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119] “끝까지 국민의 손 놓지 않는 소방관이 되겠습니다”[인터뷰] 전 국민을 감동시킨 ‘45분’의 주인공, 박준현 풍산119안전센터 소방교
때 이른 눈 폭탄으로 전 국민이 패닉에 빠진 2024년 11월 27일. 경북 안동시 중앙고속도로 풍산대교 부근을 지나던 한 대형 트레일러가 눈길에 미끄러졌다. 통제를 벗어난 차량은 굉음과 함께 대교 난간에 충돌하고 말았다.
트레일러는 종잇장처럼 찢기며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졌다. 미처 탈출하지 못한 60대 운전자 A 씨는 차체와 난간 사이에 허리가 낀 채 매달려 있었다. 의식이 혼미했고 머리 뒷부분에선 출혈도 보였다.
언제든 11m 높이의 대교 아래로 추락할 수 있는 아찔한 상황. 생사의 기로에서도 살을 에는 칼바람은 그칠 줄을 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같은 일이 벌어졌다. A 씨의 눈앞에 구원의 손길이 나타난 것. 흰 헬멧을 쓴 소방관 한 명이 겨우 팔을 뻗어 그의 손을 붙잡았다. 이날 A 씨가 무사히 구조될 때까지 이 소방관이 버틴 시간은 45분, 2700초였다.
기적을 만든 주인공은 안동소방서 풍산119안전센터에서 근무 중인 박준현 소방교다. 9년 차 베테랑 구급대원인 그는 자신을 ‘평범한 소방관’이라고 소개한다. 특별한 일을 한 소방관보다 당연한 일을 한 소방관으로 알려지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여러 언론을 통해 당시 상황이 알려지고 칭찬과 격려를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에요. 혼자 이뤄낸 일도 아닐뿐더러 마땅히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이죠. 위기에 빠진 국민의 손을 붙잡는 일이잖아요”
소방관이 되기 전 그는 2년 4개월간 간호사로 근무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을 돕는 걸 좋아했기에 선택한 일이다. 고된 업무의 연속이었지만 형언할 수 없는 보람과 기쁨을 느끼곤 했다. 천직이라 여기며 보낸 시간이었다.
그런 그가 소방관을 꿈꾸게 된 건 종합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이직하고 나서부터다. 환자 가족들에게 받는 한 장의 종이 문서가 늘 그의 마음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서(DNR 동의서)’를 내고 입원하는 환자분들이 있어요. 근무 중 상태가 악화돼도 도움을 주지 못하고 바라봐야만 했죠. 그런 현실이 괴로웠습니다. 최일선에서 직접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구급 경채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1년여의 주경야독 끝에 당당히 합격한 박 소방교. 일선에 배치되고 나선 숨이 차도록 열심히 구급 출동을 다녔다. 하지만 힘들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초심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계속 장작을 대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환자 이송 후 보호자들에게 듣는 고맙다는 말 한마디, 퇴원 후 건강한 모습으로 찾아와 전하는 감사 인사가 저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요. 또 지금까지 3명의 심정지 환자를 직접 소생시켰는데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풍산대교 트레일러 사고 당시 박 소방교가 보여준 행동은 많은 국민에게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대중의 박수와 찬사는 그에게 새로운 ‘연료’가 될 거다. 하지만 정작 박 소방교의 가슴을 가장 뿌듯하게 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의 첫째 아들이었다.
“개구쟁이 세 아들 중 8살 첫째가 ‘너무 용감했고 멋있었다’고 말해줬어요. 꿈이 소방관이에요. 나중에 아빠와 함께 일하는 게 목표죠.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해와 응원이 없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나서는 만큼 가슴 졸일 일이 많았을 터라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가족은 박 소방교가 힘을 얻는 또 다른 원천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박 소방교는 구조대상자 A 씨의 손을 잡고 20분이 지난 시점에서 신체ㆍ정신적 한계를 느꼈다.
자칫 손을 놓칠 우려가 있어 교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동료가 건네준 구조장갑을 꼈지만 시린 바람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생명의 무게와 긴장된 자세는 팔의 감각을 앗아간 지 오래였다.
점점 추락하던 박 소방교의 마음을 붙든 건 운전석 쪽에 붙은 어린아이의 사진이었다. 손자로 추정되는 사진 속 아이에게 ‘할아버지를 꼭 무사히 돌려보내 주겠다’고 거듭 약속하며 버텼다.
“한계에 다다른 걸 직감했어요. 1분, 1초가 그 어느 때보다 길게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사진 속 아이에게서 아들들의 얼굴이 어른거렸어요. 힘을 내 버텨야겠다고 생각했죠. 제가 붙잡은 손은 결코 한 사람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한 가정이었어요”
박 소방교의 이 같은 헌신은 연말연시에 다시 한번 크게 주목받았다. 그의 활약이 우리 사회에 귀감이 된다고 판단한 서울시가 박 소방교를 제야의 종 타종인사 10인 중 하나로 선정한 것.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전 국민이 애도에 나선 터라 공연은 모두 취소됐지만 제야의 종은 올해도 어김없이 새해의 문을 열었다. 다만 종소리는 예년보다 구슬프게 울려 퍼졌다.
“대단히 영광스러웠지만 저만 주목받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함께 노력한 동료들은 물론 전국 6만 8천여 소방관을 대신한다는 마음으로 자리에 섰죠.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같은 참사가 반복되지 않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종을 쳤습니다”
사회에 베풀고 봉사하는 삶이 가장 가치 있다고 믿는 박준현 소방교. 소방관으로서 걸어온 길보다 걸어야 할 길이 더 많은 이 청년 소방관의 유일한 목표는 ‘사람을 많이 살리는 것’이다.
“위기에 처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국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선뜻 생명의 손을 건네는 소방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국민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는 소방관…. 그런 소방관으로 남고 싶어요”
김태윤 기자 tyry9798@fpn119.co.kr
<본 내용은 소방 조직의 소통과 발전을 위해 베테랑 소방관 등 분야 전문가들이 함께 2019년 5월 창간한 신개념 소방전문 월간 매거진 ‘119플러스’ 2025년 2월 호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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