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배터리 하나로 마비된 국가 전산망…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정부 전산 시스템의 심장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일순간 화재로 ‘셧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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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석 국무총리가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
[FPN 최영, 최누리 기자] = 지난 26일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정자원) 화재로 대한민국 정부 전산망이 통째로 멈춰 섰다. 온라인 행정과 민원 서비스에 익숙한 한국 사회에서 전산망 훼손이 불러온 사회적 파장은 상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지난 2018년 도심 속 통신 블랙아웃의 충격을 안긴 서울 충정로 KT 아현지사 화재, 2022년 카카오톡 먹통 사태로 국민 일상을 멈춰 세운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등 여러 번의 화재피해를 겪은 바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국가 전산망이 단 한 번, 그것도 특정 건물 내 1개 층에서 일어난 화재로 처참히 무너져내렸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고 있다.
대전 국정자원의 전산시설은 정부24와 우체국, 119신고시스템 등 핵심 서비스가 모두 포함돼 있어 피해는 더욱 치명적이었다.
정부는 과거부터 재난 상황 발생 시 ‘3시간 내 복구’를 자신 있게 외쳤지만 실제 화재 앞에선 무력했다. 데이터 이중화와 재해복구 체계가 미완성인 상태에서 서버와 배터리를 한 공간에 둔 구조적 결함은 사실상 예고된 재난이었다는 지적이다.
추석을 앞두고 각종 민원과 금융서비스가 마비된 국민은 분노했고 정부 전산망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 기반이 온라인에 의존하는 시대에 정부가 관리하는 전산망조차 이처럼 허술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
<FPN/소방방재신문>이 국정자원 화재의 전말과 드러난 문제점을 집중 취재했다.
불 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 ▲ 화재가 발생한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 최누리 기자 |
국정자원은 우리나라 중앙행정기관은 물론 지자체 등의 주요 전산시스템과 데이터를 통합 운영ㆍ관리하는 정부 정보기술 총괄 기관이다.
대전과 광주, 대구 등 세 곳에 1600여 개 전산시스템을 분산 운영한다. 불이 난 대전 본원은 국가 정보시스템의 약 30% 이상을 감당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대표적인 민원서비스인 정부24와 국민비서, 인터넷우체국, 119신고시스템 등 647개 시스템이 이곳에서 관리된다. 광주 분원에선 경찰의 112신고와 법무부, 특허청, 국세청 시스템을 담당하고 대구 분원은 ‘민생지원 소비쿠폰’ 등 복지시스템 운영을 맡고 있다.
불이 난 대전 국정자원은 본원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6층 연면적 4만15㎡ 규모의 건물로 구성된다. 한 층당 약 5700㎡ 크기로 추정된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불이 난 5층 7-1 전산실에는 96개 전산시스템을 운영하는 전산장비와 384개의 배터리가 들어간 UPS(무정전전원장치) 장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제1전산실부터 6전산실(2~4층)에는 551개 시스템 운영 장비가 들어선 구조다.
국가 전산망 마비시킨 화재, 어떻게 시작됐나
![]() ▲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불에 탄 리튬이온 배터리를 소화수조로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
국정자원 전산실 내에서 배터리 화재가 발생한 건 지난 26일 오후 8시 15분께로 알려진다. 소방에 최초 신고가 이뤄진 시간은 8시 20분께다.
소방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윤건영 의원(더불어민주당, 구로구을)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초 신고자는 “5층에 리튬배터리 화재가 발생해서요”라며 119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상황실 접수요원은 “리튬배터리 화재요?”라고 물은 뒤 “사람 다 대피하라고 하세요”, “일단 사람 대피하라고 하시고 문을 닫고 대피하세요”라며 인명피해 방지를 여러 번 당부했다.
윤건영 의원실에 소방청이 제출한 당시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신고를 받고 6분 만에 현장에 도착한 소방은 인명검색과 함께 진압 활동에 돌입했다. 8시 32분께 사그라들었던 불길은 배터리 재발화로 인해 내부 진입 대원들이 1층으로 대피하기도 했다.
11시 2분이 돼서야 전원을 차단한 소방은 케이블과 배터리를 분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폭발 위험이 있어 분리 작업을 중단하고 창문을 파괴해 배연과 실내 온도를 낮춘 후 배터리를 밖으로 빼낼 수 있었다. 당시 5층의 실내 온도는 약 102~105℃에 달했고 소방은 배연과 분무 주수를 통해 실내 온도를 40~50℃로 낮춘 뒤에야 활동이 가능했다.
오랜 진압 작전 끝에 화재 발생 약 22시간 만인 27일 오후 6시께 불길을 모두 잡았다. 소방은 전산실에 있던 리튬이온 배터리 384개 전량을 밖으로 빼낸 뒤 수조에 담가 재발화 조처를 했다.
이날 소방은 5층 전산실 내부 공간이 협소하고 정부의 각종 서버 장비 훼손으로 인한 데이터 손실을 우려해 방수 자체에 애를 먹었다. 서버와 배터리 간 간격이 좁았던 것도 진압 활동에 걸림돌이 됐다.
김기선 유성소방서장은 언론 브리핑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특성상 다량의 물로만 진화가 가능한데 국가중요 서버가 파괴되면 더 큰 손실로 이어질 것 같아 온도를 냉각시키는 정도로 소량의 물만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화재로 불이 시작된 국정자원 5층 내 전산실은 모두 불탔고 전산장비 740대와 배터리 384개가 전소됐다.
격리 안 된 배터리들… 사고 겪고도 소용 없었다
![]() ▲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전산망 마비 사태가 이어지면서 서울의 한 구청에서 시민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 연합뉴스 |
전문가들은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가 서버 전산장비와 한 장소에 구축된 구조적 결함에서 위험이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국가 전산 운영을 위한 서버 장비가 UPS 배터리와 동일 공간에 설치됐다는 사실만으로 이번 사고는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화재가 발생한 국정자원 UPS는 전력 공급이 끊겼을 때 일정 시간 동안 전력을 공급해 데이터 손실이나 시스템 장애를 막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이다.
국정자원에 따르면 화재 당시 작업자들은 이 UPS 배터리를 서버 등 장비와 이격시키기 위해 지하로 이동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화재 위험성을 인식하고 배터리를 이동시켜 서버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런데 이 작업을 수행하던 중 일어난 불은 되레 화재를 일으켰다. 더 큰 문제는 카카오 먹통 사태 때 UPS의 위험을 경험하고도 3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배터리 격리 조치를 완료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공간 내 있던 서버와 배터리의 이격거리도 문제로 꼽힌다. 리튬이온 배터리와 공공ㆍ행정 시스템 서버 간 거리는 불과 60㎝에 불과해 화재 확산에 유리했고 소방활동에도 큰 장애가 됐다.
국정자원 측은 “화재에 취약한 리튬이온 배터리와 시스템이 한 공간에 가까이 있는 상황에 대한 우려로 전원장치를 지하실로 옮기는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면서 “배터리 이동 작업을 담당한 하도급 업체 직원이 전산실 전원을 내리고 배터리에 연결된 케이블을 끊는 과정에서 불꽃이 일었다”고 밝혔다.
전자정부 무색… 구멍 뚫린 전산 백업체계
![]() ▲ 대전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를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2022년 10월 카카오 먹통 사태를 겪자 당시 국정자원 원장은 “대전센터가 화재나 지진 등으로 한꺼번에 소실될 경우 재해복구 시스템은 실시간 백업자료로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도록 구축돼 있다”면서 정부 전자시스템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화재에서 국정자원의 당찬 자신감은 거짓이었던 셈이 됐다. 2023년에도 네트워크 장비 불량으로 행정 전산망이 장애를 일으키자 정부는 전산망 마비를 ‘사회재난’의 한 유형으로 포함하는 법 개정을 진행하는 등 대비에 나섰다. 1등급 시스템은 2시간 이내, 2등급은 3시간 이내 복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게 당시 정부 입장이었다. 정부 전산시스템은 사용자 수와 서비스의 대민 파급도 등을 고려해 1~4등급으로 구분한다.
이 같은 정부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해선 데이터 이중화가 필수다. 여러 장소에 데이터를 동일하게 보관해 한쪽 서버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다른 서버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이 경우 유사시 시설이 망가지면 다른 한쪽의 시스템으로 복구가 가능하다. 그러나 정부의 백업체계는 완성되지 못했다. 이번 화재를 통해 정부 전산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셈이다.
이용성 행정안전부 디지털정부혁신실장은 지난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대전과 광주는 서로 복구 시스템이 구축돼 화재나 큰 재난이 발생했을 때 가동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며 “최소한의 규모로 된 것도 있고 시스템별로 다 달라 당장 전환해 가동하는 것보단 피해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올해부터 서버 이중화를 위한 시범사업에 착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범사업 이후 정부기관별 예산을 투입해 이중화 체계를 마련할 예정이었지만 시범사업 이후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이번 화재가 발생했다.
멈춘 국가 전산망… 647개 올스톱
![]() ▲ 이재명 대통령이 정부서울청사 중앙재난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이번 화재로 우리나라 대표 민원창구인 정부24와 정부기관 홈페이지 등 주요 전산시스템의 사용이 제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e하늘 장사정보시스템과 장기조직혈액 통합관리시스템도 중단돼 화장 예약과 이식 매칭 과정에 차질이 발생했다. 일부 무인민원발급기 발급 중지와 우체국 금융 불편도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추석 연휴를 앞둔 상황에서 복구가 지연될 경우 각종 민원과 공공 금융 등의 불편이 이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국민 다수가 이용하는 시스템부터 최대한 신속하게 재가동하겠다는 목표로 복구를 서두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29일 오후 9시를 기준으로 운영이 멈춘 647개의 행정서비스 중 81개의 복구가 완료됐다. 일부 서비스의 복구에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행정안전부는 전소된 7-1 전산실에 구축돼 있던 전산시스템을 국정자원 대구센터 내 민관협력형 클라우드 시스템으로의 이전을 결정하고 복구를 추진 중이다.
29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구센터 민관협력존을 활용해 이번 화재로 중단된 서비스가 신속히 복구될 수 있길 기대한다”며 “여러 시스템을 새로운 전산실에 이전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국민 불편을 빠른 시일 내 해소해 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갖고 이전작업에 총력을 다해달라”고 지시했다.
앞서 28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긴급 비상대책 회의를 주재하고 비상대응 계획 부재를 지적하며 이원화 체계 구축을 지시했다. 과거 국정자원이 대규모 장애 시 3시간 내 복구가 가능하다고 밝힌 것과 대조적인 이번 사고 여파를 두고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면서 “민생 관련 시스템 복원은 밤을 새워서라도 최대한 신속하게 복구하고 정부의 대처와 복구현황을 신속ㆍ투명하게 국민께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최영, 최누리 기자 young@fpn119.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