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에서 밀도가 그렇게 중요하다고? 처음 소방 관련 화학 강의를 했던 때가 생각난다. 중앙소방학교에서 소방간부후보생에게 소방화학을 가르쳐야 했다. 소방화학을 강의하라며 건네준 책은 영국에서 발행한 ‘Physics and Chemistry for Firefighters¹’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주제가 바로 밀도다. 좀 의아했다. 왜 밀도를 책 제일 처음에 뒀을까. 아마도 소방관이 화재 현장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파악하려면 밀도 만큼은 정확하게 이해하길, 이후 적절하게 대처하길 바라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원래 시작이 반이고 시작부터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야 재미있는 글이겠지만 줏대 없고 눈치 보는 인간이라 다소 재미없는 밀도의 개념을 먼저 풀어 보고자 한다.
화학을 전공했기에 처음엔 소방이나 화재 등을 잘 알지 못했다. 밀도는 그냥 밀도지 뭐가 있겠나 싶었고 중요하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방과 관련된 여러 자료를 보다 보니 화재에서 밀도라는 개념으로 발생하는 현상을 이해하는 게 아주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겨울날 난로 위에서 물을 끓이면 뜨거운 증기는 가벼워 위로 올라가고 반면 차가운 증기는 무거워 아래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말이다.
또 해로운 물질을 방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난로의 굴뚝을 하늘 방향으로 한다는 사실과 연기, 뜨거운 증기가 위로 올라간다는 사실은 소방관이 아닌 우리, 즉 일반인도 경험 또는 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만약 큰 용기에 담아 둔 기름이나 경유에서 불이 났는데 경유보다 밀도가 더 큰 물로 진압해선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선뜻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소방관이나 소방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면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즉 밀도는 특정 공간을 차지하는 물질에 대한 질량의 비다. 밀도가 크다는 말은 단위 부피당 질량이 크다는 의미다.
가스레인지 위에서 물을 끓이면 뜨거워지고 물 분자의 이동 속도가 빨라져 부피가 커진다. 이때 물의 밀도가 감소하면서 위로 올라가게 되고 위에 있던 불과 멀었던 물, 즉 차가운 물의 물 분자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아진다.
이 밀도가 높은 물은 공간에서의 질량이 증가하고 무거워져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사실 물은 참 특이하고도 놀라운 분자다.
수소결합(수소와 산소의 상호 작용으로 물 분자 간 인력을 가짐)이라는 걸 하고 그 수소결합으로 인해 타 물질과 다른 특성을 보인다. 고체인 얼음보다 액체의 밀도가 더 높고 특히 4℃일 때 밀도가 가장 높은 기이한 물질이다.
만약 물이 아닌 다른 액체가 호수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겨울철 표면 부위에 차가운 공기가 액체를 얼린다면 표면부터 얼게 된다.
이때 고체가 액체보다 밀도가 높으므로 서서히 액체 속으로 가라앉으며 그 영역을 확장하게 된다. 그럼 고체의 영역이 계속 늘어나게 되고 언젠가는 그 액체 전체가 얼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물의 경우 일반적인 액체나 고체의 성질을 지니지 않는다. 즉 물의 경우 얼음인 고체가 액체인 물보다 밀도가 더 작다.
따라서 호수 표면에 아주 차가운 공기가 가해진다면 앞서 얘기했듯이 0℃에 더 가까운 물보다 4℃의 물이 밀도가 더 크므로 그 물은 아래로 내려가게 된다. 그보다 밀도가 낮은 얼음은 공기와 접한 부분, 다시 말해 물보다 위에 존재하게 된다.
물 위에 떠 있는 얼음은 차가운 공기를 차단하면서 아래에 존재하는 물이 얼지 않도록 하는 방어막 역할을 하게 된다. 계속해서 추운 겨울이라면 얼음의 두께가 점점 두꺼워지겠지만 우리나라 기후에서는 겨울의 호수를 전체적으로 얼게 하긴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고체 상태에서는 분자들끼리 서로 가깝고 움직임이 없어 액체 상태보다 밀도가 높다. 그러나 물의 경우 수소결합으로 얼음보다 밀도가 높아 얼음이 물 위로 뜨게 된다. 결국 겨울에 연못의 표면만 얼고 얼음 밑의 물은 얼지 않는 덕에 호수 아래 물고기는 겨울을 날 수 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아이스아메리카노(아아). 아아를 마시는데 밑에 얼음이 가라앉아 있다면 왠지 맛이 없을 것 같지 않은가? 둥둥 떠 있는 얼음을 돌려먹는 재미도 못 느끼고 말이다.
공간 내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화재 초기엔 화재로 인해 뜨거워진 공기는 위로 올라가고 상부의 차가운 공기는 내려온다. 또 공간 아래 개구부가 있다면 차가운 공기는 화재실 아래에서부터 공간으로 유입된다. 이 유입된 공기는 공간에서 데워져 다시 위로 올라간다.
한국의 온돌방도 공기의 밀도 관점에서 보면 아래의 따뜻한 공기가 천장으로 가면서 방안 전체를 고루 데울 수 있게 된다.
열의 흐름이나 에너지 전달의 관점에서 보면 천장 히터의 열이 데운 공기는 밀도가 작아 차가운 공기를 밀어내면서 아래로 가기 어렵다. 따라서 천장 히터에서 나오는 따뜻한 바람이 바닥까지 닿게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 있다.
촛불을 생각해 보자. 촛불은 그냥 불의 형태로 보이겠지만 그 속에는 수많은 분자가 있다. 눈앞에 산소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촛불 속에도 분자가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심지에 불을 붙이면 촛불은 위로 곧게 선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밀도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초 심지에 불을 붙이면 열로 인해 고체 양초가 녹아 액체가 된다. 더 뜨거우면 액체가 기체로 변하고 이 중 일부는 열로 인해 분자가 쪼개지면서 산소와 반응해 빛을 낸다.
이렇게 스스로 타면서 데워진 기체 형태의 빛을 내는 분자들은 온도가 높아졌으니 당연히 밀도가 낮아져 중력에 반해 위로 올라가게 된다.
불 대부분이 하늘 위로 솟는 이유는 그 속에 뜨거워진 빛을 내는 분자가 있고 이는 공기보다 밀도가 낮아 위쪽으로 가게 되는 단순한 현상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 정도 설명이면 화재 현상에서 밀도의 중요성에 대해 조금은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수소가스(H₂)나 LNG(CH₄, 메테인 위주의 천연가스)가 밀폐된 공간에서 누출됐다고 가정해 보자. 공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체는 질소(N₂)다. 수소(분자량 2)와 메테인(분자량 18) 가스는 분자량이 낮아 공기보다 밀도가 작다. 따라서 이 두 가스가 공간 내에 누출된다면 천장에 공기가 체류하게 된다.
그러나 LPG, 즉 액화 석유 가스는 프로페인(C₃H₈, 분자량 44)과 부테인(C₄H₁₀, 분자량 58)이 주요 성분이라 질소와 산소(O₂, 분자량 32)로 이뤄진 공기보다 밀도가 높다. 일반적인 석유에서 나온 휘발유나 등유, 경유가 가스 형태로 밀폐돼 누출됐다면 당연히 공기보다 밀도가 높아 공간 하부에 축적될 수밖에 없다.
소방관이나 안전관리자가 이런 누출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면 밀도의 개념을 이해한 후 그 현장에 맞도록 조치를 해야만 한다.
소방시설들도 밀도의 개념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화재 발생을 감지해 알려주는 화재감지기는 천장에 달아야 한다. 화재로 인해 발생한 뜨거운 연기와 열이 천장에 먼저 축적된 후 서서히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장에 설치해야만 화재를 초기에 빨리 감지할 수 있다.
열에 의해 개방되는 스프링클러도 천장 가까이 둬야 한다. 조금만 천장에서 멀어져도 화재를 감지하지 못하거나 반응이 느려져 화재가 확산한 후에야 물이 나올 수 있다.
가스를 연료로 사용하는 공장 등에서 가스 탐지기는 어디에 달아야 할까? LNG는 공기보다 가벼우므로 LNG 탐지부는 천장부(0.3m 이내), LPG는 공기보다 무거우므로 바닥(0.3m 이내)에 두게 돼 있다.
그럼 앞서 얘기했듯이 왜 경유 화재는 물로 진압하면 안 될까? 사실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지금은 밀도에 관해 얘기하고 있으므로 밀도 개념으로 접근해 보자.
경유가 저장된 용기가 있고 경유 표면에서 활활 불이 나고 있다고 가정하자. 여기에 물을 살짝, 조심히 붓는다면 물은 경유보다 밀도가 크므로 경유 용기 아래쪽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때 화재로 인해 끓는 점이 대략 250℃ 이상인 경유의 온도가 100℃ 이상이라면 물은 갑자기 기체상태의 수증기가 되면서 순간적으로 부피가 증가하게 된다. 또 경유보다 밀도가 낮아진 물의 증기는 타고 있는 경유를 사방으로 튀게 하면서 화재를 더 크게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우리가 학창시절 과학 시간에 배운 이상기체상태방정식을 적용해 볼 수 있다. 물이 액체에서 기체로 변화하면서 온도에 따라 그 부피가 다르겠지만 대략 그 기체의 부피는 물보다 약 1800배 이상으로 갑자기 매우 증가하게 된다(상온의 물이 127℃의 수증기가 돼 이상기체상태방정식을 따른다고 가정했을 때).
이처럼 부피가 증가한 수증기는 경유와 함께 폭발적으로 퍼져나갈 수 있다. 다시 말해 불을 끄려고 물을 뿌렸는데 순간적으로 물이 수증기가 되면서 부피가 증가하고 타는 경유와 함께 폭발과 같은 현상을 일으킨다. 이런 현상은 오히려 화재 현장을 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경유 화재가 발생했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경유보다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은 비누 거품 등을 이용해 표면을 살짝 덮고 이를 견고하게 유지해야 산소를 차단하는 질식의 방식으로 불을 끌 수 있다.
그러나 밀도가 이렇게 중요하다 해도 실제로 화재가 확산해 그 크기가 커지면 의미가 없어진다. 즉 공간 내에서 발생한 화재 초기에는 주로 밀도차에 따른 대류에 의해 연기와 공기가 순환하게 되지만 화재 최성기 부근에서는 공간 내 전실로 화재가 폭발적으로 전달되는 플래시오버 상태가 된다.
따라서 밀도만을 고려해 화재 현장을 이해하는 건 무리가 있다. 이때는 화재가 밀도를 무시해 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엔 화재 물질과 관련된 온도, 압력, 밀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에 화재 현상을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소방의 세계에서 화재 현장의 계단실이나 천장이 왜 그리 뜨거운지 등을 정확하게 알려면 밀도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고민해 봐야 한다.
그래야만 화재 현장에서 정확하게 대처할 수 있고 불을 제어ㆍ소화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본인의 안전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1) Physics and chemistry for firefighters, Fire Service Manual vol 1, Fire and Emergency planning Directorate, London
국립소방연구원 한동훈 : hdongh1@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9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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