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③/대전 안전공업 화재] 양치기 소년 된 화재경보기… 참사 키운 건 ‘3천원짜리 깡통 센서’오작동 우려해 경보기 끄고 스프링클러 잠그는 ‘안전불감증’ 또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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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일 발생한 대전 안전산업 화재 © 연합 |
[FPN 최영, 최누리 기자] = 14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총 74명의 사상자를 낸 대전 안전공업 화재 참사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병폐를 다시 한번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있다. 화재 직후 울린 화재경보기는 단 5~30초 만에 꺼졌고 중요 안전시설인 스프링클러설비는 차단돼 있었던 것으로 경찰 조사결과 드러났다.
26일 대전경찰청에 따르면 안전공업 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당시 화재경보기가 정상적으로 울렸지만 불과 5~30초 만에 꺼진 것으로 밝혀졌다.
현장 근로자들은 과거에도 경보기가 오작동한 사례가 있어 이번에도 단순 기기 오류로 오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근로자들은 경보음이 아닌 누군가의 외침을 듣거나 직접 연기를 목격한 뒤에야 뒤늦게 대피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평소 잦은 경보기 오작동을 겪었던 현장 근로자들과 관리자가 이번에도 ‘단순 오작동’으로 치부해버린 결과다. 화재를 감지하고 주요 소방설비를 가동시켜야 하는 소방시설의 두뇌가 사람의 자의적 판단으로 무력화되면서 또 한번의 참사를 낳았다.
생명줄 스스로 끊어버린 참사들… "또 오작동이겠지"
과거 대형참사들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오작동인 줄 알고 소방설비를 껐다'는 소름 돋는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이 같은 화재경보 오작동 문제는 대형화재 때마다 반복되고 있다. 2024년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부천호텔 화재 때 투숙객의 항의를 우려한 직원이 경보기를 2분 24초간 임의로 껐다가 피난 골든타임을 날렸다.
![]() ▲ 지난 8월 22일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친 경기 부천 호텔화재 ©FPN |
2022년 대전 현대아울렛(7명 사망), 2021년 6월 이천 쿠팡 물류센터(소방관 1명 순직), 2021년 천안 불당동 아파트 주차장 화재(차량 660여 대 피해), 2017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27명 사망), 경기 2017년 2월 용인 양지 SLC 물류센터(사망 5명) 등 모두 실제 화재 때 경보를 고의로 차단하거나 멈추게 해 피해를 키운 사고들이다.
이 사고 속 관리자들은 하나같이 진짜 불이 났을 때 정작 필요한 생명줄을 스스로 끊어버렸다. 이유는 모두 오작동이라는 관리자의 판단 때문이었다.
주범은 단가 '3천 원'짜리 깡통 센서
이 끔찍한 참사의 책임을 단순히 현장 관리자나 근로자 개인의 '안전불감증'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애초에 오작동이 일상화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자동화재탐지설비의 기술적ㆍ제도적 후진성에 원인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소방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전국 소방관서의 비화재보 확인 출동은 2022년 10만2821건, 2023년 16만7901건, 2024년 16만4793건 등 최근 3년간 연평균 14만5171건으로 하루 평균 출동 횟수가 397건에 달할 정도다.
잦은 오작동의 주범은 현장에 무분별하게 설치된 단가 3천원~6천원 수준의 ‘저가형 일반 감지기’들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용혜인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안전공업의 소방시설설계 도면에 따르면 이 공장 역시 저가형 일반 감지기들이 적용됐던 것으로 파악된다.
![]() ▲ 안전산업이 지난 2014년 증축 당시 소방시설 설계도면에는 연기식 감지기와 차동식 감지기 등 일반형 시스템이 적용됐다. © 용혜인 의원실 |
이 센서들은 단순한 'ON/OFF' 방식으로 작동해 미세먼지, 수증기, 요리 연기조차 화재로 인식해 시도 때도 없이 경보를 울려댄다. 습도가 높은 여름철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더 많은 비화재보를 일으키며 관리자들을 곤혹스럽게 한다.
오경보가 울리면 건물 속 재실자들은 “똑바로 관리 못 하냐”는 항의를 쏟아내고 이는 고스란히 관리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된다.
일반 감지기는 비화재보 때 대처하는 일도 쉽지 않다. 화재 신호를 일으킨 감지기를 우선 찾아내 떼어내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하는데 감지기를 찾아내는 일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감지기는 일정 공간 내 많게는 수십 개의 감지기를 묶어 한 회로로 구성한다. 신호 발생 시 해당 감지기를 찾으려면 일정 구역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불이 들어온 감지기를 하나하나 확인해야만 한다. 관리자들이 먼저 경보를 정지시킨 뒤 화재 여부를 확인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다. 이런 일반 감지기에는 화재 시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기능 자체가 없는 게 문제다.
반면 온도와 연기 농도를 정밀 분석하고 환경에 따라 감도를 조정하는 것은 물론 감지기의 위치까지 정확히 알 수 있어 비화재보를 줄일 수 있는 지능형 ‘아날로그 감지기(인텔리전트 감지기)’는 비싸다는 이유로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이 선진형 감지기는 현행법상 30층 이상 고층건물이나 아파트에만 설치가 의무화돼 있다. 대다수 건물과 공장 등은 비용 절감을 위해 법적 최소 기준만 충족하는 깡통 센서를 달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24년 발생한 부천 호텔 화재 이후 소방청은 올해 중 숙박시설에 이 아날로그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하겠다는 제도개선 계획을 세운 상태다.
"싸구려 센서가 부르는 불감증"… 개선 시급
![]() ▲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이 차동식 열감지기는 이렇게 감지기 자체를 탈락시켜 놓아도 화재 수신기에서 이상 상태를 알 수조차 없다. ©FPN |
비용 절감을 위해 설치하는 저가 감지기는 미세한 환경 변화에 시도 때도 없이 오작동을 일으킨다. 이는 관리자의 화재 수신기 고의 차단을 관행화시켰다. 결국 실제 화재 시 대규모 참사로 이어지는 끔찍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양치기 소년을 만든 게 비용 앞에 타협해버린 낡은 소방 시스템과 법적 허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초기 화재 감지가 실패하면 피난 시간은 늦어지고 소화설비나 각종 소방시설의 연동도 불가능하다. 그 어떤 첨단 진화 시스템도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더는 관리자라는 개인의 과실만을 탓하며 희생양을 찾거나 특정한 대상만을 점진적으로 개선해나갈 게 아니라 하루라도 빨리 선진형 감지기를 보편화시키는 게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소방시설의 고의 차단의 근본적 문제를 개선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김성한 소방기술사(한국소방시설관리협회 부회장)는 “이제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새로운 건물에는 용도와 관계없이 지능형 아날로그 감지기 설치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며 “과거와 달리 아날로그 감지기가 보편화되면서 지금은 설치비용도 낮아졌기에 제도 강화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미 지어진 건축물의 비화재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시국 호서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큰 문제는 오작동 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환경조차 안된다는 거고 지금의 일반 감지기들은 꼭 필요한 기능조차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라며 “최소한 화재 감지기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개선돼야만 감지기의 불신과 관리적 환경을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영, 최누리 기자 young@fpn119.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