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물질도 이기적. 모두 이기적이게도 안정화된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거야! ①
화학을 전공하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 과정에서 물질은 웬만하면 안정한 상태로 가고 싶어 한다는 걸 느꼈다.
어떤 에너지가 그런지 명확하게 정의할 순 없다. 하지만 물질이 열에너지나 위치에너지, 운동에너지 등 다양한 에너지의 원천을 갖고 있다면 자연계에 놓인 그 물질은 자신이 가진 에너지를 쓰면서까지 낮은 에너지 상태의 물질이 되고 싶어 한다.
높은 산 위에 있는 물이 흘러, 흘러 시내와 강을 이루고 흘러, 흘러 결국 바다로 간다. 물은 스스로 안정화된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걸 두고 우린 좀 있어 보이게 말할 수 있다. “물은 지구에 대한 중력을 가져 위치에너지를 낮추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건 당연하면서도 누구나 아는 단순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우린 ‘스스로가 가진 위치에너지를 줄이기 위해 중력에 의해 끌려가는 모습’이라며 감탄하고 놀라워할 줄 알아야 한다.
실험실에서 화학반응 실험을 통해 유기화합물을 합성한다고 가정해 보자. 실제로 화학반응을 시키려고 할 때 쉽게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화학반응이 일어나지 않으면 화학자들은 반응 물질이 들어 있는 용액에 열을 가하면서 저어 주거나 스스로는 반응하지 않지만 반응이 잘되도록 도와주는 촉매 등을 넣는다. 그러면 비로소 반응해 화학반응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사실 모든 반응이 자체의 에너지를 낮추는 방식은 아니다. 때로는 에너지를 가해 높은 에너지를 갖는 물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물질 스스로 자신의 에너지를 낮춰 열을 내놓는 방식으로 반응한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소 기체(H2)는 빨리 산소(O2)를 만나 열을 내놓으면서 에너지적으로 안정화된 물(H2O)이 돼야 한다. 집에 있는 양초(CnH2n+2)도 열을 가해 점화되면 산소를 만나 이 세상에 무수히 존재하는 안정화된 상태인 물과 이산화탄소(CO2)가 되고 싶어 한다¹.
소듐(Na) 금속 자체는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물질이지만 이 금속이 전자 하나를 내어 열에너지를 방출하고 소듐이온(Na+)이 되는 순간 매우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된다.
지구의 70% 이상을 덮고 있는 바닷물 내의 소듐이 금속 고체 상태가 아니라 이온으로 존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화학자는 주변에서 흔히 보는 물질이 에너지적으로 안정돼 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인간도 이런 원리를 이용해 몸을 유지한다. 음식을 섭취하면 체내에 글루코스(C6H12O6)를 만든다. 이후 아래와 같이 에너지를 만들어 몸을 움직이게 하고 체온을 유지하는 데 사용한다.
C6H12O6(s) + 6O2 → 6CO2 + 6H2O(l), ∆H = -2803kJ
그리고 복사나 대류, 증발 등의 형태로 남은 열에너지를 외부로 보낸다.
요즘 집에서 이오난사라는 식물을 키우는데 아무것도 없이 스스로 자라는 것처럼 보인다. 뿌리가 없는 이 식물은 그냥 공기 중에 둘 뿐인데도 조금씩 자란다.
하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없는 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는 물과 이산화탄소가 있다. 이오난사는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빛에너지를 활용해 당을 만들고 이 당으로 자기 몸을 만든다.
앞서 말했듯이 식물은 지구상에 많이 존재하는 안정화된 물질인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자신의 몸을 만들어 낸다. 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식물이 매 순간 해내는 일, 즉 스스로 자라고 에너지를 만드는 게 대단하고 아름답게까지 느껴진다.
인간이 불을 사용하고 활용하게 된 계기는 건조 식물 화재가 아니었을까? 점화원이 번개였는지, 바람으로 인해 식물 자체에서 발생한 마찰열이었는지, 미생물에 의한 발효로 물질 주변의 작은 발열반응에 의한 축열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임야나 산에 불이 났고 이를 본 인간은 원리를 깨달아 식물로 불을 만들어 냈을 거라는 게 내 짐작이다.
주변에서 “난 물만 먹어도 살이 쪄!”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거짓말일 확률이 100%다. 인간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물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식물은 물과 이산화탄소로 더 높은 에너지를 갖는 장작을 만들어 낸다. 인간은 그 장작에 화학반응에서의 활성화 에너지 같은 불꽃을 가해 산소와의 반응을 개시하게 된다. 지속해서 이런 반응을 유지하면 결국 물과 이산화탄소, 탄소가 남은 덩어리인 재를 만들어 낸다.
이를 통해 식물로부터 만들어진 장작은 산소와 합심해 자신의 에너지를 낮추며 안정화된 물질인 물, 이산화탄소 등으로 전환된다.
연료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산소와 결합해 열을 발생시키면서 불을 낼 수 있는 걸 뜻한다. 사실 연료는 너무나 많다. 큰 화재가 발생한 상황을 보면 TV 같은 전자제품이 타기도 한다. 창고화재에서는 창고를 지을 때 사용한 폴리우레탄 패널도 연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일부러 불을 내려고 등유에 불을 붙여봐도 잘 붙지 않는다. 집에 있는 냉장고에 불을 낸다고 생각해 보자. 불이 쉽게 붙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연료라고 생각하고 사용하는 일반적인 물질은 간단한 점화로 쉽게 불을 낼 수 있는 것들이다. 불을 쉽게 낼 수 있다는 건 불꽃을 대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 때 쉽게 연소반응이 일어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때 연소 전후의 물질, 즉 연료와 연소생성물 간의 에너지 차이가 큰, 다시 말해 많은 열이 발생해야 지속해서 연소할 수 있게 된다.
연소하면서 발생하는 열에 의해 연소 결과물이 기체가 됐을 때 매우 큰 부피 변화로 압력을 형성하게 되면 자동차 등의 동력기관이나 화력발전 등에서 더 좋은 연료로 쓰일 수 있게 된다(하나의 물질이었는데 열을 받아 분해되면서 많은 분자로 쪼개지면 부피 변화가 더 커진다).
연소반응과 다르긴 하지만 대학교 1학년 일반 화학책에서 우주 로켓의 연료로 과염소산암모늄(NH4ClO4)을 함께 넣는다는 사실을 배운 적이 있다. 과염소산암모늄을 왜 넣을까? 과염소산암모늄은 열 등에 의해 분해되면서 아래와 같은 반응식을 둔다.
2NH4ClO4(s) → N2(g) + Cl2(g) + 2O2(g) + 4H2O(g)
고체형태의 과염소산암모늄 분자 2개는 기체인 질소 분자 1개와 염소 분자 1개, 연소에서 다시 사용될 산소 분자 2개, 물 분자 4개로 분해되면서 엄청나게 부피가 커진다. 그 압력을 로켓의 추진력으로 사용하면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이같이 쓰임에 맞는 좋은 원료가 되려면 산소와 반응해 연소생성물을 만드는 건 기본이다. 여기에 더해 활성화 에너지가 낮은데 반응물과 생성물의 에너지 차이가 커 열을 많이 발생시키고 열분해 등으로 많은 분자가 생성되면 좋을 것 같다.
우린 매일 호흡하면서 산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만들고 반응으로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내뱉는다. 그러나 식물은 인간과는 반대로 이산화탄소를 소비해 산소를 생산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산소는 공기 중에 존재하게 된다.
산소는 재미있는 원소다. 전자를 사랑한다. 산소 원자는 최외각 전자를 딱 6개만 갖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산소 원자 중심의 핵 주변에서 돌아다니는 전자를 8개로 만드는 옥텟의 규칙(팔전자의 규칙)을 만족시키고자 매우 집착한다.
전자가 풍부한 곳이라면 어디든 달라붙어 전자를 훔친다. 그런 식으로 어떻게든 8개의 전자를 완성하고야 만다. 산소 기체가 처음엔 산소끼리 전자를 공유(O₂)하는데 이런 상태가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아서다.
산소 분자 내에 있는 원자 2개는 매우 전자를 좋아해 공유하는 자체를 너무 싫어한다. 이토록 전자를 좋아하는 산소는 전자를 내놓길 좋아하는 수소(H₂)를 만나 전자를 공유하면서 에너지적으로 안정된 H₂O, 즉 물을 만든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듯이 실제로 물 분자 내에서 전자는 전자를 좋아하는 산소 쪽으로 치우쳐 있다.
산소는 탄소(C)를 만나 전자를 공유하는데 이때도 전자는 산소 쪽으로 치우쳐 있다. 탄소와 산소 원자는 최외각 전자를 8개씩 가져 에너지적으로 아주 안정화된 이산화탄소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 물과 이산화탄소가 왜 많겠는가. 에너지적으로 아주 안정화 돼 있어 화학반응 등을 통한다 해도 다른 물질이 될 가능성이 크지 않아서다. 주변에 많이 존재하는 물질을 보면 다 이유가 있다. 물질 스스로 에너지적으로 안정된 그 상태가 참 좋기 때문이다.
1) 생성엔탈피(생성할 때 필요한 열의 개념 중 하나) 자료를 참고하면 탄소(C)가 이산화탄소(CO2) 기체가 될 때 393.51kJ/㏖l의 에너지를 방출하고 수소(H2)는 수증기(H2O)가 될 때 241.82kJ/㏖의 에너지를 방출한다. 에너지 관점에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소나 탄화수소 물질들은 산소와 반응을 하면 에너지를 내면서 에너지적으로 안정화된 상태가 된다는 걸 예측할 수 있다.
국립소방연구원 한동훈 : hdongh1@korea.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10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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