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가 발생한 지 3일이 흘렀다. 더디게 진행되는 수습 속에 완전 복구는 요원하고 디지털 전자정부를 자랑하던 대한민국의 행정 시스템은 90년대로 퇴행했다.
정부부처 공직자들이 대내외 업무를 처리하는 온나라시스템이 먹통이 됐다. 출입 기자들에게 네이버 메일로 정보를 공유 중이라 한다. 정부물품을 구매하는 나라장터도 마비됐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피해가 막심하다. 119 신고 접수도 전화로만 가능하다. 이제 청각 장애인들은 긴급 신고를 할 수 없다. 셀 수 없는 대민 민원 서비스가 불통이고 추석을 앞두고 우정 시스템이 마비되며 물류 대란이 불가피하다.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안보를 위협하는 치밀한 테러가 발생했나? 아니다. 예측불가능한 자연재해가 발생했나? 그것도 아니다. 단지 한 건의 화재가 발생했을 뿐이다. 화재는 언제든 어디서든 발생할 수 있고 완벽한 화재 예방이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떤 재난ㆍ비상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국가 기능은 멈춤이 없어야 하고 주요 핵심 시스템은 어떤 상황에서도 대체 작동될 수 있도록 예비돼야 함이 기본 중 기본이다. 오늘날 이중화 체계 부재에 대한 충격과 비난 여론이 큰 이유다.
특히 무엇보다 국가 재난관리의 컨트롤타워이자 재난으로 피해입은 국민을 보호ㆍ지원하고 모든 정부 부처 기능이 어떤 상황에서도 정상적으로 기능하도록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 존재이유인 행정안전부이기에 더욱 아연실색하다.
단 한 건의 화재에, 대한민국 국가 행정기능이 셧다운됐다. 세계적인 망신이다.
정치권에서는 또 다시 책임 논쟁이 거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수 교대만 되풀이된다.
참 우스운 일이다. 행정안전부는 5년 단임의 대통령에 충성하지 않는다. 전문성 없는 한 철 장관에게 장악되지도 않는다. 그저 조직실 권력을 칼자루처럼 쥔 채 모든 공직사회 지자체와 타 부처의 머리 위에 조용히 군림할 뿐이다.
지방자치를 소관한다며 지방세와 교부금을 무기로 전국 지자체를 손에 쥐어 흔들고 필수 인력 증강을 요구하는 타 부처 기관에는 한없이 인색하되 행정안전부의 조직과 인력은 스스로의 권한 아래 28국 116과 1,670여 명에 육박하는 거대 조직이 됐다. 열 개의 소속기관 2100여 명은 제외한 수치다.(현황 확인을 위해 접속한 행정안전부 홈페이지는 복구 미비로 접속이 불가능했다.)
행정안전부 소속 독립 외청인 소방청도 하나의 군식구에 불과할 뿐, 참 초라한 소방 예산의 근간을 이루는 소방안전교부세마저 행정안전부는 앗아가려 한다.
재난을 총괄하는 기능은 그저 수많은 소관업무 영역 중 하나의 부분에 불과한 듯하다. 막대한 권한은 갖되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여러 핑계를 대며 실패의 책임은 지지 않는다.
2022년 이태원 참사 당시 '다중운집인파사고'가 사회재난으로 분류되지 않아 대비하지 못했다며 법령에 한 줄을 추가했다. 2023년 정부 행정마비 사태 당시 '정보시스템 장애' 역시 사회재난으로 분류되지 않았었다며 또 한 줄을 추가했다. 참 비극적인 국가 재난관리 주무부처의 현실이다.
책상에 앉아 펜으로 재난을 논하는 조직의 실체는 단 한 건의 화재로 여지없이 무너져내렸다.
21대 국회 임기동안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행정안전부를 소관했지만 초선 의원의 여러 주장과 제언은 내무부 시절부터 수십 년간 축적된 막강한 요지부동 관료사회 권력에 흠집도 내지 못했다. 나름의 소명의식으로 일하는 당해 부처 공직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자 하는 말들은 아니다.
다만 지나치게 많은 기능을 일개 부처 소관에 몰아둬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됨에 한탄할 뿐이다.
특히 부끄러움을 안다면, 국가 재난관리 영역은 감당할 여력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정부조직 개편에 앞장서기 바란다.
행정안전부 업무보고 자료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은 단 한마디였다. 자화자찬. 그러나 자승자박, 여러 권한을 흡수하다 정부 기능을 유지하는 기본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이제는 검찰청의 수사 권력까지 넘겨받게 된다 하니 얼마나 더 크고 힘센 육식 공룡이 될지 그저 아찔하다.
재난 현장 인명구조 임무로의 복귀를 앞둔 한 명의 예비 공직자로서 호소한다. 한 사람이라도 덜 죽는 나라를 바랄 뿐인 마음으로 간곡한 충언을 올린다.
기본으로 돌아가자. 기본부터 충실하자.
국가 행정부 전체를 아우르고 통괄하는 부처 스스로의 본디 설치 이유부터 집중하길 바란다.
오영환 전 국회의원 <저작권자 ⓒ FPN(소방방재신문사ㆍ119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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