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랩으로 소방과 국민 사이 벽 허무는 소방관 되고파”[인터뷰] 랩 네임 ‘엠씨봉봉’, 김진철 서울종합방재센터 소방위
“화세가 커지기 전에는 두 개만 기억해 집안을 감독하는 단독경보형감지기지 영혼의 짝 소화기는 불을 죽이지 보험비 비싸? 그럼 여기다가 보험을 들어! 생명의 값어치를 헛되이 치르지 않기를 이건 돈 안 들어 잘 들어 집을 지키는 감지기 지금 집에 만들어” ♬♪
귀에 쏙쏙 들어오는 딕션(Diction)과 착착 감기는 라임(Rhyme), 경쾌한 플로우(Flow), 재치 있는 펀치라인(Punch line)까지…. 의심할 여지없는 랩(Rap)이다.
그런데 평소 우리가 즐기는 랩과는 분명 다른 느낌이다. ‘소화기’, ‘단독경보형감지기’ 등 랩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단어가 등장하는 이 랩은 의아함과 함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문득 소방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랩의 탄생 과정이 궁금해졌다. 수소문 끝에 찾아낸 그의 정체는 ‘엠씨봉봉’. 놀랍게도 현직 소방관이었다.
‘엠씨봉봉’이라는 랩 네임을 가진 김진철 소방위는 2007년 임용된 18년 차 베테랑 소방관이다. 현재는 서울종합방재센터 종합상황실에서 관제요원으로 근무하며 서울시민의 안전을 살뜰히 챙기고 있다.
그는 공무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랩 실력과 끼로 동료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특히 지난해 ‘제1회 전국 소방 뮤직 페스티벌’에서 ‘소화기와 감지기’라는 창작곡으로 대상을 받으며 전국적인 유명세를 누리게 됐다.
“공무원 조직은 딱딱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럽죠. 그래서인지 자유롭고 힘이 넘치는 랩이 큰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너무 큰 상을 받았어요. 화재 피해 저감에 매우 중요한 주택용 소방시설을 많은 국민께 소개할 수 있어 기쁜 마음뿐입니다”
IMF로 부친의 사업이 어려워져 힘든 시기를 보내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김 소방위는 우연히 친구의 CD플레이어로 드렁큰타이거의 명곡 ‘너희가 힙합을 아느냐?’를 듣고 곧바로 랩과 사랑에 빠졌다. 힘겨웠던 그 시기, 힙합은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그간 들었던 댄스 음악, 발라드와는 달리 멜로디 위에 말하듯 가사를 내뱉고 때론 욕설도 마다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깊이 매료됐습니다.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죠. 다소 우울한 시기였기에 힙합이 주는 자유로움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아요”
이후 그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걸 넘어 힘들었던 자신의 가정사나 처지 등을 랩 가사로 적어보기 시작했다. 어디를 가든 항상 가사 공책과 볼펜을 챙겨 다녔다. 그 시절 그가 적은 버킷리스트의 가장 첫 문장은 ‘나만의 앨범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들려주기’였다.
성인이 되자 래퍼라는 꿈은 잠시 멀어졌다. 막연한 꿈보다는 안정적인 장래를 계획해야 했다. 운동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고향인 대구 소재의 한 대학교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학교 공부는 기대와 달리 적성에 맞지 않았고 학자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었다. 과감히 학업을 내려놓은 그는 고민 끝에 소방관의 길을 택했다.
“체육학과에 다니다 보니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요. 일을 통한 보람도 느끼고 싶었죠. 경찰과 소방을 저울질하던 중 재난 현장에서 사람들을 더 직접 구할 수 있는 소방에 매력을 느껴 채용시험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년 6개월. 합격까지 걸린 시간이다. 이 기간 김 소방위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14시간씩 공부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결국 그는 192대 1이라는 기록적인 경쟁률을 뚫고 서울소방에 최종 합격했다.
소방관이 된 후엔 재난 현장 최일선을 누볐다. 하루하루를 보람과 기쁨으로 채워나갔다. 그러다 2008년 8월 20일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현장에 출동한 이후 가슴속에 지금도 지워지지 않는 큰 얼룩이 생겨 버렸다. 눈앞에서 동료 3명을 잃었기 때문.
“저를 포함해 6명이 하나의 수관에 의지해 나이트클럽 내부로 진입했어요. 천장에서 조명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저희를 덮치면서 앞서가던 두 형님은 즉사하셨습니다. 바로 뒤에 계셨던 형님은 탈출 과정에서 방에 고립돼 끝내 숨지셨어요. 나머지는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탈출했는데 아직도 그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과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날 고 조기현(46)ㆍ김규재(41) 소방위와 변재우(34) 소방교가 순직했다(전원 1계급 추서). 막역했던 동료들을 잃은 김 소방위는 언젠가 자신의 특기인 랩으로 이들을 추모하고 기억하기 위한 곡을 만들기로 다짐한다.
7년여가 지나 결심이 선 어느 날. 김 소방위는 종로 세운상가로 가 음원 제작에 필요한 장비들을 구입했다. 미디 작업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실력은 점차 나아졌다.
음원 플랫폼에 가장 처음 발표한 곡은 ‘때 늦은 추모시’. 이 곡에는 대조동 나이트클럽 화재 당시 김 소방위가 겪은 상실감과 공포는 물론 순직자들에 대한 추모의 메시지가 담겼다.
🎤 “빈손으로 왔다가 나가는 무대 이에 비유돼 지금 내 삶의 무대 신으로부터 약간의 우대를 받아 세상의 많은 이와 부대끼며 살아가 노래를 부르도록 시간의 혜택을 주네 내 눈에 아직까지 비친 그대들의 그 모습 그들의 웃음 그들의 뜨거운 가슴 사랑하는 이들의 가족과 조카 그리고 나와 내 동료를 위한 이 노래는 기념비적인 늦은 추모시” ♬♪
이후 그는 핸들러로 근무하던 시절 약 3년간 함께한 119구조견 ‘비호’를 기리기 위해 헌정곡을 추가로 음원 플랫폼에 공개하는 등 현재까지 총 7곡을 발표했다.
그의 작업용 컴퓨터엔 13곡 이상의 보물 같은 노래가 잠들어 있다. 랩으로 소방과 국민 사이의 벽을 허무는 소방관이 되고 싶다는 김진철 소방위.
“국민이 소방관을 친숙하게 여길수록 재난 예방 정책 등의 실효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일반 국민께 다양한 안전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랩을 계속 만들어 보고 싶어요. 이를 위해 소방관 김진철, 아니 엠씨봉봉의 도전은 멈추지 않을 겁니다”
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4년 8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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