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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기고] AI 시대, 아파트 방재실에 물을 뿌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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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일 정보통신기술사(한양티이씨, 기업부설연구소장) | 기사입력 2026/05/11 [14:52]

[기술 기고] AI 시대, 아파트 방재실에 물을 뿌릴 것인가?

이상일 정보통신기술사(한양티이씨, 기업부설연구소장) | 입력 : 2026/05/11 [14:52]

▲ 이상일 정보통신기술사(한양티이씨, 기업부설연구소장)

 

아파트 단지의 방재실과 통신실은 ‘심장’과 같은 곳이다. 이곳에 스프링클러 설비를 시공하는 건 엔지니어 관점에서 매우 위험한 선택이다. 실제 현장에서도 큰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현행 ‘스프링클러설비의 화재안전기술기준(NFTC 103)’엔 통신기기실과 전자기기실에서 스프링클러 설비 설치를 제외토록 규정한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이 공간엔 스프링클러 헤드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전기 화재 등 잠재적 위험에 대한 우려, 단일 건물 내에서 방재실과 통신실만 헤드 설치를 제외할 경우 설계가 복잡하다는 이유 등으로 관행적으로 일괄 적용해 왔다.

 

다행히 최근에는 상당 부분 시정됐다. 하지만 여전히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 스프링클러 설비가 무분별하게 시공되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계속되는 이유는 “가스계소화설비는 오작동 가능성이 있고 밀폐 성능이 미흡해 소화에 실패할 수 있다”는 불신, 즉 “가스보다는 물이 소화하는 데 확실하다”는 관성적인 신뢰가 여전히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AI 기반 스마트 건물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는 중이다. 방재실과 통신실의 중요성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보통신 설비와 서버 컴퓨터가 밀집된 공간에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하는 건 매우 큰 리스크를 지닌 것과 같다.

 

화재가 아닌 배관 동파, 헤드 파손, 시공 불량, 천장 공사 중 충격 등으로 인한 오작동이나 배관 부식에 의한 누수가 발생할 경우 서버와 스위치 등 핵심 장비는 즉각 단락된다. 이는 곧 단지 전체의 정보통신, 방재, 보안 시스템의 마비로 이어진다.

 

화재 시 물을 뿌리면 불길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밀 전자기기들은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화재 피해보다 수손 피해 복구 비용이 더 커지는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이뿐 아니라 물로 인한 감전 위험은 화재 진압 과정에서 2차 인명 사고의 우려까지 낳는다. 특히 방재실은 건물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다. 스프링클러 설비 작동으로 방재실이 침수되면 화재보다 시스템 마비가 먼저 일어나 대응 자체가 불가하다.

 

따라서 방재실과 단지 통신실에는 전기 전도성이 없고 잔여물이 남지 않는 가스계소화설비를 도입하는 게 정석이다.

 

할로겐화합물과 불활성 기체 등 청정소화약제는 화재 시 산소 농도를 낮추거나 연쇄 반응을 차단하는 식으로 기기 손상 없이 화재를 진압한다.

 

소화 후 잔여물이 없어 즉시 장비 재가동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밀폐 공간 확보가 필요하고 설치 비용이 다소 높다는 단점이 있으나 자산 보호와 시스템의 연속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다.

 

만약 공사비 등의 현실적인 제약으로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해야 한다면 최소한 상시 배관에 물이 없는 준비작동식을 선택해야 한다.

 

단순 헤드 파손에 의한 누수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준비작동식은 화재감지기 A, B 회로가 동시에 작동해야 밸브가 열린다. 그러나 준비작동식 스프링클러 설비 역시 ‘물’로 소화한다는 본질적인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아파트 단지 방재실과 통신실의 스프링클러 설계를 검토 중이라면 소방설계자와 감리자는 반드시 가스계소화설비로의 변경을 강력히 권고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물을 뿌린다”는 과거의 관습보다는 “설비의 연속성을 위해 가스로 제어한다”는 현대적 엔지니어링 관점이 절실하다.

 

스마트홈과 IoT(사물인터넷) 건물을 넘어 초지능형 AI 건물로 진화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건물의 ‘브레인’이 침수되는 건 곧 아파트 단지 전체의 식물인간 상태를 의미한다.

 

AI 시대의 건축물은 더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아니다. AI 혁명과 스마트홈 시대의 방재실은 단순한 기계실이 아니다.

 

건물 전체를 움직이는 두뇌에 물을 뿌리는 설계를 이젠 끝내야 한다. 우리 소방과 정보통신 엔지니어들은 건물의 두뇌를 보호할 책임이 있다. 우리가 설계한 오늘 이 결정이 10년, 20년 뒤 아파트의 안전과 디지털 자산을 결정한다.

 

이제 ‘물’을 뿌리는 관성에서 벗어나 ‘시스템의 연속성’을 지키는 진정한 의미의 방재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상일 정보통신기술사(한양티이씨, 기업부설연구소장)

 

※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 등은 <FPN/소방방재신문>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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