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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기고/방화복 이야기③] 우리나라의 방화복, 어디까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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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한국 대표 이진규 | 기사입력 2015/12/10 [00:41]

[기술기고/방화복 이야기③] 우리나라의 방화복, 어디까지 왔을까?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한국 대표 이진규 | 입력 : 2015/12/10 [00:41]
▲ 이진규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한국 대표    

폴란드의 한 소방본부가 방화복을 구매하면서 겉감으로 PBI Max를 채택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1978년에 개발 된 1세대 PBI 겉감도 가격을 이유로 외면 받고 있는데 1인당 GDP가 한국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폴란드에서 2012년에 나온 3세대 PBI 원단을 채택한 것이다.


3세대 PBI 원단은 1세대 원단에 비해 인장강도는 2배 이상, 인열강도는 8배 가까이 높으면서도 무게는 더 가볍고 활동성은 더 좋다. 필자는 지금 제품 홍보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상황이 계속된다면 3세대 원단이 근 시일 내에 국내에 도입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설명을 하는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하지만, 왜 최신 원단이 한국에서 사용될 수 없는지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방화복, 조금 더 범위를 확장 해보자면 개인안전장비에 있어 한국은 세계적인 추세와 동 떨어져있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우리나라의 개인안전장비 시장은 전형적인 가격경쟁 시장이다. 품질과 성능, 기능을 포함한 다른 모든 것에 가격이 우선한다. KFI 인정제도가 개인안전장비가 가져야 할 최저기준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 최저기준을 넘는 제품 간의 경쟁은 철저하게 가격 중심으로 이뤄진다.


품질과 성능이 앞서도 가격 경쟁력에서 뒤쳐진다면 제품을 팔 수 없는 것이 현행 조달제도에서 제조사들이 처한 상황이다. 올해 3월에 발생한 방화복 사태 역시 이런 현실에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겠다고 과욕을 부린 영세 업체들의 실수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공기호흡기 면체를 착용했을 때도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은 자켓의 목깃과 팔을 움직였을 때 불편하지 않게 만드는 bi-swing back 기술, 다리를 벌렸을 때 움직임을 편하게 하는 가랑이 사이의 다이아몬드 패널, 소방관이 쓰러졌을 때 동료가 끌고 갈 수 있도록 하는 drag-rescue device, 건물에서 단독 레펠로 탈출할 수 있는 개인탈출키트, 소매와 발목 단의 마모를 막는 추가 패드는 아직 한국 특수방화복에 적용되지 않고 있는 요소들이다.


원단으로 범위를 확장해보면, 능직으로 짜 강도는 높이고 움직임은 편안하게 하는 겉감, 25회 세탁 후에도 성능이 유지되는 발수처리, 땀을 흡수하여 밖으로 배출함과 동시에 매끄러운 느낌으로 착용감을 개선한 안감도 이 목록에 포함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원단 제조사들과 방화복 제조사들이 서로 더 안전하고, 가볍고, 시원하며 착용감이 좋은 제품을 내놓으려고 전쟁 중이다. 위에서 나열한 요소들은 이 전쟁의 부산물인 것이다.


국내 방화복 제조사들은 이러한 기술들을 사용해 새로운 방화복을 만들 의지를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이러한 기술들은 모두 원가를 상승시키는 요소로 이런 것들을 더해봐야 2단계 경쟁입찰에서 질 가능성만 높아지기 때문이다. 1억원 미만의 수의계약은 건수는 많지만 판매 규모가 크지 않다. 방화복 두 세벌을 팔기 위해 전국 소방서를 돌아다니면서 장점을 홍보하는 것도 업체들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방화복을 여러 종류로 만드는 것 역시 도박이 된다. KFI 인정에 소요되는 비용은 좋은 방화복이 잘 팔릴 것이라는 확신이 없는 업체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다. 이렇다보니 한국산 방화복은 해외에서 경쟁하기가 어렵다. 비록 가격은 저렴하지만 이미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선진국 소방관들에게 어필할 요소가 없기 때문이다.

 

외국 소방에 관한 정보가 개방된 요즘에는 젊은 소방관들도 해외 사례를 보고 국산 방화복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경우가 많다. 이즘 되면 최저가경쟁입찰제도를 통해 국민의 세금을 절약해온 것이 과연 결과적으로 방화복을 착용하는 소방관과 방화복 구매에 자금을 제공해온 국민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


KFI와 중앙소방본부는 최소한의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KFI 인정기준과 표준규격서를 마련했다. 방화복 제조사는 입찰제도에 맞춰 KFI 인정기준을 통과하는 최저가 제품을 만들어서 공급하고 있고, 소방본부와 서의 담당자들은 예산을 아껴쓰기 위해 최저가의 제품을 구매하고 있다.


하지만 모두가 열심히 일 한 결과 우리 소방관들은 우리 경제수준에 걸맞지 않은 방화복을 입고 있으며, 소방장비 업체들은 수출이 가능한 큰 업체를 제외하면 기술발전에 대한 유인이 없이 항상 KFI 인정기준이 요구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의 모습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모습일까?


얼마 전 베이징에서 열린 국제소방설비기술교류전람회를 참관한 적이 있다. 여기서 들린 한 중국 개인안전장비 업체의 부스에는 어디서 본 듯한 제품들로 가득했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선진 제품들을 모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업체는 2002년에 사업을 시작해서 현재 중국에서 가장 큰 방화복 업체가 되었다. 카피품을 만드는 업체라 비웃을 수도 있겠지만, 자존심은 접어두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카피품을 만드는 것은 이미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는 일이다. 심지어 원단업체들도 경쟁업체의 직조방식을 모방하고 특허를 우회해서 제품을 내놓고 있다.


이들 역시 우리나라의 업체들이 경쟁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다만 그 경쟁의 방식이 가격 깎아먹기 일변도가 아니라 성능과 기술에서 밀리지 않는 가운데에서의 가격 경쟁이라는 점이 우리와 다르다. 그리고 이 전쟁의 혜택은 소방관의 안전과 활동성 확보로 이어지고 있다.


방화복에 대한 소방관들의 시선도 이제는 변할 필요가 있다. 작년까지 특수방화복의 가격은 60만원 초반대에 형성되어 있었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이 들겠지만 임금이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동유럽 끝자락에서 생산되는 방화복들도 유럽에서는 한 벌에 80~9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방화복 겉감에 쓰이는 소재들 중 일부는 원래 우주탐사에나 쓰이던 고급소재이며, 중간층에 쓰이는 ePTFE는 자켓 한 벌에 수십만원을 지불해야하는 전문 아웃도어용 방수자켓의 그것과 같은 소재이다.


화재 속으로 들어가는 소방관을 각종 부상으로부터 보호하는 옷에 지불하는 대가 치고는 결코 높지 않은 가격이라는 것이다. 이제는 가격을 낮춰달라고 요구하는 대신에 제값을 줄테니 더 좋은 제품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때다. 그리고 더 나은 제품을 요구하기 위해 소방관 스스로도 방화복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할 것이다.

 

PBI 퍼포먼스 프로덕트 한국 대표 이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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