힌 매뉴얼이 아니라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하는구조대원 스스로 창의적인 구조 기법의 활용과 그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팀원들과의 협업이 가장 중요하다”
2011년 우리에게 RS 교육을 해준 미국 ORS 사 조지프 마크리 교수의 말이다. 이 말을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교재에서 배운 대로,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선배들이 해 온대로 하면 무엇이든 될 줄 알았던 나에게 그는 구조 현장에서의 구조대원의 창의력과 팀원들과의 협업을 수없이 강조했다. 그리고 ‘단순함’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며 끊임없이 ‘Keep it Simple’을 이야기했다.
매뉴얼을 무시하고 절차를 따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기본을 지키되 다 같지 않은 실제 현장에서 맞닥뜨릴 환경에 대해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길 바랐다. 나 역시 그런 마크리 교수의 철학에 깊이 동의했고 지금도 그 철학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이런 이유로 부산소방학교의 RS 과정은 초창기 도입된 미국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변수에 대비한 실전 위주 구성으로 재설계됐다. 기본 수영기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해식동굴 구조, 해안절벽이나 TTP에서의 로프구조, 서프존에서의 고립자 확보, 헬기 또는 보트 연계 구조 등은 초기 프로그램에는 없던 부산 연안에서 일어난 실제 사고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최종 훈련에는 시나리오를 부여하고 구조대원 스스로 창의적인 구조 활동을 형성할 수 있도록 사고의 폭을 넓히라는 주문을 지속해서 한다. 또 팀원들과 끊임없는 소통, 말과 몸짓 등으로 팀원끼리 유기적인 활동을 하도록 한다.
이번 제4기 교육생들 역시 매우 강하고 터프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가능성을 터트리며 성장하는 그들을 보는 즐거움은 가르치는 자의 행복이자 자부심이다. 다만 주인공 한 사람을 뽑으라면 단연 최자윤 교육생이다.
해난구조구급과정이 도입된 이래 처음으로 참여한 여성 교육생인 데다가 완벽하게 모든 과정을 이수했다. 스스로 반드시 해내겠다는 각오와 열정이 있었고 동료들과의 조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14년간 이 과정을 직접 운영해 오며 ‘언젠가는 여자 교육생이 들어오지 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를 했었는데 드디어 현실이 됐다는 점에 괜한 자부심이 생기기도 한다.
최자윤 교육생은 훈련 내내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다. 훈련 도중 그녀는 다리에 쥐가 나고 무릎과 발등이 다까지는 상처를 입었다. 장거리 수영 때는 시력에 이상이 생겨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다.
그러나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훈련을 마쳤다. 이후 해상 전술 훈련에서도 매번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최종 헬기 시나리오 훈련 날, 마지막 임무에 투입되기 전 그녀에게 말했다.
“자윤아, 마지막이다. 멋지게 해보자!”
최자윤 교육생은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함께 헬기를 타고 날아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가 아는 한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여자 ‘Public Safety Rescue Swimmer’로 인증받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를 최초의 무언가가 아닌 내가 가르친 수많은 소방 후배 중 하나로 기억할 것이다.
그녀가 스무 명(교수들 포함)이 넘는 남자 사이에서 힘든 훈련을 해낸 건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고 주어진 도전을 너끈히 이겨낼 거라는 용기가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것을 높이 산다. 갖은 핑계로 현재의 힘듦을 피하려 요령만 난무하는 현실을 보기 좋게 깨부숴버린 그녀의 강인함에 찬사를 보낸다. 이 교육을 받은 그녀가 구조대원으로 복무하긴 어려울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를 알기에 이 과정만으로 그녀가 구조 업무를 수행한다는 게 무리라는 걸 잘 안다.
다만 삶을 살아가며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힘든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지금의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또 한 사람의 소방관으로서 그녀가 내딛는 발걸음이 타인의 편견 때문에 멈춰서는 일이 없길 바란다.
어느 해보다 뜨거웠던 지난 6월 올해도 어김없이 ‘제4기 해난구조구급과정’을 무사히 마쳤다. 3주간의 짧지 않은 시간을 뒤로하고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로 웃으며 떠나는 교육생들을 보니 소회가 남다르게 떠오른다.
늘 그랬듯 기술의 습득, 이론적 배경, 매뉴얼의 확립 같은 정리된 지식을 많이 건네주진 못했다. 다만 교육생 스스로 바다를 알고 환경을 극복하는 힘을 전해줬다고 자부한다. 그것이 이 교육의 본질이고 처음이자 끝이다.
때론 질타와 고함, 때론 격려와 패기, 또 때론 함께 물속에 뛰어들며 3주를 보냈다. 단 한순간도 허투루 하지 않았기에 이 시간을 견뎌낸 이들이 뿌듯한 자부심을 품길 바란다.
마지막 날, 떠나기 전 교육생들이 건넨 한마디, 한마디는 오히려 나를 일깨웠다.
“앞으로 무엇이든 극복할 힘이 생겼다” “이 시간에서 낭만을 느꼈다” “불편함을 익숙하게 하겠다”
그들의 성장이 곧 나의 성장이었으리라. 이번 제4기를 통해 다시 한번 교수가 아닌 동료로서 그들과 함께한 시간에 감사함을 느꼈다.
변덕과 무계획의 팀장을 믿고 따라 준 구조팀, 구급팀 후배 교수들 셀 수 없는 공문, 협조와 부탁의 전화로 영혼까지 털렸을 지원팀 군, 경, 지자체 등 관련 기관 직원들 뛰고, 자빠지고, 수영하고, 구를 때마다 오가며 박수와 환호로 응원해주신 수많은 시민과 관광객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부산소방학교_김강윤 : udt4682@naver.com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거친 바다를 향한 도전 ‘Rescue Swimmer Story’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