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밝은 밤. 어느 아파트 창문 밑에서 연미복 차림의 멋진 금발청년이 윗층 발코니를 쳐 다 보면서 사랑을 호소하는 세레나데 를 부르고 있다.
몇 소절인가 노래가 계속 되자 2층의 창문이 열리면서 발코니위로 아름다운 금발의 처녀가 나타났다. 그녀는 발코니에 만발한 튜립과 장미꽃에 쌓여서 청조하고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그녀는 하나 가득 얼굴에 미소를 띄우고 청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인사를 보낸다.
1960년대. 우리나라에 아파트 건설이 본격적으로 시작 됐을 때. 어느 영화 의 한 장면에서 보았던 위와 같은 낭만이 머지않아 우리에게도 다가오겠지... 하는 기대감에 가슴 벅차 설레였었다.
그러나 막상 건설된 아파트 발코니에는 아름다운 꽃 대신에 각종 빨래들이 내 널렸고. 그 집 여주인이 어떤 속옷을 입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 그것뿐이랴. 부실공사로 인해 어느 날 아침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아침 식사 중이던 주민들이 건물 더미에 깔려 비명횡사 하는 참변을 당하기도 했었다.
그 후 아파트의 질은 좋아졌지만 “어느 아파트 몇 평형에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부(富)를 평가 하는 잣대가 되기도 했고, 나중에는 투기의 대상으로 변신해서 며칠사이에 앞집 영자 엄마가 몇 천만 원 이라는 거액을 손쉽게 챙기는 것을 보고. 그렇게 하지 못하는 대다수 국민들은 자기가 마치 바보가 된 것 같은 상대적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으며, 근로자들은 근로 의욕을 상실하고. 빈부의 양극화 현상은 심해져만 가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발전 하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아파트 투기를 잡기 위해서 온갖 조치를 다 하다가 급기야는 “8. 31 부동산 대책” 이라는 비상 카드를 내놓게 된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지난 10월 13일 건설교통부가 내년 1월부터 아파트 발코니 확장을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건설업계와 학계에서는 '그동안 설계 및 건축기술의 발달로 발코니를 거실이나 침실로 확장 개조해도 구조적인 안전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며, 규제 해제를 요청 했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다가 '8. 31 부동산 종합대책' 이후 얼어붙은 건설경기를 살리는 카드로 사용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건교부는 당초 내년 1월 합법화를 추진하려다가 올해 연말 입주 예정인 사람들의 거센 반발과 빗발치는 요구에 의해 발코니 확장을 한 달 앞당겨 11월중으로 조기 시행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통상20일인 입법 예고 기간을 8일로 줄이고 규제심사 절차도 간소화 하는 등의 방법으로 통상 3~4개월이 소요되는 입법 절차를 1달 반 정도로 했다고 한다.
이런 개정안 시행으로 오는 12월에 입주하는 7만8천 가구의 아파트들은 발코니 확장 허용의 혜택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번 발코니 확장에 관한 졸속 행정은 아파트 화재의 수직적인 연소 확대와 대형화로 인한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의 손실은 생각하지도 않은 탁상 행정 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즉 아파트에 수평면으로 연소 되는 화재는 가구마다 내화벽으로 막혀있어 화재의 확대를 차단 할 수 있지만 . 아래층에서 윗층 으로 수직연소 되는 화재의 확대는 차단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윗층 과 아래층 사이에 외부로 돌출되어 있는 발코니에 화염이 닿으면 윗층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건물 외부로 불길의 방향을 바꾸어 놓아 이제까지 발코니는 아파트 화재 시 수직연소의 확대를 차단하는 유일한 방화구조로서의 역할을 담당해온 것이다.
뒤늦게 소방당국의 이의 제기를 받은 건설교통부는 발코니 확장의 전제 조건으로 '발코니 부분에 스프링클러와 화재 경보 설비를 갖추어 놓고 옆의 가구와 통하는 갑종 방화 문 을 설치 한 것'에 한하여 확장을 허용할 방침이라고 했다.
그러나 뒤이어 기존 아파트에는 스프링클러 설비가 쉽지 않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발코니 외벽 아래 부분에 높이 90cm의 방화유리. 또는 방화판을 설치하는 방안으로 대치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화염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방화유리가 실제 화재시 화염을 차단할 충분한 성능이 있는 것인지? 또 높이90cm의 방화유리나 방화 판 을 설치함으로서 아래층에서 올라오는 연소를 차단 할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것인지? 이에 대한 실험데이터나 근거 자료는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또한 구조대가 도착할 때 까지 일시적으로 화염을 피 할 수 있는 대피공간으로 발코니 중 한 곳에 2m²~3m² 의 공간 을 반드시 설치하도록 의무화 했다고 한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은 대피공간이 화재시 연소 부분으로부터 돌출 격벽이나 내화구조의 벽 등으로 보호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피공간이 오히려 죽음의 공간'으로 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피를 위해 옆에 가구와 설치해놓은 갑종 방화문 이 도난방지. 사생활 보호 등으로 잠금 상태에 있다면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될 가능성이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런데 더욱 모를 것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불구덩이 속으로 몰아넣을 지도 모를 졸속 행정을 왜 이렇게 다급하게 몰아부치느냐 하는 것이다.
1/0000 이라도 이로 인해 아파트대형화재가 발생 했을 때. 누가 책임을 질것인가? 건교부당국은 이점을 확실하게 집고 넘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